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에 관한 이야기를 쓰면서,
나는 마음 깊숙이 묻어두었던 울컥함을 꿀떡꿀떡 삼켜야만 했다.
사실 나 자신조차 인정하기 싫었고,
무엇보다 내 공황을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가족이나 친구에게조차 알려지는 게 왠지 모르게 수치스럽게 느껴졌던 것이
바로 공황이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끝맺으려는 지금,
나는 놀랄 만큼 안정되어 있다.
신기했다.
치부를 들킨 듯한 수치심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솔직하게 표현한 것 같아
내가 원하던 진짜 글을 솔직하게 쓰는 사람이 된 것 같다.
상담심리 공부를 시작한 이유는 단 하나였다.
많은 아이들에게 좋은 상담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그 아이의 상처를 공감해 주고 어루만져주는 건강한 어른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아이 역시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 거라 믿었기 때문이다.
교육대학원을 목표 삼아 의욕적으로 시작했지만,
현실은 학부를 간신히 졸업하는 데까지였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마음만큼은 누구보다 단단해졌다.
흐물흐물하던 내 정신 상태는
사람들의 따뜻한 말과 마음으로 점점 채워졌다.
그렇다고 공황이 사라진 건 아니었다.
비행기를 탈 때도, 넓디넓은 바다를 볼 때도
갑작스레 찾아오곤 했다.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점이 있었다.
공황이 예전처럼 오래 머물지 않았다는 것.
과거의 나는 공황을 달랬다.
“괜찮아, 곧 지나가.”
그저 회피에 가까운 다짐이었다.
지금의 나는 달랐다.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서 공황이 와도
이전처럼 드라마로 시선을 돌려 피하지 않는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것, 있는 그대로의 나에게 집중한다.
듣고, 보고, 느끼고,
때로는 그 순간을 메모로 남긴다.
‘저 카디건, 지난번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세일하네?’
‘이 노래 너무 좋다. 특히 이 가사 예쁘다.’
‘이 머리, 나한테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숨이 막히는 것 같지만… 그건 생각일 뿐. 나는 지금 숨 쉴 수 있어. 겁내지 마.’
그렇게 ‘나에게 집중하는 연습’을 하자
공황은 잠시 흔들다가도 다시 나에게 돌아오는 속도가 빨라졌다.
100%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건 공황이 내게 외치고 있었다는 것이다.
“너에게 집중하라”라고.
그리고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나에게 집중하는 힘이 생기니
타인에게 집중하는 능력도 자연스레 커졌다.
사람들은 말했다.
나와 이야기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명쾌하다고,
응원을 받는 느낌이 든다고.
상대의 이야기가 매끄럽게 이해되고,
그 사람이 진짜로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읽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의 ‘발작 버튼’인 남편에게만은 그 능력이 발휘되지 않는다.
알게 모르게 쌓여 있던 분노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까지 눈 녹듯 사라진다면
그건 신의 영역이지, 사람의 영역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황과 남편은 아주 많이 닮아 있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친한 듯 안 친한 듯.
●편한 듯 불편한.
●알다가도 모르겠는.
●나에게서 떠났으면.
그렇지만 무조건적인 원망보다는
그를 발판 삼아 내가 한 단계 올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이기적이지만, 지금의 솔직한 내 마음이다.
혹시 누군가
“왜 나만 이럴까?”
“왜 내 팔자는 이럴까?”
자신을 원망하고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세상은 생각보다 공평하다고.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근심과 상처는 있고,
우리는 그들보다 단 한 가지라도 나은 점이 있다.
아주 작더라도 말이다.
한때 나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힘든가 싶어 원망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글 쓰라고.’
‘누군가에게 이야기해 주라고.’
하늘이 내게 준 역할일지도 모른다.
그게 내가 가진 공평함이다.
물론
너무도 어려운 남편은 여전히 제외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