공황과 헤어질 준비

by 이음하나
퍼득퍼득 날갯짓을 하며 하늘을 나는 새.
그 새는 날아야 사는 것이니
열심히 날아다닌다.

그러다,
갑자기 날갯짓이 안 된다.
아무리 날려고 애를 써도
날개가 움직이지 않는다.

새는 땅으로 추락한다.
그러면 그렇게 산산조각이 나 죽어질 것 같다.

그래서 또 해본다.
혹시 날갯짓이 다시 될지 모르니까.
그러면 나는 다시 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안 된다.
여전히 안되더라 말이다.

공황의 순간은
그렇게 아무리 살려고 해도
날갯짓이 안 되는 그 느낌이다.


마음의 병이었다.
몸에 오는 감기와는 전혀 달랐다.



혹여나 또 잘못되어
세 아이를 내가 홀로 책임져야 한다면,
나는 나약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무너져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그렇게 4년을 쉼 없이 달렸다.
마냥 젊을 줄 알았던 나는
어느새 서른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다.

막내를 서른하나에 낳고
정말 미친 듯이 '나 죽었소..' 하며 살았다.
근데 어느 날 거울을 보니
나는 예전의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가엾어라…”


그 말을 속으로 얼마나 많이 되뇌었는지 모른다.
세상에 나만큼 가엾은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누군가는 그 정도쯤은 아무렇지 않게 넘겼을지도..

그렇지만 그땐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내 사정들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많은 지인들과 연락을 끊고 살았다.


산전수전 공중전을 ‘실시간’으로 겪고 있는 사람에게
세상은 너무 시끄럽고,
나는 너무 부서져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나 자신을 보면서
‘나 같은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가엾은 나와,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뜬금없이,
국선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변호사가 아니라 국선변호사.
약한 사람 편에 서는 정의로운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꿈이었다.
이 나이에, 이 형편에,
로스쿨이라니
말도 안 되는 헛꿈.
그렇게 내 작은 불씨는 금방 꺼졌다.

그때 마침, 하던 일이 마무리될 시점이었다.
이 일은 이제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이대로 살면
내 건강도 잃고, 가족도 잃을 것 같았다.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데
나는 늘 일하느라 곁에 없었다.
내 어린 시절에 엄마의 부재가 나에게 남긴 상처를
또다시 내 아이들에게 넘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여성발전센터’라는 기관을 알게 되었다.

일을 그만두고 나니 시간이 생겼다.
아이들도 학교·유치원에 가 있으니
딱 나를 위한 시간이 가능해졌다.

결혼하고 처음으로
나를 위한 배움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의 이 상황을 벗어날 마음이

차곡차곡 준비되고 있었다.

여성발전센터에 여러 과정 중에 눈에 딱 들어온

과목이 있었다.
미술치료 자격증 과정이 있었다.

‘미술’이라는 단어만 들었는데
왠지 자신이 있었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바로 등록했다.

미술이라잖아.
미술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