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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팔월 Jan 25. 2021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또 하나의 방법

어머나 운동본부

 나는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편이다. 주위 친구들이 도대체 하루 종일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거냐고 놀리기도 많이 놀렸더랬다. (야한 생각과 머리카락 자라는 속도는 관계없다고 밝혀짐) 그럴 때마다 난 내 머리카락은 머리카락이 아니라 잔디라며, 아침마다 머리를 감는 것이 아닌 물을 주는 거라는 농담거리로 삼곤 했다.

@긴 머리 휘날리던 시절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 좋은 점은 미용실에서 머리를 망쳐도 빨리 수습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안 좋은 점은 그만큼 미용실 방문 횟수가 잦다는 점이다. 특히나 긴 머리일수록 기장 추가 비용이 발생해(심지어 난 머리숱도 많다) 미용으로 지불하는 비용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미용실에 지불하는 비용도, 머리를 하기 위해 족히 3-4시간은 앉아있어야만 하는 시간도 너무나 아까웠다.


 미용실에 가는 것이 너무나도 귀찮았던 난 단발로 싹둑 커트한 뒤 긴 머리가 될 때까지 쭉 길렀다가 머리가 길면 다시 단발로 정리한다. 이렇게 하고 나니 미용실은 1-2년에 한 번만 방문하면 되어서 미용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었지만 뭔가 못내 아쉬웠다. 재작년쯤이었을까. 평소와 다름없이 단발로 자르러 미용실에 간 난 생각에 잠겼다. 이렇게 많이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어떻게 할 방법은 없을까? 하고.



어머나 운동본부 (http://www.givehair.net)
@어머나 운동본부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인터넷 서칭을 통해 이렇게 잘려서 버려지는 머리카락들을 기부받는 곳이 있단 걸 알아낼 수 있었다. 그곳이 바로 어머나 운동본부이다. 어머나 운동본부는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받은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제작하는 곳이다. 반드시 잘라야만 하는 것이 아닌 말릴 때 빠지는 머리카락들을 가지런히 잘 모아서 보내도 되었다. 난 이미 머리카락이 많이 자란 상태였던 터라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서 기부하는 것이 아닌 잘라서 기부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당시에 난, 바로 기부에 동참하고 싶었지만 펌과 염색으로 모발이 손상되어 있던 상태라 기부가 힘들 것 같았다. 가발을 만들기 위해선 일련의 공정을 거쳐야 하는데 손상된 모발은 가발 제작에 적합하지 않아 결국은 폐기될 가능성도 있었다. 쓰레기를 보낼 바엔 처음부터 제대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펌/염색 모두 안 하기로. 후원자가 어떤 것을 지켜서 기부해야 하는지 제대로 알아본 뒤 확실하게 동참하고 싶었다.

@머리카락 기부 절차

 다시 한번 내용을 숙지했다. 25cm 이상의 머리카락을 묶어서 기부할 것. 25cm가 충분히 나올 때까지 펌과 염색 없이 자연 모발 상태로 길렀다. (미니멀라이프를 시작하고 더욱 관심을 갖게 된 환경문제도 있지만 내가 펌과 염색을 모두 그만두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어머나 운동본부 덕분이다)

 기부를 위해 고무줄로 묶고 머리를 잘라야 한다 요청드렸더니 흔쾌히 도와주셨다디자이너 말로는 손님들 중에 종종 기부를 위해서 이렇게 잘라달라고 요청하시는 분들이 계시다고 했다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 기부할 머리카락까지 준비가 완료됐으면 신청서를 작성할 차례다. 어머나 운동본부 홈페이지에 접속한다메인화면에 상단에 있는 기부 신청서 작성을 클릭한다. 신청서 작성란에 빈칸은 모두 기입한다. 향후 기부증서를 받고 싶다면 이름은 반드시 실명으로 기입을 해야 한다. 어머나 운동본부에서 신청서 작성까지 완료했다면 머리카락을 포장하여 발송하면 . 나는 발송할 머리카락을 다시 빗어두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머리카락을 1차로 지퍼백에 넣어 밀봉하고, 서류봉투에 담아 등기로 발송하였다.

@기부를 위해 정리해 둔 머리카락

 등기 발송을 하고 약 한 달 뒤, 기재한 이메일로 기부증서가 도착했다. (지금은 회원가입을 해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것 같다) 연말 기부 소득공제니 뭐니 그런 혜택은 처음부터 바라지도 않았다. 어린 친구들이 투병하는 것도 힘들 텐데 항암치료 중에 빠진 머리카락이 다른 친구들에게 놀림거리가 된다니. 병원비도 너무 비싼데 가발까지 가격이 상당하여 구매가 쉽지 않다는 아이들을 위해 작게나마 무언가를 해줄 수 있다는 기쁨 자체로 충분했다.

 작년 여름에 첫 기부를 하고 지금은 열심히 머리카락을 기르는 중이다. 빨리 자라나는 머리카락이 지금만큼 고마울 때도 없던 거 같다. 기부라는 행위는 반드시 금전적인 걸 수반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다시금 깨닫는다. 마음이 있다면 어떤 형태로든 가능한 것 같다. 나에겐 귀찮기만 했던 머리카락이 아이들에겐 소중한 가발이 될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하다. 마음 한편엔 내가 머리카락 기부를 너무 늦게 시작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괜찮다! 지금부터 시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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