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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Apr 25. 2019

다들 든든한 빽 하나쯤은 있지 않나요?

퍼포먼스 마케팅에 눈뜨다

원활한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든든한 빽(back ground)이 하나쯤은 필요하다. 그거 없이 이 험한 직장생활을 헤쳐 나간다는 건 고행길이 따로 없다. 믿는 구석 하나쯤은 필수다. 나 역시 ‘믿는 구석’이 있다. 지금부터 그 든든한 빽을 어떻게 만들게 됐는지 이야기하고자 한다.



오.백.만.원. 월급이 아니다...

하루아침에 팔자에도 없던 스타트업 마케터가 됐다. 이제 막 시작한 스타트업의 마케터는… 뭐가 없다. 아무것도 없다. 본인이 찾아서 일을 해야 한다. 회사의 목표는 분명 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목표나 액션플랜들은 그냥 알아서 만들어내야 한다. 대기업과 비교해 이는 나쁜 게 아니라 다른 것이다. 여기에 잘 맞는 이는 엄청난 성장을 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이는 자괴감을 느끼며 방황이 길어질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그놈의 오백만 원이었다. 왜 오백만 원이냐고? 이 금액의 정체는 한 달간 집행할 수 있는 마케팅 총예산이었다. 하루가 아니라 한 달 동안 써야 하는 예산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도 없고 퍼포먼스 마케팅에 대한 경험도 전혀 없는 스.알.업이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직을 하면서 브랜딩 업무만 하면 될 것이란 나의 착각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여워 죽.이.고.싶.다. 내 친구는 대체 어쩌자고 날 데려온 것인가? 오천만원도 아니고 오백만 원이라… 허허~ 해야 할 일도 많고 매체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오백만 원이라니. 이전 직장에서 매년 내가 기안을 올렸던 예산이 백 억에서 백오십 억 사이였던 것을 감안하면 내가 왜 그리 좌절했는지 감이 올 것이다. 


그렇다 보니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건 페이스북으로 집행하는 앱 설치 광고가 전부였다. 사실 뭐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에 전단지를 만들어 판교역 앞에서 뿌려보기도 했다. 게다가 당시 퍼포먼스 마케팅을 담당하던 직원이 퇴사하면서 그 업무가 내게로 고스란히 날아왔다. 그동안 브랜딩에 대해 고민해왔던 것들을 여기에서 펼쳐 보이겠다는 다짐은 살짝 접어두고 월 오백만 원이라는 현실 앞에 한동안 페이스북만 붙잡고 살았다. 


퍼포먼스 마케팅을 시작하다

의도치 않은 선택과 집중 덕분에 평균 1,800원 수준의 CPI(cost per install)를 보이던 광고 효율을 두 달 만에 평균 800원대로 낮출 수 있었다. 찌릿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세계에 첫발을 디딘 것이다. 이해를 위해 아주 짧게 설명하자면 CPI는 한 명당 앱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으로, 당시 예산인 오백만 원을 기준으로 기존 가입자가 한 달 기준 2,778명이었던 것을 6,250명으로 끌어올린 셈이다. 두 배가 넘는 실적이다. 

그렇게 한동안 주식시장에 빠진 개미마냥 모니터에 표시된 데이터의 등락만 쳐다보고 살았다. 퍼포먼스 마케팅의 재미에 흠뻑 빠지게 된 계기였다. 그러나 그렇게 신나게 내려가던 CPI도 평균 700원대에서 멈추더니 더 이상 내려가지 않았다.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크게 두 가지로 자체 분석했다. 우선 내가 만든 광고물이 딱 그 정도 수준인 것이다. 700원을 써야 한 명이 올까말까 한 수준 말이다. 그 이상으로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솔직한 평가였다. 간결하고 정제된 언어가 사람들에게 항상 어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설령 광고문에 나오는 카피들이 비문이더라도,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페이스북에서는 사람들의 공감과 재미를 이끌어내는 게 더 효율적일 때가 있었다. 내가 젊은 꼰대인가 생각이 들 정도로 당시에는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로 온라인 커뮤니티에 가입해서 사람들이 어떤 언어로 대화하는지 관찰을 넘어 동참을 했다. 그래야 내 것이 되니까. 


그다음으로 꼽은 이유가 바로 예산의 절대적 한계였다. 물론 CPI의 개선으로 마케팅 예산을 증액 받았지만 연내 100만 명의 가입자 수라는 목표를 달성하려면 지금의 효율과 속도로는 부족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혹자는 어차피 CPI라는 게 비율의 문제니 예산을 증액한다고 해도 그 값은 고정적이지 않은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는데, 당시의 페이스북은 네트워크 파워에 최적화된 매체로 투입되는 광고 물량에 따라 그 효율의 기울기는 급속하게 상승할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들이부으면 들이부을수록 효율이 좋아진다는 이야기다. 궁금한 사람은 멧칼프의 법칙 같은 네트워크 관련 이론들을 살짝 찾아보면 좋을 것이다. 



스타트업 공동 마케팅

그렇게 효율의 정체로 고심하던 내게 의문의 제안이 들어온다. 토스의 마케터에게서 연락이 온 것이다. 당시엔 토스가 뭔지도 잘 몰랐다. 진짜 뭣도 모르고 업계로 왔다. 그는 토스와 공동으로 마케팅을 진행해 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고, 여기에는 토스뿐만 아니라 지그재그, 이음, 다이닝코드, 화해, 빙글 등과 같은 스타트업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다 처음 들어본 이름들뿐이었다.


그의 제안을 요약하자면 페이스북 앱설치 광고에 쓰는 예산을 회사마다 분산해서 집행하지 말고 그 예산을 모두 모아 한 계정에 집중몰빵하자는 것이었다. 만약 5개의 회사가 공동으로 광고를 집행하면 단독으로 하는 것보다 예산을 5배로 쓸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 효과는 당연히 현재의 CPI 효율보다 좋을 테고 현재 자기들은 이걸로 괜찮은 성과를 내고 있다고 했다. 


(그렇게 좋은 걸 왜 나랑...?)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도 아니고 다짜고짜 연락이 와서 예산을 같이 쓰자고 하니 경계를 하지 않으려야 않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라. TV나 영화에 등장하는 사기꾼 캐릭터의 모습과 닮아 있지 않나? 아, 절대 그의 외모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말이지 법 없이도 살게 생겼다. 매체 속의 사기꾼들은 대개 고민에 빠져 있는 주인공에게 다가와 그가 원하던 부분을 해결해줄 수 있다며, 효과까지 확실히 보장한다고 장담을 한다. 토스의 제안과 너무 유사하지 않은가? 어떻게 경계를 안 할 수 있겠는가? 게다가 퍼포먼스 걸음마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로 뭔가 전문적인 느낌을 확 풍기며 너무 신뢰를 주니까 오히려 그게 더더더욱 의심스러울 수밖에! 성진아 미안…


(그때는 나는 완전 퍼포먼스 쪼렙으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았고, 워낙에 적은 예산으로 일해야 했던 시기라 적은 돈이라도 허투루 쓸 수 없었다. 게다가 뭔가 미숙해 보이면 안 된다는 생각에 꼿꼿하게 굴었던 것이 오히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지금이야 틈날 때마다 또는 마케터로서 고민에 빠질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갑내기 친구로, 사회 나와서 만난 친구 중에 몇 안 되는 편하게 말하는 사이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서로 불편했다. 토스 마케터들끼리 내 뒷담화했다고 카더라…)


초반의 오해를 극복(?)하고 우리는 꽤 긴 시간 동안 ‘연합광고’라는 이름으로 공동 마케팅을 진행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대여섯 개의 스타트업끼리 모여서 각자 카드뉴스 형태의 광고물을 만든다. 당신이 페북에서 보던 리스티클 광고가 바로 그것이다. 자사의 광고만이 아니라 서로의 서비스가 모두 포함된 ‘시리즈 형식’의 광고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각자 만든 광고를 검수하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완성한다. 이후 미리 준비해둔 페이스북 페이지에 업로드 후 광고를 태우는 것이다. 핵꿀팁 페이지가 가장 열일했다. 최소 15개에서 20개 정도의 콘텐츠를 매주 만들고 거기에 소액으로 광고를 집행한다. 그렇게 24시간 정도 지켜보다가 효율이 좋은 콘텐츠가 눈에 띄면 해당 콘텐츠에 예산을 집중하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평소 오백만 원 정도 집행하던 것을 삼천만 원까지 늘리니 회사마다 효율은 차이가 났지만 전체적으로 모든 회사의 CPI에 긍정적인 성과를 안겨줬다. 


처음 만났을 때 토스에서 장담한 대로 광고 효율은 기존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어느 정도였냐고? 깨질 것 같지 않던 700원대의 CPI가 하루아침에 100원 미만으로 떨어지더니 계속 두 자리 수의 CPI 효율을 보여줬다. 가장 좋을 때는 셀잇을 기준으로 30원까지 낮아진 적도 있었다. 말 그대로 미친 활약이었다. 예산을 몰빵했을 때 나타나는 효과는 십시일반(十匙一飯)이 아니라 십시천반(十匙千飯)과 같았다.


말 그대로 미친 활약을 했다


연합광고의 효과가 워낙 극적이기도 했지만 일하다 보니 다양한 스타트업에서 모인 마케터들끼리 같이 일하는 것 자체가 즐거웠다. 이걸 보고 또 “아뉜데~ 착각하시기는!” 이렇게 말할 누군가가 떠오른다. 그도 그럴 것이 스타트업은 규모 특성상 자신의 업무에 공감할 수 있는 이를 찾기가 어렵다. 게다가 같은 회사 직원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 그렇기에 연합광고로 모인 마케터들은 서로에게 좋은 대나무숲이자 과외선생이었다. 심지어 우리끼리 마케팅 대행사를 차리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팀워크가 좋았다. 우리끼리 회사 차리면 놀다가 망할 거란 한 마케터의 의견에 다들 공감했는지 이 이야기는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않았다. 


마님들은 현재진행형

지금이야 함께 했던 연합광고는 끝났지만 지금도 ‘마님들’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토스를 비롯해 지그재그, 화해 등 그때 모였던 다양한 스타트업의 마케터들끼리 만든 카톡방의 이름이기도 한 ‘마님들’은 여전히 마케터들만의 경험을 공유하며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다. 


한번은 새벽 1시에 카페로 불려 나가서 보도자료 첨삭을 하거나 부정이슈에 대한 대응방안 등을 함께 논의한 적도 있다. 새로 창업한 그 친구에게 어떻게든 도움을 주고 싶었기에. 또 우리는 서로의 회사로 이직을 하거나 이직 정보를 물어다 주기도 한다. A와 B가 동료였다가 B와 C가 동료가 되기도 하는 등 묘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공적인 부분을 떠나서 서로의 결혼식이나 집들이에 초대하기도 하는 등 우리는 직장 동료는 아니지만 ‘회사 친구’ 같은 관계를 유지하며 온오프라인을 가리지 않고 여전히 함께하고 있다. 


그렇다. 내게 든든한 빽이자 믿는 구석은 바로 ‘마님들’이다. 셀잇을 나와 창업을 준비할 때에 창업 선배이자 망한 CEO 선배 지그재그의 CMO인 정훈이형을 찾아가 몇 시간씩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그때도 지금도 무조건 말린다. 면접을 보고 나와 마케터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이 들 때 울컥하던 나를 5분 만에 정신 차리게 해 준 슬기, 커리어가 꼬였다고 징징대면 창업하기 좋은 커리어라며 위로해준 성진이, 자기랑은 안 맞다며 떽떽거리면서도 내 원고를 꼼꼼히 읽어주며 피드백해준 민영이, 그리고 내 투머치한 열정발악을 옆에서 다 받아준 문섭이까지 모두 고맙고 든든한 나의 동료들이다. 그밖에도 다들 자기 분야에서는 한 가닥씩 하는 마님들이 있다. 우리는 광고 예산을 모으기 위해 모였지만, 어느새 우리는 서로에게 든든한 ‘빽’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렇게 일한다"
: 네트워크 모임을 따로 찾아 다니지 않는다.


인맥 보다는 인연을 중요시한다. 그래서 네트워크를 만드는 모임에는 굳이 일부러 찾아가지 않는다. 관계는 만드는 게 아니라 만들어 지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귀한 인연을 어떻게 하면 이용할까 보다 내가 먼저 그들에게 나눌 수 있는 게 무엇인지 고민한다. 되도록 Taker가 아닌 Giver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부족한 게 많은지, 불쌍해 보이는지 자꾸 주위의 도움을 많이 받게 된다. 늘 감사한 마음이다. 


다음 주에는 R&R에 대한 평소 고민을 털어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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