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독재자가 되고자 합니다
위선적인 대표의 고백: 눈치 보는 독재자가 되려 합니다태리타운이라는 브랜드는 팀원도, 팀장도 아닌 처음으로 대표가 되어 만든 브랜드입니다.
첫 대표... 많은 선배 대표님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정말 완벽한 리더가 되고 싶었습니다. 제가 경험했던 다양한 보스들의 장점은 취하고, 단점은 거세하는 완벽한 대표 말이죠. 좋은 선배들을 많이 만났기에 그 경험들만 살려도 저는 해낼 수 있다고 믿었죠(자만했죠).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어차피 작은 조직이니 모든 멤버들의 의견을 모두 귀담아 듣고 모두가 동의하는 완전체를 만들자‘ 였습니다. 대표인 저의 방향성이 명확하면 그 결과물이 어떤 취향을 가지더라도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취향, 그러니까 표현 양식보다 제품의 본질과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고 믿었으니까요. 경험 많은 분들은 벌써부터 감이 오시죠?
맞는 말이지만 틀린 말이 되더군요. 표현 양식보다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명제는 변함이 없지만 메시지를 보게 하려면 표현 양식부터 패스를 해야 한다는 걸 간과한 거죠. 비유하자면 태리타운은 클럽 입구에서 밴을 당한 격이 됐습니다. 대신 감자탕 먹으려고 일찍 클럽에서 나온 친구들이 한 잔 한 셈이죠.
이를 깨달은 게 바로 작년의 오프라인 팝업이었습니다. 제품을 직접 경험하신 분들은 주저없이 구매를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그런 폭발력이 없었죠. 저희의 취지와 메시지를 귀 기울여준 찐친은 여전히 늘어가지만 매시브한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속상하고 아쉽죠.
그래서 가장 먼저 저를 돌아봤습니다. (생각보다 남탓은 안 하는 제법 괜찮은 대표이긴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 너무나 많은 문제가 있었지만 그놈의 완벽한 리더가 되겠다고 했던 행동들이 오히려 독이 됐다는 결론에 다다랐죠.
더 잔인하게 말하면 실무자에게 힘을 실어준다는 명분으로 너무 많은 걸 맡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책임까지 떠넘긴 건 아니지만 가끔은 과도한 임파워먼트가 브랜드의 일관성이나 선명성을 해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고, 거기에서 이를 조율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했습니다.
주체성 부여라는 말 뒤에 숨은 비겁하고 위선적인 대표였죠.
‘멤버들을 믿으니까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 속에는 ‘내 맘대로 했다가 안 터지면 어떡하지?’라는 겁쟁이 마인드가 숨어 있었던 거죠.
이런 문제점을 깨닫고 가장 먼저 진행한 것이 ‘빅터’ 라인을 주력으로 바꾼 것입니다. 제가 평소 좋아하는 스타일의 모자면서 가장 만들고 싶었던 모자지만 대중적이지 않을 것 같다는 고민과 멤버들에게 픽 당하지 못했기에 첫 번째 출시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공을 많이 들인 제품인데도 불구하고, 가장 만족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뒷줄에 있었는데... 이런 문제점을 알고 난 후 빅터 라인을 가장 메인 제품군으로 내놓고 브랜드를 리브랜딩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제 태리타운은 제가 살면서 아카이빙했던 저의 취향을 가득 담은 브랜드로 채워가려고 합니다. 뒤에만 있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브랜드를 만들고자 합니다.
이를 위해 멤버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과감하게 쳐낼 것은 쳐내고, 뭣보다 먼저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걸 먼저 말해주려 합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인트! 바로 완벽한 대표가 되려고 했던 노력들을 과감히 버리려고 합니다. 제가 가진 한계와 단점을 그대로 멤버들에게 보여주고 이해시키고자 합니다. 이 안에서 최대한의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자 합니다.
저는 이제 ‘눈치 보는 독재자’가 되어 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