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황에게 허락하지 않는 것 : 만약

by 이음하나

공황은 언제나 만약으로부터 시작된다.

만약에… 내가 여기서 숨을 쉬지 못한다면?
만약에… 내가 이곳에서 나갈 수 없다면?

늘 이 ‘만약’이 문제였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멀쩡히 숨을 쉬고 있음에도
나를 옥죄는 건 언제나 일어나지 않은 일을 향한 상상이었다.

일하는 특성상(승무원은 아니지만)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되었는데,
비행기 속에서 오는 공황은 정말 걷잡을 수가 없었다.

탑승을 하고 일렬종대로 나란히 서 있는 의자를 보면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그 위에 사람들까지 빽빽하게 들어서면
정말 말 그대로 나는 얼음이 되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복도 자리를 선택했고,
형편이 조금 나아질 때면 프레스티지석을 선택했다.
가능하면 최대한 앞자리.
조금이라도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자리.

웃긴 건,
공황도 자본주의인지
프레스티지는 혼자 타고 가면 그렇게 멀쩡했다.
놀라울 정도로.

그래서 나는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다.
“만약은 없다. 나는 지금 숨을 쉬고 있다.
이곳엔 공기가 충분하다.”

그리고 또 하나, 퍼즐 게임이었다.

처음엔 책을 들고 탔지만
공황 앞에서 흰 종이 위의 검은 글씨는
이상하게도 답답했다.

떠다니는 광고 속에서 잡아 올린 퍼즐게임.
그렇게 선택한 퍼즐 게임은
나를 한 번에 100판을 깨는 고수로 만들어주었다.
그만큼 집중도가 높아져
공포가 들어올 자리가 없어진 것이다.

(쏟아지는 광고가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유익할 때도 많다ㅋ)

문득 궁금하다.
공황을 겪는 다른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버티고 있을까.
각자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 살아가고 있겠지.

부디 그렇게라도 살아내길 바란다.
그렇게라도 자신을 지켜내길 바란다.

공황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은, 결국 우리가 이겨낼 수 있다.

만약.
정말 만약에
우리가 이렇게라도 살아낸다면—

그래도 사는 게 나았다고,
괜찮았다고,
언젠가 안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어쩌다 공황을 마주쳤지만 만약을 허락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