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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월 Jan 14. 2021

시어머니의 살림 솜씨에 반하다

제로웨이스터 시어머니와 며느리

 올해 결혼 3년 차인 나는 아직도 시댁이 낯설다. 딱히 시부모님이 싫은 건 아니지만 우리 엄마 아빠 외 어른과 한 지붕 아래서 잠을 청하는 건 아직은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하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불편하고 어색하게 지낼 수 없어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다. 특히 시어머니에겐 더더욱. (정녕 이것이 대한민국 며느리의 숙명입니까)


 어머님과 공통점을 찾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누구 하나 등 떠밀진 않았지만 소위 '살가운 며느리'가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늘 뒤따른다. 그렇다고 어머님 옆을 졸졸 쫓아다니며 조잘조잘거리는 건 내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나를 어머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도 걱정이었다. 그러던 작년 추석, 어머님과 자신 있게 조잘거리며 대화할 수 있는 화제를 하나 찾았다. 제로웨이스트, 즉 환경에 대한 것이다.



 

 어머님과 장을 보러 나선 나는 처음으로 어머님 살림에 자세히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장바구니 사용이었다. 장을 보러 나온 어머님 손에 꼭 쥐어진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되는 크기의 네모난 천이 바로 그것인데, 펼치면 제법 큰 사이즈의 내구성도 괜찮은 장바구니로 변신하였다.

@장바구니를 메고 걸어가시던 어머님의 뒷모습

 어머님은 장바구니를 즐겨 사용하신다고 한다. 마트에 갈 때마다 받아오는 비닐봉지가 늘 아까우셨다고. 잘 썩지도 않고 환경을 헤치는 물건이라며 좋아하지 않는다 하셨다. 같은 이유로 집에서도 랩과 같은 일회용품은 잘 사용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그래서 장바구니를 즐겨 사용하게 되었는데 오며 가며 갑자기 물건을 구입하게 될 때도 있어 가방 속에 늘 가지고 다니게 되었다고 하셨다.


 7년 전쯤 미니멀리스트를 시작하고 나서야 환경에 관심을 갖게 된 나와는 달리 어머님은 일찍이 일상생활 속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계셨다. 나 역시 장바구니를 사용하기는 하지만 어머님처럼 늘 가방 속에 넣어 다니지는 않았다. 장을 보러 갈 때만 의식하고 챙겨나갔고 그마저도 몇 번 깜빡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어머님 말씀과 행동을 보고 깨달았다. 내가 안일했다는 걸. 의식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습관이 될 수 없다. 어머님은 이미 장바구니 사용이 습관이 되어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어머님께 장바구니 사용에 대해 하나를 배우게 되었고 지금은 내 가방 속에도 언제나 장바구니가 함께하고 있다.


 어머님의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함께 장을 보았던 같은 날 오후, 어머님이 주신 바나나 하나를 맛있게 까먹고 어디다 버려야 할지 몰라 내가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였다. 베란다에 내놓으면 된다는 어머님 말씀에 달랑달랑 바나나 껍질을 흔들며 베란다로 향한 난 "어머님, 이게 뭐예요?"라고 놀라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어머님은 음식물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도 남달랐다.

@햇살 아래 건조 중인 음식물 쓰레기

 이유는 아파트 단지의 음식물 쓰레기 처리 시스템 때문이었는데, 기존엔 냄비에 가득 모아 음식물 쓰레기통에 부으면 되었지만 이제는 배출량만큼 관리비에 부과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시부모님은 원래도 소식을 하시는 데에다 먹을 만큼만 음식을 해 드시기 때문에 배출량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지만 조금이나마 무게를 더 줄이고자 어머님은 음식물 쓰레기를 건조하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셨다고. 베란다에 널따란 상자를 하나 두고 신문지 한 장을 깔아 그 위에 음식물 쓰레기를 펼쳐두어 햇빛에 말려 건조 후에 버린다고 하셨다.


 이 뿐만이 아니다. 베란다 화단 속에서 내 눈에 너무나도 익숙한 생명체 또한 키우고 계셨다. 음식물 쓰레기 건조통에 묻혀 못 보고 지나칠 뻔했지만 그럼에도 존재감이 대단한 그것은 대파였다.

@곱게 자란 난초 같은 대파 한 단

 시장에서 산 대파 한 단을 냉장고가 아닌 화분에 모두 심어두셨더랬다. 냉장고에 보관하면 쉽게 무르기도 하거니와 밑동을 남겨두고 잘라먹으면 금방 쑥쑥 자라나 아버님과 두 분이서 꽤나 오래 드실 수 있다고 하셨다. (화분에 파를 심자는 아이디어는 어머님이 내셨지만 실제 파를 심으신 건 아버님이라고.) 식재료를 모두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이 아니라 어디에서 왔나를 생각하고 계셨다.



 추석 연휴를 함께 지내어보니 약간은 어색하고 어려웠던 어머님과의 거리가 가까워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님은 제로웨이스트라는 단어를 모르신다. 그럼에도 누구보다 제로웨이스터의 삶을 살고 계신다. 어머님의 이러한 모습은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건강한 자극이 되었다. 다음엔 어머님에게 어떤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게 될까. 시댁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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