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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의 노동이 2시간의 혁명이 되기까지

'완독의 감옥'에서 탈출하다

10시간의 노동이 2시간의 혁명이 되기까지: '완독의 감옥'에서 탈출하다

부제: 인지심리학으로 풀어본 '요약독서법'의 효과와 나의 독서 인생 개조기



책장 앞에서 한숨 쉬던 나, 활자의 무게에 짓눌리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 스스로를 ‘애서가’라 칭하는 사람들에게도 남모를 고통이 존재합니다. 서점에 들러 반짝이는 새 책을 집어 들었을 때의 설렘은 찰나에 불과합니다. 계산대를 지나 내 책상 위에 두꺼운 ‘물성’으로서의 책이 놓이는 순간, 설렘은 곧장 묵직한 압박감으로 변모합니다.

특히 300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위 ‘벽돌책’이라 불리는 인문학 서적이나 전문 서적을 마주할 때면 제 무의식은 언제나 같은 비명을 질렀습니다.


‘저걸 언제 다 읽나? 이번 생에 다 읽을 수는 있을까?’


책을 펼치기도 전부터 기가 질려버리는 현상. 저는 이것이 단순히 저의 의지가 박약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것은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제 뇌리에 깊숙이 박힌 ‘완독(完讀)의 강박’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책을 ‘배웠’습니다. 교과서의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조사 하나 빼놓지 않고 달달 외워야 시험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학습된 습관은 성인이 된 이후의 교양 독서까지 지배했습니다. 서문부터 목차, 본문의 모든 챕터, 심지어 마지막에 붙은 참고문헌 리스트까지 샅샅이 눈으로 훑지 않으면 마치 숙제를 안 하고 학교에 간 학생처럼 찜찜함을 느꼈습니다.

그렇게 ‘완독의 함정’에 빠져 있던 지난 9년, 저에게 독서는 즐거운 유희가 아니라 해치워야 할 거대한 과제였습니다. 마음이 가벼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읽었지만 남는 게 없는 ‘밑 빠진 독서’

문제는 ‘완독’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럽게, 끈기를 발휘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활자를 씹어 먹듯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 나면 찾아오는 거대한 허무함이 진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핵심이 뭐지?”


누군가 이렇게 물어보면 말문이 막혔습니다. 분명 며칠을 투자해 다 읽었는데, 머릿속에 남은 것은 파편화된 문장 몇 줄뿐이었습니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관통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 즉 ‘One Message’를 뽑아내는 일이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결국 저는 타협했습니다. 책의 전체 맥락을 파악하는 것은 포기하고, 내 마음에 와닿는 감성적인 문장이나 그럴듯해 보이는 문구를 골라 ‘필사’를 하고, 그것을 버무려 서평을 썼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저자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무난한 독후감이었지만, 제 내면은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책을 장악하지 못했다는 것을요. 그것은 독서가 아니라 ‘활자 구경’에 가까웠습니다.

가장 치명적인 비용은 바로 ‘시간’이었습니다. 보통 300페이지 분량의 책 한 권을 완독하는 데 저는 꼬박 10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 1시간 독서하기도 벅찬데, 책 한 권에 열흘이 걸리는 셈입니다. 만약 특정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관련 도서 10권을 읽어야 한다면? 단순 계산으로도 100시간, 세 달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세상의 변화 속도는 빛과 같은데, 저의 지식 습득 속도는 달구지보다 느렸습니다.

주변의 다독가들을 보며 경외심과 질투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그들은 하루에 한 권, 아니 몇 권씩 책을 읽어내고 그 지식을 연결해 새로운 통찰을 쏟아냈습니다. ‘도대체 뇌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길래 저게 가능할까? 속독 학원이라도 다닌 걸까?’ 그들의 비결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속 시원하게 그 ‘방법(How-to)’을 알려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왜 우리는 완독에 실패하는가?

저는 이 문제의 원인을 단순히 ‘집중력 부족’이나 ‘난독증’ 탓으로 돌렸지만, 사실 이는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의 관점에서 매우 명확하게 설명되는 현상입니다.


1) 선형적 독서(Linear Reading)와 인지 부하 이론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 방식은 ‘선형적 독서’입니다. 1페이지부터 순서대로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죠. 하지만 성인의 뇌, 특히 문제 해결을 위한 실용 독서에서 이 방식은 ‘인지 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에 따르면 매우 비효율적입니다.

우리의 ‘작업 기억(Working Memory)’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이 지극히 제한적입니다. (조지 밀러 교수는 이를 매직 넘버 7±2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런데 책의 구조(숲)를 파악하지 못한 채, 문장 하나하나(나무)의 해독(Decoding)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면 뇌는 금방 과부하 상태에 빠집니다.

제가 책을 읽다 덮어버렸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핵심 내용이 나오기도 전에 등장한 낯선 용어, 현학적인 표현들이 제 작업 기억의 용량을 초과해 버린 것입니다. 뇌는 과부하를 막기 위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책 덮기)’을 일으킨 것이죠.


2)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부재

완독에 집착하는 독서는 ‘메타인지’를 마비시킵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이 정보가 내 문제 해결에 왜 필요한지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며 읽어야 하는데, 활자를 순서대로 읽어내는 데 급급하다 보니 상위 인지 능력이 작동할 틈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지도가 어디를 향하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걸음만 재촉하는 것과 같습니다. 도착지(핵심 메시지)에 닿지 못하고 길 위에서 탈진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은대 작가의 <요약독서법>을 만나다

고통은 변화의 신호라고 했던가요. 독서가 주는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을 때, 저는 운명처럼 저의 글쓰기/책쓰기 스승님이신 이은대 작가의 <요약독서법>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스승님은 수많은 수강생이 저와 똑같은 문제, 즉 “책을 읽긴 읽는데 정리가 안 되고 시간만 오래 걸린다”는 고통을 겪고 있음을 간파하셨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출간된 책이 <요약독서법>이었고, 저는 그 길로 강의를 신청하고 강사 자격 과정까지 이수했습니다.

단순히 강의만 들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나서도 두 달여 동안 매주 2~3회씩 진행되는 심화 연구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기존의 독서 습관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훈련을 했습니다.


요약독서법의 핵심 원리: 파레토 법칙과 구조화

요약독서법의 핵심은 경제학의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을 독서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결과의 80%는 원인의 20%에서 기인한다."

책 한 권이 가진 300페이지 분량 중, 저자가 정말 말하고 싶은 핵심 메시지는 상위 20%의 키워드와 문장에 압축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80%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예시, 부연 설명, 사례들입니다.

요약독서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수동적 완독’을 거부합니다. 대신, 책의 목차와 서문을 통해 구조(Structure)를 먼저 파악하고, 저자가 숨겨놓은 20%의 핵심(Key)을 능동적으로 발굴(Mining)해내는 전략적 독서법입니다. 이는 미국의 교육학자 모티머 애들러가 주창한 ‘점검 독서(Inspectional Reading)’와 ‘분석 독서(Analytical Reading)’의 현대적이고 실용적인 결합이기도 합니다.


2시간의 기적을 경험하다

이론을 무장하고 훈련을 거친 후, 저의 독서 생활은 180도 달라졌습니다. 변화를 가장 극적으로 체험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1) 마케팅 책 ‘도장 깨기’: 묵은 체증이 사라지다

오늘 자이언트 독서모임 <천무> 90회차가 진행되었습니다. 이를 준비하기 위해 저는 지난 보름 동안 마케팅 관련 전문 서적들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예전의 저라면 ‘마케팅’이라는 단어만 봐도 겁을 먹고, 책장에 몇 년간 묵혀두었을 책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약독서법을 장착한 저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당황하지 않았습니다. 낯선 단어에 매몰되는 대신, 문맥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찾아냈습니다. 낯선 용어는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장애물이 아니라, 정복해야 할 고지일 뿐이었습니다.

몇 년 동안 쳐다보지도 못했던 난해한 책들을 요약독서법으로 ‘완독’해버렸을 때, 가슴 깊은 곳에서 묵직한 체증이 쑥 내려가는 듯한 쾌감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지적 만족을 넘어선, ‘해냈다’는 자기 효능감이었습니다.


2) <편안함의 습격> 단 2시간 완독의 기록

오늘 <천무> 모임의 선정 도서는 <편안함의 습격>이었습니다. 이 책은 현대인의 나약함을 꼬집는 전형적인 메시지 전달형 도서로, 요약독서법을 적용하기에 최적의 구성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저는 타이머를 켜고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1단계 (스캐닝): 목차를 통해 저자의 논리 전개 방식을 파악했습니다.

2단계 (키워드 포착): 각 챕터에서 저자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핵심 키워드를 낚아챘습니다.

3단계 (메시지 연결): 찾아낸 키워드들을 연결하여 한 문장의 핵심 메시지로 요약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단 2시간. 과거 300페이지를 읽기 위해 10시간을 끙끙대며 활자와 씨름하던 제가, 단 2시간 만에 책을 완독하고 핵심 메시지를 A4 한 장으로 요약해낸 것입니다.

이것은 ‘대충 읽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책의 내용은 그 어느 때보다 명징하게 구조화되어 머릿속에 각인되었습니다.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심으니, 지식의 뿌리가 더욱 단단하게 내린 것입니다.

독서는 ‘활자 읽기’가 아니라 ‘문제 해결’이다

요약독서법을 통해 강사 자격 과정을 이수하고, 실제 강의까지 진행하며 저의 독서 철학은 완전히 재정립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과거의 저처럼 책장 앞에서 한숨 쉬고 있을 여러분에게 확신을 가지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독서는 활자를 읽는 행위가 아니라, 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입니다.”

책을 읽는 목적은 저자가 쓴 글자를 검수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내 삶에 닥친 문제, 내가 가진 결핍을 해결하기 위한 ‘도구’로서 책을 활용해야 합니다.


요약독서법을 만난 후, 저에게 찾아온 변화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마음의 무게가 깃털처럼 가벼워졌습니다. 아무리 두껍고, 생소한 분야의 책이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 없다. 나에게 필요한 것만 취하면 된다”는 전략적 사고가 심리적 진입 장벽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둘째, 시간의 밀도가 혁명적으로 바뀌었습니다. 10시간 걸리던 완독이 2시간으로 줄었습니다. 이는 남들이 책 한 권을 읽을 시간에 저는 다섯 권을 읽고, 다섯 배 더 많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속도는 곧 경쟁력입니다.

셋째, 수동적 독자에서 ‘능동적 문제 해결사’로 변모했습니다. 과거의 저는 문제 앞에서 우두커니 서서 멍하니 책만 바라보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답(Answer)이 책 속 어딘가에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냥꾼처럼 적극적으로 텍스트의 숲으로 달려듭니다. 더 이상 활자에 끌려다니지 않습니다. 내가 주도권을 쥐고 책을 요리합니다.

고통이나 고난을 겪고 있다면, 그것은 “지금의 방식이 틀렸으니 방향을 바꾸라”는 신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저에게 책 읽기가 그토록 고통스러웠던 지난 9년의 시간은, 어쩌면 지금의 이 효율적인 독서법을 만나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책장 앞에서 “이걸 언제 다 읽나” 한숨 쉬고 계신가요? 이제 그 무거운 완독의 짐을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질문을 바꾸어 보세요. “이 책을 다 읽어야지”가 아니라, “이 책에서 내 문제를 해결할 단 하나는 무엇인가?”라고요.

질문이 바뀌는 순간, 지루했던 독서는 가장 짜릿한 문제 해결의 현장으로 바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경험한, 그리고 여러분이 경험하게 될 독서의 진짜 얼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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