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처음엔 살림을 늘리는 게 정말 신이 났다.
어디를 둘러봐도 내 집(물론 세입자이지만)이고, 내 공간이었던 터라 더 이상 엄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짐을 부려도 된다는 것이 신이 났었다. 난 양가 부모님께 지원받지 않은 대신 진짜 독립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다. 무던한 성격과 취향을 가진 남편은 내가 뭘 하든 크게 태클을 거는 법이 없었고.
자취 경험이 없는 건 둘이 같았어도 자신의 공간이나 집안을 꾸미는 것에 대한 관심도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고, 남편네집에선 결혼 전까지 어머니가 모든 살림을 하셨기 때문이었을 거다. 그래선지 남들이 그렇게 많이 다툰다던 신혼 초에도 우리는 그런 걸로 크게 다투는 일은 없었다. 나에겐 생전 처음 가져보는 살림살이가 무척 재미있었고, 그는 그저 그걸 누리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릴적부터 소꿉놀이도 좋아하던 나였고, 아직 이십 대에 철딱서니 없이 고민도 로망도 없이 덜컥 결혼한 거였으니까.
그렇지만, 평화라는 건 원래 힘이나 에너지의 균형이 유지되었을 때 지켜지는 것이 아니던가?
그 밸런스가 무너지게 되는 순간 문제는 발생하고 마는 것.
그때까지 식구라고는 인간 둘 뿐이니, 딱히 어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 사람이 어질러봐야 다 큰 어른이라 크게 심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저 살림을 예쁘게 '관리'하고, 음식을 해서 '먹고 치우거나' 집안을 '예쁘고 보기 좋게' 꾸미는 살림을 하면 되는 거였다. (예쁘게 하기 위해 소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빨래는 어차피 내 것도 하니까 그리고 내 옷이 더 많으니 내가 해도 괜찮았고, 청소도 내가 더 좋아하니 내가 하면될 일이었다. (지금도 신기한 건 빨래가 쌓여있어도 보이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마법이 있기도 하다는 점이지만) 아마도 거기까지 그러니까 적당한 분별력을 가진 성인 둘이 발생시키는 집안일까지가 내가 '혼자' 해낼 수 있는 살림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서 살림이라는 '일'의 밸런스가 무너진 포인트 중 가장 큰 건 뜻하지 않게 우리에게 동물 가족이 생긴 까닭이다. 고양이는 아주 무척 매우 귀엽지만, 우리 집에 거대한 혼돈을 가져왔다.
특히 한 번에 3마리의 고양이가 생겼을 경우엔 말이다. 그 때 처음으로 나에게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도 알았다. 아무튼 퇴근이나 외출 후에 집에 돌아와 내가 어지르지 않은 물건들이 제멋대로 나뒹굴고, 고양이 털이 날아다니는 광경을 보는 건, 살림하는 즐거움에 숨겨져있던 저 반대편의 어둠이었다. 그 안에 아무렇지 않다는 듯 난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는 그 난장판에서 편안한 자세로 나뒹굴고 있는 남편을 보는 건 더더욱 최악이었다.(부글부글...)
우리가 나이를 먹고 결혼 연차가 쌓이며 집에서 살림을 할 시간이 점점 부족해졌다. 경력이 쌓일수록 업무량은 치솟았고 회사에 머무르게 되는 시간이 길어졌다. 반대로 새로운 커리어 패스를 꿈꾸며 완전히 업계를 변경해 이직한 그즈음의 남편은 나보다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효율적인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결혼 3년 차가 지난 그 시점부터 남편에게 '청소하기', '빨래하기'를 가르쳤고, 수건과 여자 블라우스 개기를 알려줘야 했고, 고양이 화장실 및 식사 케어라는 담당 영역을 정해주었다. (답답함과 잔소리는 역시 내 영역이었다.)
그리고 현대인의 스트레스로 가득 찬 나는 무언가 치울 시간도 없이 늘 새로운 것들을 탐했다.
남편은 애초에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하는 것을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일단 문제가 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러다보니 모든 물건을 넣어두는 우리 집에서 가장 큰 방 '작업방'이라는 명칭의 '대형 팬트리'에 가까운 방은 일단 '넣어두는 방'이었다.
새 물건 혹은 추억의 물품들은 진열되지 못한 채 방에 그냥 넣어졌다. 내 귀찮음과 무기력증과 기타 등등의 각종 심리적 핑계도 함께.
"어 그거, 일단 넣어둬." "어디에?" "작업방에."
그 방엔 과거의 다양한 추억뿐 아니라 살림에 유용한 다양한 물품들(양가 어머님께서 챙겨준 여러 가지 아이템들)이 들어가 있다. 매번 거절하지 못하고 받아오는 '잡곡과 햅쌀' 도 그 품목 중 하나이고.
언젠가 아무렇게나 밥을 해도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고슬고슬한 흰쌀밥으로 거듭날 능력을 가졌던 햅쌀이었을, 지금은 묵은쌀들이 집밥은 엄두도 안 나게 바쁘게 사는 사이 늘어나 있었다.(하물며, 우리 집엔 전기밥솥도 없는데...) 하지만, 정리하는 건 좋아해서 벌레 생기면 안 된다고 가져와서 바로 빈 생수병에 소분해 둔 쌀들이 열 통도 넘게 있었다.
주말 출근을 했다가 집에 와서 택배를 뜯어 '넣어두는 방'에 들어갔다가 한 편의 잡곡들을 보고 내 저걸 치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묵은쌀 처리법'을 네이버에 검색해보았다.
떡을 해 먹으란다. 정녕 답이 이것뿐인가? 식구가 둘 뿐인데 쌀 20킬로를 떡을 했다가는... 떡에 눌려 죽을 것 같아서 혹시나 하고 다른 답변을 찾아보니, 고등학생들이 올린 '묵은쌀 구합니다'라는 글도 있었다. 무슨무슨 실험에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 그럼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당근 마켓'에 올려보았다.
'묵은쌀, 나눔 합니다.'
1분도 채 되지 않아 채팅이 스무 개도 넘게 들어왔다. 무료 나눔은 처음이라 깜짝 놀랐다. 아니 묵은쌀이 이렇게나 필요한 물품이었던 건가! '나눔'이라는 키워드의 힘인가?(사람들의 심리가 너무 궁금하다..)
아무튼 궁금해하면서 일단은 가장 먼저 채팅을 보낸 분께 묵은쌀을 드리기로 했다.
하필 어버이날이었고 나로선 친정엄마, 시엄마가 햅쌀로 맛난 밥 해 먹으라며 챙겨주신 그 마음을 그냥 버리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엄마 미안.) 그럼에도 느껴지는 죄스러움을 조금 덜기 위해 나는 오늘 저녁에 쌀 배달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