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fine day
서른이 되고 부터는 일을 안하면 불안했다. 더 정확히는 불안함을 숨기기 위해서 일을 늘 옆에 뒀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함. 다른 이들이 술이나 담배를 찾는 것처럼. 일로써, 성과로써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게 사는 이유라는 내재된 가르침이 내 안에서 터져나온 시기가 그때쯤이다.
그렇게 쭈욱 10년을 살았다.
특히나 최근 이 강박이 절정에 다다랐고, 언제는 안 그랬냐고 아내는 반박하겠지만(응, 반박시 니 말 다 맞음) 태리타운을 시작하고선 ‘일’이 아닌 일상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과몰입 상태로 흘러 왔다. 요즘 아내가 화가 날 때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너한테 일 빼면 뭐가 남는데?!”
일 빼면 뭐가 남는지 찾아본답시고 핸드폰 사진첩을 본다. 256GB이나 되는 공간에 사진이고 영상이고 죄다 광고용 컨텐츠거나 레퍼런스용 자료들뿐이다.
일 빼면 뭐가 남는데? 일 빼면 남는 게 없다?
신영웅 - 일 = 0
신영웅을 정의하기 위해 좌변을 정리하면,
신영웅 - 일 + 일 = 0 + 일
신영웅 = 일
이렇게 완성된다. 괜히 서글퍼진다.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왔나. 나는 원래 오늘의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내일을 할 일은 하지 않는, 노나 공부하나 마찬가지인 민족국문의 첨병(?)이었는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던 이 아이는 어쩌다 이런 아편쟁이 같은, 일에 찌든 삶을 살고 있나 셀프 측은지심이 발동한다.
여기에서 더 감정을 깊게 들어가면 안될 것 같아 사진첩을 마구 뒤진다. 그 와중에 유일하게 사진첩에 남아 있는 최근 들어 가장 행복했던 날의 기억
그냥 머리 식히려고 아내와 낮에 동네 산책을 했다. 장전리부터 유수암리까지 동네를 훑었다. 대단한 이야길 나눈 것도 아닌데 여유와 안심과 기대와 희망 같은 편안해지는 단어들로 가득찼던 하루.
나는 이날 왜 행복했을까?
해결할 수 없는 난제에 몰입, 아니 매몰되어 있을 때는 뭔가 더 채우는 것보다 이렇게 비워낼 때 그 틈으로 행복이 비집고 들어오는 건 아닐까? 어쩌면 휴식이란 건 엄청 강력하고 적극적인 형태의 업무가 아닐까 하는 진짜 일쟁이스러운 결론이 나는 걸 보면 난 진짜 안되겠다. 아, 이생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