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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Apr 04. 2019

네이버에 들어간 이유

행복을 찾아 갔다

한때 오늘을 담보 삼아 막연히 내일에 있을 수도 있는 행복을 대출해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내겐 행복은 항상 ‘내일’에 머물러 있었고 ‘오늘’은 늘 찬밥신세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릴 때부터 집이나 학교에서 하라는 것만 열심히 하면 내 인생은 행복해진다고 가르쳤고 그들이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기에 굳이 그들의 진심을 거부할 이유도 없었다. 나는 그들에게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에 목말라 있는 애정결핍이었기에 그들의 말을 차마 거스를 용기도 없었다. 


내일의 행복을 위한
오늘담보대출


그렇게 묵묵히 살다

그렇게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씩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그들(나를 키워주고 가르쳐주는 분들)이 제시하는 미션을 충실하게 수행했고, 최선의 결과는 아니었지만 썩 나쁘지 않은 결과를 매번 달성했다. 그들은 흡족하게 만족하진 않았지만 아쉬움을 애써 감추며 다음에는 더 잘하기를 기대했다. 그렇게 성장해오며 내가 하고 싶은 것 또는 내가 하면 행복한 것보다는 ‘그들이 원하는 것 중에서 그나마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어디 나만 이랬겠는가? 내 친구들이 그러했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많은 이들의 공통된 경험일 것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해서 혼나지 않을 정도로 했고, 좋은 대학을 가라고 해서 적당히 욕먹지 않을 정도로 '인서울'을 했다. 좋은 직장에 가라고 해서 대기업에 입사를 했다. 그러나 나는 원래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 노랫말을 쓰고 싶었다. 대학은 미대를 가고 싶었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지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들이 제시한 범위 안에 없었다. 그래도 ‘오늘을 열심히 살면 내일에 있을 행복을 기대할 수 있다’는 부모의 가르침에 따라 제법 성실하게 수행했고, 그 결과도 꽤 나쁘지 않다고 자위했다. 차라리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했거나 반대로 완전하게 망쳤다면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었을까…?


결국, 다시 또.

결과적으로 나의 연속된 선택들은 타인의 탓이 아닌, 미치거나 미친 척하지 못한 나의 우유부단함이 가져온 결과물이었다. 그러나 서른이 가까워졌을 때 그 우유부단함을 극복한 ‘철저히 이기적인 선택’들을 하게 됐다. 다시 말해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온전히 나 자신만을 위한 선택을 시작했다. 처음만 힘들지, 한번 하니까 그 이기적인 선택을 계속하게 되더라. 


첫 번째 선택은 바로 대학원이다. 2010년 겨울이었다. 방송국 입사에 실패하고 방황을 하다가 우연히 작은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을 하게 됐다. 그러나 준비되지 않은 채 업계에 뛰어들어서인지 잘할 자신이 없었다. 같이 들어온 동기들은 광고에 대한 열정이나 직업으로서의 방향성이 명확한 데 비해 나는 그저 떠밀려 왔을 뿐이었다. 그러다 옆자리 동기 녀석이 대학원 원서를 쓰고 있는 걸 봤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고 충동적으로 팔자에도 없었던 대학원 원서를 이틀 만에 접수했다. 새로 쓸 시간도 부족해서 방송국 서류 전형에 통과했던 자소서를 그냥 ‘복붙’했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다. 덜컥 합격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께 부탁을 빙자한 통보를 했다. 학비가 부족했으니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주위를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확실히 선택에 주체성이라 쓰고 이기적이라 읽어야함이 붙으니 동기부여도 달랐다. 기존의 나는 주어진 미션을 90% 정도까지만 달성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때부터는 100%를 넘어 120%, 150% 아니, 그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 영혼을 불살랐다. 그렇게 2년을 다니다보니 디자인 전공으로 바꿔서 제대로 공부해 보고 싶었다. 어릴 때 꿈이기도 했으니까. 


허나 애석하게도 갑작스레 공부를 더 할 수 없는 환경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대단한 결기가 있는 캐릭터는 아니어서 다시 또 ‘그들이 원하는 것 중에서 그나마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을 하기로 했다. 이게 영화나 드라마처럼 사람이 확 바뀌진 않더라. 결국 내 선택은 취직이었다.


내가 가장 다니고 싶은 회사

막상 취직을 준비해 보니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다. 대한민국 취준생 화이팅... 그때부터는 내가 가장 가고 싶은 회사는 그냥, 단지, 저스트... ‘가장 먼저 뽑아주는 회사’였다. 그게 편찮으신 아버지와 고생해 온 어머니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사실 이런 결정에 이미 익숙한 나였기에 늘 그랬던 것처럼 취준생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남들 하는 거 다했다. 학점 관리부터 종로에 있는 토익 학원도 다니고, 비싼 오픽 시험을 최대한 적게 보려고 고득점 요령을 훈련하는 등 해야 하는 것들(?)은 전부 다했다. 


정말 다행히 졸업하기 전에 취직할 수 있었고, 그곳이 바로 네이버 홍보실a.k.a 홍보맨들의 3대 지옥이었다. 나름 전공을 살린 일이긴 했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알아버린 터라 처음에는 마음을 잡지 못했다. 그러나 막상 입사를 하니 쏟아지는 일들에 그런 걸 따질 여유가 없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야 했고 가족이라곤 이제 어머니뿐이었기에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사치라며 또 스스로 위로했다. 근데 쓰다 보니 이거 너무 신파 같은데… 다시 말하지만 이 내용들이 팩트이지만 내 삶의 장르는 코믹활극이다. 괜히 코 찡해지지 않아도 된다. 


솔직히 입사 초반에는 좋았다. 생각해 보라. 당신이 아무리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해도 입사한 회사가 ‘대학생이 취직하고 싶은 회사’에 항상 손꼽히는 곳이라면? 솔직히 기분 좋지 않을까? 또 나만 쓰레기야? 일단 주위에서 ‘우와~’ 해 주는 회사인데다가, 누구보다 어머니가 신이 나신 모습에 흐뭇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아들 잘 키웠다는 이야길 한다며 내 칭찬을 들을 때마다 전화를 주셨다. 이런 게 효도구나 싶었다. 그때를 떠올리면 얼굴이 빨개질 정도로 창피하지만, 당시엔 그 시선이 싫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즐기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나는 오랜만에 들어온 신입이었기에 내 능력에 비해 선배들에게 예쁨을 많이 받았다. 특히 내게 엉덩이의 힘을 알려준 현 네이버 CCO인 채선주 총괄님(당시 홍보실장)은 나를 이모처럼(?) 챙겨줬다. 덕분에 나는 망둥이처럼 뛰어다녔다. 인정받고 싶은 욕심에 더 미친 듯이 일했다. 또 일이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어도 ‘처음이라 그런 거겠지’ 하며 넘겼다. 군대처럼 버티다 보니 새로운 경험과 시야를 갖게 됐고, 게다가 업계에서 일 잘하는 선배들이 모여 있는 덕분에 일도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셀프 믹서 덕분에 연봉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빨리 올랐고 꿈에 그리던 드림카도 살 수 있었다. 무엇보다 승진도 빨랐다. 과분할 정도였다. 쓰다 보니 자랑 쩐다… 가고자 했던 길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뿌듯했기에 오늘을 조금만 더 희생하면 내일엔 행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게 달콤한 현실적 조건들과 타인의 부러워하는 시선을 받으며 이렇게 살면 행복해지는 줄 알았다. 누구나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 하나쯤은 담고 산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는 게 맞다고 믿었다. 그렇게 현재를 포기하고 내일의 행복을 위해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는 ‘주위에서 원하는 것 중에서 그나마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며 직장생활을 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 거야...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 드림카, 괜찮은 연봉… 이런 것들이 행복이라고 여겼는데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나를 바닥으로 끌고 갔다. 갈증이 나날이 심해져 갔다. 행복해지려고 선택했던 삶에 정작 행복은 없었다. 그런데 더 무서운 것은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조차 희미해져 갔으며 아예 그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시작했다. 


원래 직장생활이 다 그런 거지...
남들도 다 이렇게 살 거야...
원래 다 그래... 


그러던 어느 날, 삶의 궤적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이렇게 일한다"
: 보도자료 작성을 위한 핵꿀팁


1. 전체적으로 중학생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작성한다. 한자어나 외래어의 남용을 피하고, 전문 용어와 같이 특수한 경우에는 따로 풀이를 달아둔다. 


2. 처음부터 기사의 화법으로 쓴다. 가끔 언론사에서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 기사화 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명사형 문장 종결은 피한다. 언제든 전체 복붙하시라!


3. 가장 강조하고 싶은 포인트를 도입부로 가져와 임팩트 있게 제시하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사람들은 다 들어주지 않는다.


4. 문장은 간결하게 쓰고, 종결 어미의 어휘 반복을 피한다. 가끔 생각 없이 쓰다보면 문단마다 ‘밝혔다’가 무한반복 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곤 한다. 그만 밝혀라


5. 본문 사이에 관련자나 책임자의 멘트를 직접 인용해 자료의 공신력을 높인다. 그의 직책과 직급을 정확히 확인해두는 것도 필수다.


6. 강조하고 싶은 부분에서는 ‘특히’를 꼭 활용한다. 


<05화 네이버를 떠난 이유>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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