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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Mar 14. 2019

애정결핍이 브랜딩에 미치는 영향

애정결핍 마케터의 탄생

나는 애정결핍을 앓고 있는? 겪고 있는? 무엇을 선택해도 타인에게 쉽게 드러내기 불편한 심리 장애를 가진 사람이다. 안타깝게도 항상 바쁜 부모님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한 환경, 그러나 동시에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 가장 최우선 가치인 학교 환경(특히 심한 동네였다)에서 자라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러한 캐릭터가 형성됐다.  


굳이 여기서 드러내서 좋을 것 없는 무근본 병밍아웃을 하는 것은 나의 이런 캐릭터적 치부가 일을 하는 데 있어 약점으로만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래요~ 저는 애정결핍 찌질이라 더 잘할 수 있었어요”라고 말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생각과 반응에 극도로 예민한 우리 ‘애정결핍이’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제품이나 서비스 또는 브랜드를 알리는 업무에 보다 특화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다닐 정도다. 물론 개개인이 겪는 애정결핍의 정도나 유형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요~ 저는 애정결핍 찌질이라
더 잘할 수 있었어요



애정결핍에 대한 조작적 정의

본격적으로 애정결핍이 브랜딩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애정결핍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가자. 애정결핍이라는 용어가 사실 정식 의학용어가 아니기에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애정결핍은 다양한 성격장애나 증상들을 한데 아우르는 말로써, 자기애성 성격장애(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경계선 성격장애(borderline personality disorder), 의존성 성격장애(dependent personality disorder), 연극성 성격장애(histrionic personality disorder) 등을 애정결핍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보고 있다.


먼저 ‘자기애성 성격장애’는 타인보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고 판단해 당연히 자신에게 사랑과 존경을 보내야 한다고 여기는 유형이다. 말 그대로 나르시시즘적 성격이 강하다 보니 자신을 알아봐 주지 못하는 세상에 대해 쉽게 상처받고 분노한다. ‘경계선 성격장애’는 타인에게 인정과 애정을 갈구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충족되지 않는다고 여기면 공격적으로 변하게 되는데, 정신과 의사들이 가장 까다로워하는 유형으로 성격장애계의 끝판왕이라 불린다. ‘의존성 성격장애’는 경계선 성격장애와 반대로 상대방의 관심에 대해 결핍이 느껴지면 우울해지고 타인에게 매달리게 된다. 그로 인해 타인에게 사랑받기 위해 비굴한 자세를 취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연극성 성격장애’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 항상 주목 받고 싶어하며 이런 것들이 충족되지 못할 경우 자신을 한껏 꾸미거나 과할 정도의 감정 표현을 한다. 이러한 증상들은 서로 철저하게 독립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사람에 따라 두 가지 또는 그 이상 혼합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애정결핍이가 살아가는 법

아마 평소 센스 좀 있다는 말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왜 했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저마다 제각각인 애정결핍 증상 속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다. 바로 그 바탕에는 자신이 아닌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과 관심 또는 애정을 갈구하고 있다는 것. 다른 말로 타인의 평가에 계속 레이더를 세우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게 왜 일하는 데 도움이 될까? 가령 의사나 경찰, 프로그래머와 같이 자신의 고객들을 설득하기 위한 노력을 상대적으로 적게 하는 절대로 안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분야가 있는 반면, 마케터나 정치인은 끊임없이 화두를 제시하고 누군가를 설득해야 하는 게 일이다. 상대방을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그들의 마음을 훔쳐 지갑을 열게 하거나 표를 받아야 한다. 결국 끝없는 설득 커뮤니케이션 상황에 놓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우선 타깃 오디언스(target audience, 목표 수용자 집단)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영역에 따라 인사이트라고 하기도 하고 시대정신이라고 하기도 한다. 좋은 마케터일수록 이를 얻기 위해 누구보다 대상을 자주 관찰하고 그들의 감정이나 생각에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것을 원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지 등 자신의 타깃 오디언스를 관찰하고 분석해야 한다. 물론 여기엔 기업만의 가치나 방향성, 정치인만의 신념 등이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함은 따로 말할 것도 없다. “줏대 없이 대중을 현혹하는 이야기만 하라는 것이냐”라고 시비를 거는 이들이 있기에 노파심에 따로 강조해둔다.


결국 상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생각이나 상황에 예민하게 감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나와 같은 애정결핍이들이 커뮤니케이션 영역에서 일하는 데 유리하다. 우리는 언제나 상대의 이야기를 주시하고 상대의 반응에 목말라 있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사랑받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시도를 한다. 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심지어 우리 같은 애정결핍이들은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하기 위해 자신을 믹서에 갈아 넣는 수준의 노력을 자신에게 강요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슬램덩크》의 주인공이자 풋내기 농구선수인 강백호이다.


타인의 평가에 계속 레이더를 세우고 있다



애정결핍의 대명사, 강백호

일단 그가 농구를 시작한 이유에서부터 그의 증세(?)를 엿볼 수 있다. 한눈에 반해버린 농구부 주장의 여동생에게 어필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보다 더 많은 인정과 관심을 받는 라이벌(?) 서태웅을 이기기 위해 농구를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농구부원이 된다.


농구부에 가입하고도 그는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 위해 돌발행동을 일삼으며,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과도한 자부심(스스로를 천재라 일컫는다)을 바탕으로 팀 내에서 특별한 대우를 감독의 뱃살과 턱살을 당기며 요구하는 등 상식 밖의 행동을 보인다. 또한 자신을 비난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자신을 질투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증상으로 미루어 보건데 그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연극성 성격장애가 곁들여진 우리의 동지다.


물론 그는 남다른 운동신경이 있지만, 농구의 기본적인 규칙조차 모르는 5경기 25반칙의 전 경기 퇴장이라는 전대미문의 기록을 세운 풋내기였기에 그가 뛰어난 선수로 발전한 것을 그의 타고난 자질로만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는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우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점점 뒤로 갈수록 인정의 욕구보다는 자아실현의 욕구로 발전한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훈련으로 자신을 단련했다.


애정결핍이의 반격

2만 번을 쏘아 올린 미들슛 특훈이 그 대표적인 예다. 팀원들이 연습시합을 가는 동안 혼자 남아 일주일 동안 2만 번의 슛을 던지는 훈련을 한다. 말이 일주일에 2만 번이지, 이는 결코 보통의 체력과 정신력으로 소화하기 힘든 훈련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하루에 식사와 휴식, 수면시간 등 생리적 시간을 제외하고 13시간씩 훈련을 한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하루에 13시간을 훈련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런 양의 훈련을 일주일 동안 한다면 그는 이 훈련에 총 32만 7600초의 시간을 투여한 것이 된다. 2만 번의 슛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16초에 한 번꼴로 슛을 성공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 자체가 이미 인간의 한계에 도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슬램덩크》의 팬이라면 다들 기억할 산왕과의 시합에서 나온 대사는 그가 농구를 어떻게 여기고 있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라고 말하는 그의 뒷모습을 떠올리면 아직도 찌릿할 정도다.


결국 강백호는 주변의 관심을 받기 위해, 자신의 결핍을 해소하기 위해 농구를 시작했지만, 농구를 매개로 개인의 성장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고 결과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행복을 찾는다. 그래서인지 《슬램덩크》의 스토리 흐름은 사실 시작부터 끝까지 남 일 같지 않았다. 만화책을 보면서 울 수 있다는 것도 이때 처음 알게 됐다. 솔직히 《슬램덩크》 보면서 운 사람 꽤 많을걸?



어찌 보면 우리 역시 강백호와 크게 다를 바 없을지 모른다. 물론 강백호처럼 타고난 자질을 갖춘 건 아니지만 나 역시 이 바닥 일이 진짜 좋아서 시작했다기보다는 원래 꿈이 좌절되고 방황하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왠지 그럴싸해 보인다고 생각해서 시작하게 됐다. 그러나 좋은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그들을 거울삼아 나라는 사람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었고, 차마 마주하기 싫었던 나의 치부를 인정하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꽤 괜찮은 차마 성공적이라 못하겠다 퍼포먼스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에 대한 힌트를 조금씩 얻고 있는 요즘이다. 이제는 나도 강백호그 그랬던 것처럼 이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정말 좋아합니다.
이번엔 거짓이 아니라고요


애정결핍이라는 그토록 인정하기 싫었던 나의 약점이 오히려 일을 하는 데 나만의 무기가 될 줄이야. 그러나 뻔한 얘기지만 애정결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 무기를 쓸모 있게 만들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몸빵(!)이 뒤따라야 한다. 마치 강백호가 했던 미들슛 훈련이나 풋내기 슛 훈련 같은,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자 한다.



앞으로 12주동안 이어질 이야기들은 마케터로서의 업무적 성장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결핍들을 발견하고 이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 펼쳐질 예정인데, 또 반응이 없을까봐 조마조마한 결핍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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