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이가 생각났다.

by 도토리




수학 문제 풀기를 시작했다는 언니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 생각났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수학을 아주 잘하던 남자아이가.


스무 살,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되었던 남자아이. 나는 대학 신입생이었고 그 아이는 재수생이었다.

그 아이는 키가 작았고 잘 생기지 않았으며 성격이 꽤나 예민한 편이었다. 당연하게 외모도 성격도 내 스타일은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여러모로 나와 결도 많이 달라서 특별히 개인적으로 친해질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하고 편히 대했다. 나의 거리낌 없음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는지 종종 연락을 해왔다. 아마 지방에서 올라와 하숙을 하며 재수생활을 이어가던 아이는 가끔 외로웠던 것 같다.

우리는 어쩌다 가끔 만나 영화를 보거나 서점에 가거나 차를 마셨다. 그걸 계기로 공부를 하다가 담배를 피우러 나오곤 하는 시간에 주로 전화를 걸어왔다. 기본적으로 수다스러운 편인 나와 그 아이는 전화로 꽤 많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 아이는 공부의 힘겨움과 막연함에 대해 나는 새로 시작하게 될 단기 아르바이트라던지 이런저런 시시콜콜함에 대해. 그리고 취향에 대해.



라이프 스타일과 성향이 나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우린 다른 공통적인 화제가 별로 없었다. 지역도 너무 다른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나이였고, 수학 때문에 수능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수포자와 수학이 가장 쉬운 과목이라는 사람 사이에는 공통적인 지점이 별로 없을 수밖에.

그러나 취향에 관한 대화는 생각보다 사람을 빠르게 가깝게 해 줄 수도 있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


우리는 몇 번의 통화를 나누던 중 'Paper'라는 월간잡지의 애독자라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번 몇 호에 실린 그 글을 읽어보았냐는 것으로 시작되는 대화는 생각보다 즐거웠다.







함께 수능 다시 안 볼래?



그 아이는 재수를 하며 의대를 지망하고 있었는데, 지난 수능에서 한두 문제 정도의 차이로 의대를 지원할 점수가 안되었다고 했다. 사실 그 점수라면 국내 어지간한 대학은 그냥 골라서 갈 수 있어 보였는데, 한 문제만 실수해도 바로 지망하는 곳에 갈 수 없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보며, 역시 나와는 다른 삶이라고 생각했다. 모르는 것을 공부하는 게 아니라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공부를 반복하는 삶은 꽤나 지루하고 힘겨웠을 거라고 짐작한다. 지금에 와서야 말이다. 왜냐하면 당시 나는 재수를 하고 싶어 했었고 집안 사정으로 그냥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친구였지만 한편으로 집안의 지원을 받으며 마음껏 수험생활을 다시 할 수 있는 점이 마냥 부러웠다. 난 시시때때로 알바를 해야 했고 과제를 하기 위해 잠을 줄여 살았다. 그래서 먹고살만한 집 도련님이 배부른 소리 한다는 질투어린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엔 나도 사실 재수를 하고 싶었다는 마음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지난 수능의 내 수학 점수에 대한 개인적 아쉬움을 토로하면서. 그러자 그 아이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너 수학 과외해줄테니, 반수 해볼래?"라고.

본인 공부가 바쁜 상태였기 때문에 상당히 빈말처럼 들리기도 했거니와, 그때는 1학년 1학기가 반쯤 지나갈 때였는데 전공과목은 고등학교 때부터 하던 거라 그저 그랬던 반면 친구들과의 생활만큼은 그래도 즐거웠기 때문에, 과제를 위한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는 핑계를 대며 못한다고 해버렸다.







너는 수학을 못해.



이전에 나는 수학 과외로 이미 상처를 받은 적이 있다.

고2 때 공대에 다니던 친척 언니에게 잠깐 과외를 받았다. 언니는 자기 스케줄에 맞춰 매번 과외 시간을 바꾸기 일쑤였고 과외를 하러 와서는 내가 푼 문제를 대충 봐주고(그땐 그렇게 느껴졌다) 정작 돌아가서 엄마한테 전화해서는 내가 수학을 못해서 과외를 계속해야 한다고 자꾸자꾸 반복적으로 이르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가 힘들게 일해 번 돈을 언니에게 주는 것부터가 못마땅했다. 수학 과외가 필요한 게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수학 실력도 느는 것 같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늘 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난 이미 내신 수학시험은 점수가 곧잘 나오고 있었으므로.


당시 나에게 정말 필요한 사람은 수학 선생이 아니라. 대학 진학이나 입시제도에 대해 정보를 줄 멘토였기 때문이다. 내신과 수능이 어떻게 다른지 그래서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 그래서 그에 대한 대비는 어떻게 하면 되는지, 입시전반은 어떻게 준비하면 되는지에 대한 멘토링. 수학 학원과 달리 개인 과외에서만 가능한 그런 것들. 먹고살기 바빠 대학생활이나 입시를 경험해본 적 없는 엄마는 해줄 수 없었던 입시정보와 동기부여. 엄마도 그런 걸 기대했으리라. 수학만 가르치는게 아니라 나를 챙겨줄거라고. 우리 엄마에게 무척이나 싹싹했던 언니였기 때문에. 하지만, 언니네 형제들은 당시 당숙모의 대단한 치맛바람을 등에 업고 성공적인 입시를 마쳤기 때문에 그런 나의 갈급함을 짐작조차 못했으리라 생각된다. 언니가 엄마를 대신할 수는 없었던거다.

어쨌든 언니가 나에게 단순 문제풀이가 아니라 진학 혹은 대학생활에 대한 멘토링을 해주겠다고 나섰다면 아마 나는 지금까지도 언니를 무한 신뢰했을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언니는 그냥 수학선생이었다. 우리는 문제풀이만 반복했다. 그건 문제집 오답풀이에도 나와있는 건데...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심지어 나에겐 이 과외가 언니에게는 그저 손쉬운 용돈벌이 수단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엄마의 피땀눈물을 쉽게 가져가는 것 같은 언니가 얄미운 마음도 있었고.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결국 언니는 그저 평탄하게 살아온 갓 스무살을 넘긴 어린 학생이었던거지.


어쨌든 결국 나는 엄마에게 수학을 못한다는 낙인이 찍혔고, 나의 수리적 사고에 대한 자신감 또한 바닥을 찍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시작한 과외는 그 과목에 대한 자신감만 잃은 채 종료된 것이다.

사실 언니나 엄마는 잘 몰랐겠지만 그 전까지 나는 수포자는 아니었다. 평균적으로 등수는 대체로 상위권이었다. 고1까지도 수학 점수는 90점대 이하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아니 심지어 좋아했다. 문제가 풀리면 시원해지는 명확한 답이 나오는 그 과목을..



내가 수학을 내려놓은 건 그 이후 일이다.

수학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를 완. 벽. 히. 잃었기 때문이다.

18세 인생 살면서 못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말 잘 듣고 착하고, 공부도 알아서 곧잘 하는 모범생 장녀 프레임에 씌워진 채 늘 더 잘하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는 그냥 못하는 애라는 말을 들었고 자존심에 상처를 크게 입었다. 준비가 안되었던 것 같다. 알을 깨고 나갈. 나는 어차피 수학을 못하니까라는 반발심 가득한 마음과 어차피 전공살리면 예대 갈건대 수학은 잘해서 뭐해하는 안일함까지 더해져서 수학을 내팽개쳤다. 그리고 내 인생 첫 실패 경험을 만들어내었다. 망. 했. 다.

친구들이나 선생님들 기준에서는 나쁘지 않은 진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 기준과 많이 달랐던 게 문제라면 문제. 그래서 나는 재수가 무척 하고 싶었다. 내 멍청함을 바로잡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지만 그 때 공부를 함께 하지 않은 건 사실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그 아이에게 내 수학 실력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마음이 컸을 거다.

알량한 자존심.

내신과 수능은 달라서 안일한 마음으로 공부한 그저 그런 수능 성적을 가진 나와는 달리 최상위권 점수를 받고도 단지 의대에 못 간다는 이유로 재수를 한다는 머리 좋은 동갑내기 친구 앞에서 수학으로 창피당하는 게 너무너무 자존심 상했기 때문에. 너 수학 못한다는 말을 또 들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결국 내 인생 마지막 수학 점수는 망친 수능을 끝으로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후에 알았다. 그 아이는 진심으로 나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했음을. 남사친에서 남자 친구로 건너뛰고 싶어 하는 마음이었다는 것도 함께.




살다가 힘들 때나 벽에 부딪힐 때 가끔 생각해봤다.

내가 그때 그 제의를 받아들이고 함께 공부했다면 내 인생이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까?

그 친구는 원하던 의대는 진학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역시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학을 졸업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난 건 그 친구가 우리나라에서 신입 연봉 높기로 유명한 대기업에 취직한 직후였다. 나는 그 친구가 안정적인 직업인으로 연착륙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했다. 그렇다 해도 갑자기 연락해온 건 그 아이도 본인의 이미지 업데이트를 통해 상처 받은 자존심을 지키고자 뜬금없이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 친구를 만나고 점수가 좋다고 해서 인생이 쉬워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들어갔지만, 여전히 인생 알 수 없다며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를 보면서 말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고 본인의 삶이 어떻게 흐를지 모르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다.

누구나 인생은 1회차고 삶이라는 건 정답은 없어서 명쾌한 수학 문제 같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내 인생에 남이 매긴 점수는 의미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니까..


나는 날마다 풀리지 않는 문제를 붙들고 머리를 쥐어뜯고 있지만

내 곁에는 인생의 문제풀이 같은 좋은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까 괜찮다.

나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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