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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Mar 28. 2019

격차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힘

꼰대질 들어갑니다. 조심하세요.

지난 주에 꼰대스러운 이야기를 한 김에 이왕 버린 몸 욕 먹을 각오로 오늘은 제대로(?) 꼰대짓을 해 보고자 한다.


어느 영역에나 해당되지만 마케팅, 브랜딩과 같이 왠지 뭔가 그럴싸해 보이는 동네에서도 성공적인 퍼포먼스를 내기 위해서는 결국 ‘엉덩이의 힘’이 필요하다. 이는 어디까지나 뇌피셜이며 철저하게 개인적인 경험에 한한 이야기이므로 보는 이에 따라 불쾌하거나, 답답하거나, 짜증 나거나 피가 거꾸로 솟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지나친 야근으로 워라밸이 지켜지지 않는 삶을 사는 이들은 정신 건강을 위해 그냥 넘겨도 좋을 것 같다.



씁쓸한 현실, 현실적 한계

우리는 일반적으로 광고, 마케팅, 브랜딩 이런 영역에서 일을 하려면 풍부한 상상력, 남다른 사고방식, 뛰어난 미적 감각 등과 같은 종류의 재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맞다.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잘.한.다. 그런데 이런 재능은 무조건 타고나는 것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운동신경 같은 신체적 유산보다 비교적 DNA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뜻이다.


이 분야에서 일하면서 종종 천재라고 생각되는 이들을 마주할 때도 있는데, 그들이 그렇게까지 되기에는 어디까지나 그가 자라온 환경을 통해 ‘훈련’되어온 것일 확률이 높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그들(천재)과 만나 이야길 나눠보면 부모님이 확실히 평범하진 않다. 부모의 성향이나 교육 철학 또는 가정 형편 등 자라면서 접하게 되는 다양한 자극에 따라 그 능력이 길러진다. 다시 말해 누구에게서 태어났느냐 보다 어떻게 살아왔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혹시 본인에게 이러한 크리에이티브 능력이 부족하다면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가면 된다는 말이다. 부모가 만들어주지 못했다면 스스로 지금부터 만들어 가면 된다.


뭔가 희망이 보이는가? 그렇지만 이 역시도 솔직히 쉽지 않다. 여기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돈과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 이미 훈련된 사람과 이제 연습을 시작하는 사람 사이에는 격차가 존재하는데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결국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야 한다. 결국 이것도 어떤 측면에서는 '타고나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씁쓸한 이야기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되겠다. 그러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부분은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방법론이 바로 엉덩이의 힘 되겠다. 훈련이 되어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연습량을 소화해야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나 역시도 여전히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그래서 요즘도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뺑이(!)를 치는 게 일상이 됐다. 스스로 만족하기까지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비효율적인 타입이다.


잠깐, 타임!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부분이 엉덩이의 힘과 ‘노오력’은 분명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민감한 문제다. 가장 쉬운 구별은 ‘하고 싶어서 하는 것’과 ‘시켜서 하는 것’이란 점인데, 사실 이것이 알파이자 오메가다. 또한 엉덩이의 힘은 노오력과 달리 이를 수행하는 데 있어 그 기준과 방향이 세상의 시선, 사회적 기준이 아닌 철저하게 내 안에서 시작되어야 하며 나의 행복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걸 찾기가 어렵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 보물찾기 같은 여정을 앞으로 이야기할 예정이니 비슷한 고민을 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재능이 없어서 실망하고 이 동네를 떠난 내가 다시 돌아오게 된 것도 이 엉덩이의 힘과 관련이 있다. ‘내가 타고난(미리 훈련된) 게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에게도 재능이 있었다?’ 뭐 이런 드라마틱한 전환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이 방면으로 ‘타고나지 않음’이 너무 아쉽다. 대신 밥벌이를 하면서 조금씩 늘게 된 잔재주와 이색적인 경험 덕분에 이제는 나름 승부해 볼 만하다 생각할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농업적 근면성을 바탕으로 차곡차곡 만들어둔 필살기, 엉덩이의 힘이 있기에 이제는 어떤 일을 해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선배들이 술자리에서 농담반 진담반으로 해주던 얘기에서 확신이 들었다.


쟤한테 맡겨두면
일단 어떻게든 되긴 하더라



필살기의 시작은...

내가 이런 필살기를 가질 수 있게 된 데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인물이 있다. 바로 현재 네이버에서 커뮤니케이션그룹 총괄을 맡고 있는 채선주 부사장(a.k.a 이모님)이다. 내가 홍보실 막내로 있을 당시 네이버의 홍보실장으로 그는 우리 팀의 대장이었다. 일단 무섭다. 진짜 대장 같은 포스가… 그리고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내겐 이모(?)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에게 이런 양가적 감정이 드는 이유는 일할 때는 진짜 얄짤없는 서릿발 같은 사람이지만, 자기 팀원이 곤란한 상황이 되면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준다. 다들 잘 알다시피 조직 내에서 전자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후자는 아무나 할 수 없다. 특히 나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생을 마감하는 과정에서 그의 배려 덕분에 꽤 긴 시간 아버지와 함께할 수 있었고 편히 보내드릴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내 마음대로 그를 이모처럼 여기다 보니 그가 지나치며 하는 말도 더 열심히 들었던 것 같다. 인지상정, 인지조화 아니겠나?!


그런 그가 농담처럼 자주 하는 말이 바로 ‘농업적 근면성’이었다. 반은 화난 심정으로, 나머지 반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종종 말하곤 했다.


야마만 잘 잡는다고 다가 아니야.
더 이상 안 파도 되겠다 싶을 때
한 번 더 파야 해.
그리고 그걸 한 10번 정도 해.


이런 말과 함께 늘 “다시!”가 마침표 대신 따라왔다. 그렇게 늘 언제나 내 ‘숙제’는 쉽게 통과되지 못한 채 꽤 여러 번 ‘다시’를 경험해야 했다. 여기서 숙제란, 홍보실의 일상적인 업무 외에 개인에게 직접 부여한 미션을 말하는데 집에 가서 하거나 기본적인 업무를 다하고 주로 야근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기 때문에 이를 우리는 ‘숙제’라고 불렀다. 내게는 주로 경쟁사 분석이나 해외 동향과 같은 리서치 업무가 맡겨졌다.


처음에는 외신을 읽는 것조차 버거웠는데 조금씩 일에 익숙해지고 숙제들을 클리어해 가면서 처음으로 ‘일하는 근육’이 붙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 수 있었다. 이것이 지금 말하는 엉덩이의 힘의 모태가 된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까지는 아직 농업적 근면성을 발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이 과정에서 숙제, 다시 말해 타인의 명령에 의한 미션 수준으로만 받아들인 채 이를 쳐내기에 급급했다면 내게 엉덩이의 힘은 붙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엉덩이의 힘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게 된 사건이 터졌다.

2014년 2월이었다. 당시 일본과 태국 등 해외에서 메신저 앱 라인(line)이 빵 터지면서 네이버의 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고, 시가총액 순위 10위 안에 들어가더니 결국 4위까지 올랐다. 주식을 사둔 나도 같이 흥분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언론을 비롯해 정부에서조차 네이버에 대한 견제를 넘어 압박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국면전환을 위한 야마가 필요했다.


그즈음 그가 갑자기 나를 불렀다. 그렇다, 숙제를 줄 때의 목소리다. 안 그래도 해야 할 일들이 잔뜩 쌓여 있는데 “영웅아~”그는 항상 꼭 이렇게 이름을 부르면서 대화를 시작한다를 들으면 긴장부터 하게 된다. 그는 어느새 내 자리에 와서는 질문을 던진다.


“영웅아, 우리나라 기업 중에 재벌이나 공기업, 금융기관이 아닌 기업이 시총(시가총액) 10위 안에 들어간 적이 있을까? 개인이 만든 기업 중에 말이야. 만약 없으면 우리가 최초 아냐?”


“이사님, 제가 주식은 잘 몰라서…”


“왠지 없을 것 같은데 확실하게 확인해 보고 자료 뽑아야 되니까 한번 체크해 줘. IR팀에 물어보거나 검색하면 알 수 있지 않을까?”


긴장한 것에 비해 크게 어렵지 않은 숙제 아니, 이 정도면 가벼운 심부름이었다. 그러나 이 일이 그렇게 쉽게 끝났다면 처음부터 이 이야기를 소개하지도 않았을 거다. 일단 IR팀에 알아보니 코스피 관련 차트를 따로 기록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특히나 네이버만 필요한 것도 아니고 코스피에 등록된 다른 기업의 데이터는 자기들도 알 수 없다고 했다. 살짝 당황한 채 그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 순간 심부름이 숙제로 변하고 말았다.


“그럼 직접 조사해 봐!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번 보여줘~”


하하하… 그런데 묘하게 그 순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진짜 알아내고 싶었다. 나도 궁금했다. 대한민국 경제 역사상 의미 있는 발견일 텐데 그걸 내 손으로 직접 알아낸다는 것이 살짝 흥분도 됐다. 게다가 이제는 잘 알다시피 우리 같은 애정결핍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의 부탁명령을 쉽게 거절하지 못한다. 게다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크기 때문에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한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일단 포털에 검색했다. 키워드를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봐도 찾을 수가 없었다. 최근 데이터는 있지만 전체를 볼 수는 없었다. DART(전자공시시스템)도 구석구석 뒤져봤지만 원하는 내용은 없었다. 결국 팀 동료들에게 SOS를 쳤지만 다들 불가능할 거라며 미리 애도(?)를 보내는 이도 있었다. 그때 머리를 맴도는 목소리…


‘…너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같은데?…’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인맥(?)을 동원해 보기로 했다. 코스피와 코스닥의 차이도 모르는 수준이었던 나는 일단 되는 대로 회계사부터 재무설계사, 트레이더 등 주식, 증권과 관련된 회사에 다니는 모든 지인에게 연락했다. 인맥이라지만 다 친구들이다 보니 그들도 나처럼 회사 내에서 막내라 다들 제 콧물 닦기 바빴다. 그렇게 수소문한 끝에 '베프가 다니는 회계법인의 동료가 있는데, 그 동료의 친구 중에 증권사에서 일하는 이'가 있는데헉헉 그가 차트를 줄 수 있을 거란다.


심 봤다!


우여곡절 끝에 엑셀로 정리된 코스피 차트를 받고 이제 됐구나 싶은 마음에 메일을 열었다. 엑셀 파일을 다운로드받는데… 이런… 동영상도 아니고 문서인데 용량이 기가바이트(giga byte)로 표시되어 있었다. 왓더… 하긴 몇십 년 동안 몇백 개 기업의 시가총액이 정리된 파일인데 용량이 클 수밖에 없겠지. 그래도 실제로 이걸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있자니 하늘이 노래졌다. 파일이 너무 무거워서 커서를 움직이는 것조차 렉이 걸렸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1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았…지만 멈춰야 했다. 넘겨야 할 보도자료가 우선이었고 다음 날 당번(홍보실은 언론기사 모니터링을 위해 돌아가면서 당번을 한다)이라서 새벽에 출근해야 됐기에 잠시 멈췄다. 그리고 일주일 동안 기본적인 업무들을 해가며 사실 그것만으로도 벅찬 막내였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엑셀 시트들을 눈 빠지도록 보고 또 봤다. 그리고 또 봤다. 혹시 놓칠세라 꼼꼼히 차트를 뚫어져라 봤다. 눈알이 빠질 것만 같았다. 글자와 숫자를 보면서 소위 말하는 재벌 계열사나 공기업, 금융업이 아닌 기업이 시총 10위 안에 들어온 것이 있는지 없는지 찾아내기만 하면 되는데… 이게 말로는 너무 쉬운데… 어려운 일은 아닌데… 너무 어려웠다. 그때를 떠올리기만 하면 아직도 속이 메스꺼워진다.


차트를 보면서 온갖 생각이 다 들더라. 크게 변동 없던 80년대를 지나 97년쯤 오자 시총 Top 10이 요동치면서 자료가 읽기 힘들어졌다. 솔직히 이런 생각도 했다. 좋은 이슈를 활용하지 못하게 되어 아쉽기는 하지만 차라리 가설을 깨는 기업이 나타났으면 하는. 90년대 후반 차트를 보니 IMF를 느낄 수 있었다. 요동치는 순위 덕분에 차트 보기가 어려워지고 시간은 더 오래 걸렸다. 파도를 지나 21세기를 맞이했다. 일주일 동안 거의 밤잠을 설쳐가며 차트를 체크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래 문장을 보도자료에 넣게 됐다.


“대한민국 역사상 재벌 계열사, 공기업, 금융업이 아닌 개인이 창업한 기업이 시가총액 10위 안에 든 것은 네이버가 유일하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고, 이 한 줄을 완성하기 위해 밤마다 내 엉덩이는 그렇게 버텼나 보다. 메인 야마가 아닌 보도자료 아래 첨부되는 박스 자료일 뿐이었던 건 비밀...




나는 이렇게 일한다
: 직접 다양한 브랜드의 Big Fan이 되어보기
팬들이 연예인에게 하는 것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에 팬질을!


1. 직접 경험해본다. 제품을 직접 구매해서 사용해보거나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부지런히 찾아다닌다. 아니면 관련 서적을 구입해 보는 것도 좋다. 결국 여기도 돈과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사람이 거짓말을 하지.


2. 습관적으로 검색한다. 검색창에 내가 평소 좋아하는 그 브랜드들을 자주 입력해본다. 잡지를 보듯이 검색결과를 뒤적인다. 정 바쁠 때는 브랜드의 흐름을 파악하기 위해서 제목이라도 훑고 간다.


3. 키워드에 의도를 담아서 검색한다. 여유가 있을 땐 브랜드명만 입력하지 않고 의도를 담아 다양한 단어들을 조합해본다. 그러면 브랜드명만 입력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신세계를 만날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롬톤’을 검색한다면 ‘브롬톤 +역사 –팝니다’ 등의 조합하면 브롬톤 판매글을 제외한 콘텐츠를 볼 확률이 올라간다.


4. 이런 경험들이 모이니 사람들이 내가 만든 브랜드를 왜 좋아하는지, 또는 왜 좋아하지 않는지 ‘저절로’ 이해하게 되더라. 역시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 법이더라.


다음 주에는 오늘을 담보 삼아 내일의 막연한 행복을 꿈꾸던 네이버 때의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네이버 관계자분들은 보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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