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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Apr 11. 2019

네이버를 떠난 이유

곽백수 작가의 띵언

어느 여름날, 과장님이 나를 불렀다. 곤란하고 미안한 표정이었다. 대충 느낌이 왔다. 


‘뭔가 부탁을 하려는 거구나.’


그가 말하길 내일까지 급하게 작성해야 할 보고서가 있어서 언론사 인터뷰 지원을 대신 나가달라는 부탁이었다. 처음 표정을 봤을 땐 큰 부탁인 줄 알았는데 그 정도야 하는 마음…은 인터뷰 장소를 듣고 사라졌다. 그 장소가 일산이었기 때문에. 회사는 분당, 인터뷰 장소는 일산. 차로 왕복 4시간이 넘는 부담스러운 일정이었다. 사실 거절할 수 있는 짬밥도 아녀서 다녀오겠다 했다. 때마침 오늘담보대출에 지쳐갈 때이기도 했고, 숨 쉴 틈이 필요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인생이 뒤흔들릴 만한 사건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얼마 전에 이 형(그때 과장님)이랑 오랜만에 한잔 하다가 그날 이야기를 하면서 “그럴 줄 알았으면 그냥 내가 갈걸” 하며 아쉬워했지만 여전히 그는 회사를 잘 다니고 있다. 차장으로 승진했더라. 



곽백수 작가를 만나다

일산으로 넘어가기 전에 선배에게 관련 자료를 건네받았다. 매체는 <매일경제>와 <국민일보>, 인터뷰이는 곽백수 작가였다. 곽백수라고 하면 당시 지친 회사생활에 작은 숨통을 틔워주는 웹툰 <가우스 전자>를 연재하는 인기 작가였다.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어떤 경험을 했기에 이런 스토리를 써낼 수 있나 하는 궁금증을 안고 택시에 몸을 실었다. 아이팟 셔플옛날사람인증을 꺼내서 귀에 꽂고는 잠을 청했다. 


음악이 지겨워질 때쯤 아파트 숲 가운데 위치한 공원에 도착했다. 그날따라 햇살이 너무 뜨거워서인지 인터뷰는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자리를 파하려는데 곽백수 작가가 우리에게 자리를 청했다.


“다들 고생 많으셨어요. 먼 길 오셨는데 딱히 대접할 건 없고 날도 좋은데 여기 평상에서 맥주나 한잔하고 가요.”


평소 같으면 밀려 있는 일거리를 떠올리며 얼른 복귀를 했겠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몸이 평상으로 스르륵 옮겨가더라. 그때 왜 그랬는지 지금도 여전히 의아하다. 그렇게 시작된 평상 대화, 마냥 시답잖은 농담 따먹기 하다 끝날 줄 알았던 그 대화는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곽 작가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의외였다. 어떻게 경험하지 않고 저런 에피소드를 그릴 수가 있을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하나같이 띵언이었고 나를 후벼팠다. 도사 같은 분위기로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자 나는 입에서 끊임없는 탄식을 뱉어냈다.


“아!”  

“아~”  

“아…”


발밑이 무너져 내리다

그가 우리의 마음을 뒤흔들어놓자 나랑 동갑이었던 기자는 자신의 고민을 꺼내기 시작했다. 역시나 30대의 전염병과도 같은 퇴사, 결혼, 미래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도 안정적인 직장을 버릴 수가 없어 머뭇거리고 있다고 했다. 누구나 그렇듯 가슴에 사표를 품고 다니지만 품 안을 떠난 적은 없다고 했다. 그들의 대화 속에서 나는 존재감 없이 듣고만 있었다. 뭔가 입을 열었다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만 같아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목젖이 묵직해지고 갈증이 났지만 복귀해야 하니 맥주 대신 콜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냥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곽 작가가 말하는 행복에서 나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머리가 멍해지고 어지러웠다. 더운 날씨 탓이겠거니 했다. 그렇게 선문답 같은 대화가 끝나갈 무렵 곽 작가가 던진 마지막 말에 나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그날의 공기와 그가 했던 말은 여전히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요즘 친구들은 참 몰라. 
지금 자기 발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는 걸 말예요. 
내일에 있을 행복만 좇는 것 같아.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내일은 항상 내일에 있는 거?


이 말이 귀를 타고 목구멍을 지나 심장에 꽂혔다. 택시에 올랐는데 오르자마자 다리가 풀리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솔직히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왜 눈물이 나는지를. 



내가 잊어버린내가 좋아하는 일

그 이야기를 곱씹으며 며칠을 보냈다. 나는 좋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며 차근차근 일도 배우고, 입사동기들과 몰려다니며 학생 때 기분을 내기도 하면서 아주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렇게 울었을까? 계속 곱씹어봤다. 그러다 회사 메일함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디자이너가 보낸 기프트 카드 디자인 시안 메일이었다.


당시 대외 홍보를 위해 네이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기프트 카드를 제작하고 있었는데, 중요도에 비해 손이 많이 가는 귀찮은 일이라 역시나(!) 막내인 나의 몫이었다. 이왕 배정받은 김에 더 잘하고 싶어서 요구사항이 많아졌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담당 디자이너와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다. 그가 보낸 메일에는 새로운 디자인 시안이 첨부파일에 담겨 있었다. 그리고 거기서 그만 내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디자인에 대한 열망을 마주할 수 있었다. 너무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내가 언제 행복한지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단순히 일의 양과 시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피곤하고 힘들지만 그래도 내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드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잊고 살아왔던 것이었다. 


곽백수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막연한 내일의 행복을 위해 오늘을 희생시키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과연 ‘나의 내일에는 행복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찾아왔다. 행복해지고 싶은 욕망은 이상한 곳에서 방향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여전히 그 욕망의 크기만큼 두려움이란 놈도 함께 찾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행복해지려면 두려움을 만나야 했다. 


솔직히 당장 회사를 박차고 나온다고 무조건 행복해진다는 보장이 없었다. 잠깐의 방황을 제외하고는 30년이 넘게 가정, 학교, 회사로 이어지는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만 살아온 인생이었다. 정해진 루트 안에서 그에 맞게 충실하게 살아왔다. 성실히 미션만 수행하면 궤도를 벗어나지 않고 예측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삶이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지금까지 온실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화초는 아닐지언정 비닐하우스 끄트머리에 몰래 붙어 있는 잡초마냥 끈질기게 발버둥을 쳐본 적도 없었다. 그렇게 시스템을 벗어난다는 것을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에 두려움이 함께 따라왔다.



단 하나의 이유

그날 이후 주판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온실을 벗어날 때 찾아올 두려움’과 ‘행복한 오늘을 만날 기쁨’의 크기를 재기 시작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그만둬야 할 이유는 하나인데, 그만두지 말아야 할 이유가 너무 많았다. 일단 당장 생활비를 벌 여력이 없었고,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무엇보다 우리 이모 같은 이사님이 날 이렇게 예뻐해 주는데 등 돌릴 용기가 없었다. 애정결핍이들에게 나타나는 전형적인 행태 아니겠는가 동기들이랑 4층 카페에서 700원짜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시간도 잃기 싫은 큰 낙이었다. 업무적으로는 네이버 산지직송(현 프레시윈도)이란 새로 나온 서비스를 가장 먼저 홍보하는 기회도 잡았고, 회사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서비스였던 네이버 스포츠를 배정 받으면서 동기부여도 됐다. 그만두는 게 진짜 멍청한 일이란 소리다.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결국에는 사표를 썼다. 이것이 바로 두 번째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앞서 밝힌 것과 같이 다녀야 할 이유는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이유로 퇴사를 했다. 철저하게 나만 생각했다. 조금 이상한 계산기를 썼다. 단순히 현재의 일이, 직장이 싫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곽 작가를 만난 이후부터 막연히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포기했던, 잊은 척했던 것이 선명해졌기 때문이었다. 몸은 죽을 것같이 피곤해도 하는 내내 ‘뇌가 열리는’ 일을 하고 싶어졌다.


뇌가 열리는 희열을 주는 일이란,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는 힘들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언어를 총동원해 본다면, 바로 사람들이 열광하는 크리처(creature)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 그림이든 글이든, 유무형의 상품이든 간에 사람들의 욕망을 읽어내고 이를 구현할 때 나는 뇌가 열리는 경험을 한다. 


다시 말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고 싶은 것이었다. 누가 애정결핍이 아니랄까 봐 사람들이 가진 열망이나 그들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읽어내고, 그 열망과 방향이 만들어낸 사회적 욕망을 구체화하고 이를 내 프로덕트와 일치시키는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직업으로 표현한다면 마케터나 브랜드 기획자 정도가 되지 않을까?


결국 나는 ‘사랑받는 것’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사랑하는 회사’를 떠나게 된다.




나는 이렇게 일한다
: 주위의 의견에는 적당히(?) 귀 기울이는 편이다.
의견을 경청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거기에 집착해 중심을 잃으면
당신의 브랜드는 안드로메다로 가고 만다


1. 일하다 보면 직장 상사에게 업무적으로 지적을 받게 된다. 뭐가 그렇게 매번 못마땅한지... 그렇다고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자. 당신이 상사보다 못난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번 당신의 기획서가 지적을 받는 이유는 원래 ‘되는 이유’보다 ‘안 되는 이유’를 찾는 게 훨씬 쉽기 때문이다.


2. 성공보다는 성취를 품고 일한다. ‘어디를 다니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무엇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내 연봉을 올리는 데 더 유리하다. 주위에서 말하는 유명한 ‘거기를 다니는 사람’은 많지만 주위에서 대단하고 말하는 ‘그것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는 홍보실 막내일 때의 실수담을 이야기 하려고 한다. 지금도 그 때만 떠올리면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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