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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마지막 관찰기

말없이 떠난 그에게 보내는 편지

by 신영웅

#1 내겐 취하지 않고선 절대 열지 않는 텔레그램 대화창이 있다. 그래서 보통 전날의 기억이 뜨문뜨문하도록 마신 날,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대화창을 열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편지처럼 써 내려간다. 오랜만에 맨정신으로 대화창을 열어본다.


그 대화창에는 내 인생에 조금 특별한 순간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에세이 출간과 네이버웹소설 정식 연재, 동아일보 인터뷰처럼 뭔가 칭찬 받고 싶을 때마다 찾아간 대화들이 남아 있다. 대화창을 유심히 보면 오른쪽 화자는 신이 나서 장황하게 이야길 하고 있지만 왼쪽의 화자는 단답이다. “한턱 쏘아유”나 “장하다 우리 영웅이” 같이 언뜻 보면 성의 없는 답장들. 그러나 왼쪽 화자의 정신없는 온, 오프라인 일상을 아주 잘 아는 나이기에, 그 짧은 문장들은 일상에 지친 내게 그 어떤 장황한 위로보다 힘이 되었다.


#2 2020년 7월 어느 날,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했다. 메이저 신문사에서 내게 인터뷰라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뱉은 말의 끝까지 한껏 힘을 주고 인터뷰를 마쳤다. 그리고는 급한 마음에 눈에 보이는 첫 번째 카페로 들어가 평소처럼 텔레그램을 열어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한참을 쓰고 있는데 선배에게 오랜만에 전화가 왔다.


“영웅씨, 기사 봤어요?”


내 인터뷰가 벌써 나왔을 리는 없고, 무슨 일이지? 왼손에 있던 전화기를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왼턱에 괴고는 피아니스트처럼 두 손을 랩탑에 올렸다. 그러나 뭘 입력할 필요가 없었다. 메인 화면에는 이미 내가 방금 전 문자를 보내던 왼쪽 화자의 실종 기사가 쏟기듯 도배되어 있었다. 수화기 너머로 나의 충격을 느낀 선배는,


“일단 기자들 전화 받지 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병원으로 와요. 올 때 옷 갈아 입고.”


갈아 입으란 이야기에 이미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설마 하는 기대는 선배의 옷을 갈아 입으란 말에 제압당한 채 힘을 잃었다. 서소문 앞 작은 공방 같은, 커피 맛이 별로였던 그 카페에서 한참을 울었다. 그리고는 도망치듯 카페를 빠져나와 택시를 타고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평소와 달리 모자도 쓰지 않았고, 반바지에 후드 차림도 아니었기에.


택시는 그렇게 사직동을 거쳐 경복궁 앞을 흐르고 있었고, 차창에는 인터뷰한답시고 왁스로 머리를 꽉 고정하고, 블랙 시어서커 수트로 쫙 차려 입은 이가 비쳤다. 광화문 앞의 길을 쭉 뻗어 있을 뿐이었다. 차장에 비친 모습이 싫어 눈을 감고 싶지만, 그러면 이 맺혀 있는 것들이 볼썽사납게 흘러내릴 게 뻔했다.


#3 그가 떠나고 벌써 3번째 겨울이다. 대화창이 오른쪽으로 기울어진지 이미 오래다. 마지막 편지를 쓴다. 이제 제법 괜찮아졌다고, 당신도 그 아이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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