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긴 생각, 짧은 글
처절했던 시간을 지나 조금씩 제주에 적응을 하고 있고, 태리타운이라는 브랜드도 더디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가장 어울리는 옷을 입은 채로!
지난 일년 동안 자책도 많이 했지만, 솔직히 그 이상으로 남탓도 꽤나 많이 했다. 또 '살면서 이렇게 안 좋은 일이 몰릴 수가 있구나'란 생각과 동시에 내가 그동안 너무 잘 가꿔진 텃밭에서만 농사를 짓던 농부였구나란 사실도 같이 깨달았다.
그걸 깨달았더니 어쩌면 나는 본디 그리 유능한 마케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았거나, 동료빨이었거나!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슬픈 게 아니라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아닌가?!
뭐 그렇다고 살면서 요행을 바라거나 남의 덕을 보면서 일한 적은 없다. 태생부터가 그리 운이 좋은 편은 아니었기에 애초에 그런 기대가 없다. 그래서 오히려 늘 자신을 끊임없이 갈아넣는, 아니 태워서 달리는 증기기관차처럼 살아왔고.
특히 늘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강박 속에 살다보니 제법 많은 것들을 쥐고도 언제나 만족하지 못하고 여전히 굶주린 채 늘 죽어라 달리기만 했다. 그러는 사이 내가 얼마나 멋진 인간이었는지 스스로 까먹고 살았다. 너무 바빠서, 정신없이 달리기만 하다보니 나란 사람이 가진 반짝임을 스스로가 보지 못했던 것.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스스로가 그리 유능한 인간이 아닐 수도 있다는 깨달음의 결과가 ‘아 맞다! 나 원래 멋진 인간이었지?!’를 불러오다니. 살짝 미친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었다. 폰과 손에 가려서 미소가 보이진 않지만 그 언제보다 신나게. 앞으로 태리타운과 함께 펼쳐질 일들에 대한 기대와 함께!
돌이켜보니 회사를 관두고 제주로 온 것도, 모자를 만든 것도 내겐 정말 필요했던 전환점이 아닐까 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너무 애쓰진 않겠지만 그래도 늘 그래왔던 것처럼 여전히 성실하게 태리타운을 잘 성장시키는 것에만 집중하려 한다. 힘들 때 오히려 날 더 단단하게 붙잡아준 은인이나 다름 없는 멤버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