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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May 01. 2023

야구모자 국가대표

마케터의 긴 생각 짧은 글

1950년대를 모티브로 한 공간을 만들다보니 자연스레 20세기 중반의 제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엄청 고가의 골동품을 수집하는 컬렉터는 아니고, 그냥 누군가에게는 낡은 고물이나 처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들을 발견할 때마다 가져온다.

이 글로브는 매거진에 이어 두 번째 수집품. 50년대 오사카에서 만들어진 제품으로, 예전에 아버지가 선수 시절 쓰시던 글로브를 버린 게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면서 디깅하기 시작했고 그보다 더 오래된 물건을 운좋게 찾은 것. 연식에 비해 상태는 훌륭했지만, 관리나 손질 상태를 보니 선수가 쓰던 것은 아니고 취미로 쓰던 글러브로 보인다.


어릴 때 글로브를 길들이는 법을 아버지가 알려줬다. 새 글로브에 공을 집어 넣고는 끝부분을 노끈으로 질끈 여몄다. 그리고는 어린 나에게 그 글로브를 밟게 했다. 아버지 시대의 제품들은 요즘 것들보다 아무래도 부족한 게 많았을테니 그 시대만의 길들이는 법이 있었을 텐데 비슷한 시기의 이 물건에는 길들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래된 기억이지만 황금동 살 때만 해도 오래된 야구 배트며, 글로브며, 돌공이라 불렀던 시합구들이 제법 남아 있었다. 그런데 만촌동으로 이사한 후로는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아깝고 아깝다. 하긴, 그 때만 해도 내가 야구 모자를 만드는 삶을 살 거란 것을 아버지도 어머니도 몰랐을 테니까.

후에 들은 것이지만 아버지는 국가대표로 공식 국가대항전에 뛴 적이 없다고 했다. 다만 상비군으로 등록이 되어서 연습 경기만 다녔고 그 즈음 불미스런 사고로 야구를 관뒀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에 대한 기록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


그렇다보니 괜히 욕심히 난다. 미완과 실패로 끝난 그의 야구 인생과 달리 내 야구모자 인생은 국가대표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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