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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Aug 16. 2021

쓸모를 다한 삶에 대하여..




"넌 진짜 쓸모 있는 아이야."



종종 들었던 '쓸모'라는 단어를 불현듯 열 번쯤 되뇌어 보았다. 굉장한 미시감이 느껴지며 그 의미가 혼탁해지고 말았다.  도대체 누가 나를 쓸모 있다고 여긴단 말이냐. 이런 수동적인 단어였다니?!



요즘 머릿속에는 언제까지 쓸모 있게 살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과 사람이 도구도 아닌데 꼭 쓸모가 있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교차한다. 

근래에는 종종 생각이 많아지는데, 유일하게 완벽하게 혼자인 시간인 출퇴근 시간 차 속에서 음악을 들으며 기계적으로 운전을 하다 보면 빠지게 되는 생각들이었다. 직장인으로 계속 이렇게 소모되다가 나의 쓸모가 없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스러운 생각이 가끔 들고, 때로는 그 끝에 다다라서 결국 누군가 혹은 어딘가의 나의 쓰임에 대해 늘 증명하며 살고 있었다는 커다란 서글픔이 몰려왔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쓸모없이 살아 본 경험이 없다.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라서 기뻤다.

요즘 말하는 K-장녀로 태어나 적당한 가정에서 태어나 적당히 살면서 별다른 폭풍의 시기 없이 컸다. 대충 본인 할 일은 알아서 하는, 아무래도 남동생보다는 여러모로 쓸모 있는 딸이었는데, 학생 땐 나름 친구들의 과제를 도와주곤 하는 친구였고, 회사에 입사해선 스스로 부족하다 느꼈던 부분 때문에 더욱 내 역할을 증명하며 일하려고 했던 것 같다. 심지어 결혼 후에도 나는 제법 쓸모 있는 며느리이고자 했다.



그래도 20대에는 나의 쓰임이 점점 키워져 가는 것 같았다. 날마다 좀 더 쓸모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쓰며 살았고, 그 결과 톱니바퀴처럼 잘 쓰이면 가끔 기뻤다. 

30대에는 어느 정도 증명되었으니 이제는 더욱 효율적인 나 사용법에 대해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지금과 다른 점이라면 그땐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달리는 시기였다는 거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쩌면 한참 때 나는 '바쁨' 그 자체를 좀 즐겼었다.  나는 꽤 바쁜 사람이고 그건 쓸모가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하며 남들의 평가로 내 자존감을 채웠던 것 같기도 하다. 일은 바쁘게 해야지. 노는 것 마저도 최선을 다해서 놀아야 하고. 모든 것에 누구보다 열심이었어야 했던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지금.. 최근 2년 정도 마치 내 마지막 체력을 태워버리듯 일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러다 쓸모를 다해버린 사람이 된 그런 기분이 드는 것. 할 수 있는 건 다했다는 체념이 드는 순간이 간혹 찾아오고 스스로 이런저런 한계에 부딪혔다.

앞자리가 큰 숫자로 바뀌어서인지 1번째 나의 쓸모를 다하면 다가올 어쩌면 2번째의 나의 쓸모에 대한 고민은 점점 커졌다. 



제까지 이렇게 일할 수 있을 것인가...?  그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어쩌면 쓸모를 다한 삶이 무의미한 건 아닐 수 있다. 

아니 무용한 채로 괜찮은 삶이라면 훨씬 행복할 것 같다. 혹은 지금 내가 생각하는 쓸모와 전혀 다른 새로운 어떤 것이 있을지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본다.


존재해주는 것만으로 나에게만은 최고의 쓰임을 다해주는 내 소중한 사람들처럼.

나도 어딘가에..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어떤 것을 찾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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