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란 눈의 여자
그녀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크고 동그란 눈을 가졌다.
환하게 빛이 나는 얼굴에 예쁜 눈을 가졌지만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녀와 나는 어른이 되기 직전에 만났다. 그녀가 먼저 말을 걸어주었다. '안녕?신입.'이라고 했을 것이다.
사회에서 만난 친구들이 그렇듯이 우리는 서로의 과거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같은 직업에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며 적어도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는 과거의 친구들보다 많이 알게 되었다.
우리는 나이가 비슷했고, 또래 청춘이 할 법한 다양하게 쓸데없는 고민을 나누었다. 게다가 꽤 잘 어울리는 취향을 가진 우리는 수많은 곳에서 더욱 많은 사람과 다양한 시간을 보냈고 셀 수 없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가 끌어안은 크고 작은 고민과 불안하지만 행복한 미래에 대한 상상에 대해서 말이다.
그녀는 처음엔 굉장히 외향형으로 보였지만, 사실 어쩌면 내향형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것에 어색해하는 것을 알고 있다. 사실 어쩌면 스스로에 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저 자신의 마음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과 말하지 못하는 것의 차이는 꽤 크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대해 그저 짐작을 할 뿐이다. 그녀의 행동이 일종의 단어를 대신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행동이 또 한 가지 단어만을 의미하는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단어 하나로 그녀를 설명하는 일은 아직도 조금 어려운 영역이다. 어쩌면 몇 개의 단어로 누군가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 것부터가 무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때로 솔직해졌다.
원하는 것과 지켜야 할 것이 분명 해지는 순간에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한 방향으로 흐른다. 원한다 혹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때로 잔인해졌다.
남들에게 날 선 말과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굴곤 했다. 그럴 때의 그녀는 서늘한 짙은 푸른색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녀는 수시로 한없이 관대해진다.
그건 좋아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 한정해서 보이기도 한다. 강물이 잔잔히 흐를 때 빛나는 물결처럼 그녀의 마음이 조금씩 일렁이며 사람들을 향해 한없이 흐른다. 그럴 때 그녀는 마치 바닷가의 파도가 모래를 덮어 쓸어내려가듯이 모든 것을 내어주곤 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기쁨이고 행복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모습의 그녀를 항상 원하기만 하면 안 된다. 그녀는 따뜻하고 배려하는 사람이지만 모든 마음이 영원히 한 방향일 수 없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오만하게 그녀를 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쩜 다시 차갑고 잔인한 그녀를 마주하게 되고 말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많은 단어를 고르고 고르다 결국 이렇게 긴 글이 되어버렸다. 아직도 그녀를 표현하기에는 조금 짧지않나하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종종 짧은 시간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대체로 많은 말을 쏟아내는 건 내 쪽이다. 그렇게 그녀를 만날 때 나는 틈틈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럴 때 그녀는 묵묵히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다. 영민한 얼굴의 그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얼굴이다. 우리는 이제 꽤 어른이 되어가지만 나에겐 과거의 어렸던 시절 그녀가 가졌던 꿈이 바람이 그녀의 표정에 박제되었다.
무엇을 추구하는지 어디로 가고 싶은지 어떤 것이 하고 싶은지 하는 것들에 관해서 지금보다는 조금 어렸던 우리는 오랜 시간을 들여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손에 잡히지 않는 많은 것들을 말로 풀어내는 건 많이 어려웠고, 시간이 우리를 등 떠미는 동안 우리는 여러 가지 선택을 거쳤다. 지금은 그렇게 가지게 된 각자의 자리를 살아내고 있다. 점점이 놓인 선택의 기로에서 우리는 많은 다른 선택을 했다.
그녀와 나의 선택은 때로는 맞닿을 수 없는 수평선처럼 정반대의 위치에서 11자의 형태로 흐른다. 그렇다고 그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건 꼭 같은 삶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공유하지 않는다. 그게 우리의 룰이다. 그녀는 늘 나를 응원해준다. 그리고 나 또한 그녀를 뜨겁게 응원하고 있다.
과거의 누군가는 버텼고, 한 사람은 모험을 떠났다. 모험을 떠난 사람은 새로운 곳에 안착했다. 버티던 사람은 새롭게 버틸 곳을 찾았다. 모험하던 사람은 동료를 찾고 낯선 곳에 둥지를 틀었다. 동료와 함께 새롭고 단단한 울타리를 쌓아간다. 버티는 사람은 모르는 세계다. 서로의 세계가 수없이 달라지고 있음에도 우리는 샴쌍둥이처럼 늘 어딘가 연결되어있다.
내가 아는 한 그녀는 지금도 수많은 꿈을 꾼다. 우리는 매일 내일을 다짐한다.
미래는 여전히 꽤 불투명한 글라스 뒤에 숨었지만 시간이 꼭 우리에게만 그런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