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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25. 2021

내가 나인 게 참 싫어서





내가 나라서 참 별로라는 느낌이 드는 날이 있다. 

나로 인해 일어난 일들이 모두 무의미하고 쓸데없는 것들로 가득하게 느껴지는 그런 날.

머리로는 알고 있다. 타인들은 나에게 한 조각의 관심도 없을 거라는 걸.

그럼에도 나는 주저앉아 머리를 싸매고 그들 앞에 섰던 오늘의 나를 탓한다.



어떤 날엔 모두가 일렬로 잘 늘어선 줄에 어쩐지 나만 옆으로 삐딱하게 서있던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한다.

'튀어버렸다'라고 생각하는 날인 것이다. 눈에 띄고 싶지 않은 굉장한 내향인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부분이다. 일어나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 같이 느껴지는 그런 상황은 늘 일어나버리고 그럴 때 이상하게도 상대의 반응에 더욱 민감해지고 그리고 나는 많이 겸연쩍어진다. 

하지만 겉으로 무척 태연하기 때문에 그 상대로서는 본인의 언사나 행동을 교정할 필요는 없다. 상황은 혼자 일으킨 것이 아니고, 관계에서 타인의 행동은 내가 후회해줄 성질의 것이 아니므로 나는 나의 태도를 스스로 다그치고 후회하고 만다. 

결국 모든 것은 내 탓이라고. 그러지 말지 그랬냐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마음에 생긴 작은 틈 속으로 나는 자꾸만 빨려 들어간다. 


그리고 그 안에는 못된 싹이 자란다. 내가 나인 게 참 싫다는 마음의 싹이 무럭무럭.


그 어두운 틈에서 다시 비어져 나와 그저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라는 아무 생각 없음의 상태에 도달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사실 그런 생각을 깊게 하는 내 모습마저도 나는 무척이나 지겹다.

이만큼을 살아왔음에도 그 기분에 한번 빠져들면 어찌할 바 모르고 부끄러워지는데, 그럴 땐 일단 상황에서 멀어져야 한다. 저기 우주만큼이나 먼 곳으로 도망쳐야 한다.


드라마에서는 갑자기 등장한 남자(혹은여자) 친구가 막 그런상태의 주인공에게 짠- 하고 나타나서 '괜찮아. 너의 잘못이 아니야' 라고 말해주던데, 드라마가 아닌 현실을 사는 나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란 그저 얼른 집으로 달려가 내 동굴에 들어가 땀이 쏟아질 만큼 매운 음식을 먹거나 그 모든 걸 잊을만한 다른 것에 집중을 하는 일인데 그것 역시 현생을 살다보면 매번 그리할 수 없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

나는 결국 하루 종일 벌어진 틈을 의식할 수 밖에 없고 잠들기 직전까지 그 생각이 머릿속을 뱅뱅 돌아다니며 나를 괴롭힌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는 피곤한만큼 깊은 잠을 자는 사람이라 하루 종일 요동치던 기분도 잠이 들었다 깨어나면 영화 속 장면 전환되듯이 정서적인 상태도 전환되긴 한다는 점이다. 

무의식의 세계에 들어갔다 나온 뒤의 자연치유 기능이랄까..?


이래서 옛말에 잠이 보약이라고 했나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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