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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May 23. 2019

당신은 브랜드를 가지고 있나요?

스펙이 아닌 스킬로 밥벌이 할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어학연수, 토익, 오픽, 한자검정시험, 한국어검정시험, 공모전, 재수강, 계절학기, 5학년 2학기, 자원봉사, 인턴까지… 지금 언급한 것들은 취직을 하기 위해, 더 정확히 말하면 스펙을 쌓기 위해 내 20대를 꽉 채운 기록들이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8년까지 스펙을 준비한다. 나 역시 남들처럼 ‘해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갔다. 그리고 운 좋게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취직할 수 있었다. 재수 없음 주의!


뭐, 솔직히 말하면 잘나서가 아니라 운이 좋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버티다 보니 얻어걸렸다. 취업준비 과정에서 내가 만들었던 스펙은 알고 보니 실무에 필요한 능력을 가늠하는 잣대로는 부족했다. 애초에 스펙만으로 누군가의 진짜 실력을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내가 합격한 것은 운인 것이다. 조금 과장하자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취준생들은 대동소이한 업무 능력을 지녔다고 본다. 본격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은 대리 달고부터란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누구는 붙고 누구는 떨어지는 것이 철저히 그들의 능력이나 실력에 따라 정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운이 조금 더 따라주는 이들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이 있을 뿐이다. 



물론 채용을 해야 하는 회사 입장에서는 과정의 투명성을 위해 객관적 지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게 곧 스펙이란 것이다. 채용 담당자 중에는 스펙이란 놈이 어쩔 수 없는 필요악이라고 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만들어진 스펙들을 보면서 이를 통해 지원자들의 최소한의 자질이나 성실성을 볼 수 있다고 말하는 이도 있는데, 굳이 누군가의 성실성을 보기 위해 이렇게 긴 시간과 많은 비용을 모두가 들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사회적으로도 봐도 이는 비용 낭비다. 


취직해 본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막상 회사에 가면 내가 그동안 쌓아왔던 스펙들은 사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물론 직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경우처럼 기업의 홍보실에서 일할 때 2급씩 되는 한자를 읽을 필요도 없었고, 토익을 900점 맞을 필요도 없었다. 카운터 파트너가 외국인일 경우 좋은 회사일수록 당연히 통역이 붙는다. 물론 잘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토익 900점과 의사소통은 상관관계가 적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결국 지금의 스펙은 개인의 실력을 가늠하는 기준으로 적절치 못하다는 데 다들 공감할 것이다. 더 슬픈 것은 스펙을 쌓는 사람도, 이를 평가하는 사람도 이게 업무 능력을 평가하는 데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 사회는 취준생에게 스펙을 요구한다.


 

그놈의 스펙

오늘도 여전히 대한민국의 취준생은 스펙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문제가 있다는 걸 우리 모두 알지만 그래도 일단은 쌓고 봐야 한다. 마음 한구석이 저리다. 이는 지나온 자의 배부른 연민 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감히 이를 내 과거에 대한 후회와 아직도 바뀌지 않은 사회에 대한 분노라기엔 조금 민망하고 불만 정도로 합의로 설명할 수 있다. 


누구나 다 알아서 이제는 입 밖에 꺼내기도 민망한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딱 하나다. 우리 사회는 이제 다른 기준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드디어 취뽀를 했을 때 어머니가 혼잣말로 “끝났다”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죄송하면서도 묘한 찝찝함이 있었는데 막상 취직을 해 보니 역시나 끝이 아니었다 이대로 해피엔딩일 것만 같았던 인생은 여전히 다음 미션을 강요하고, 또 다음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준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게다가 평균 수명도 길어진다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이 회사를 다니며 밥벌이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걱정까지 추가되면서 능력과 스펙, 일자리와 일거리 같은 이슈들에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나와는 전혀 다른 20대를 보낸 친구와 이러한 문제를 같이 해결해 보자는 취지로 창업까지 했다. 우리가 스스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해 보겠다는 포부객기를 가졌다.


우리의 화두는 크게 두 가지였다.


스펙 대신 스킬로 밥벌이를 할 수 없을까?
학벌이 아닌 각자가 가진 능력으로
직장을 갈 수는 없을까?”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일자리를 늘리는 정책이 과연 맞을까?
아니, 정말 늘릴 수 있는 문제인가?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나?


스킬, 이른바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기회돈벌이를 얻고 삶을 영위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고 너무나 원론적인 이야기지만, 오히려 지금 우리 현실사회에서는 판타지 같은 이야기다. 스킬이 들어가야 할 자리에 스펙(spec)이라는, 정작 영어권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언어가 대신하면서 이 현실은 오히려 판타지가 되어버렸다.


기왕 시작한 김에 제대로 된 판타지를 그려보고자 했다. 우주정복이라도 할 기세로.



스펙이 아닌 스킬로

시스템의 이름은 스킬카드(skillcard)로 정하고 우리는 다음과 같은 그림을 그렸다. 스킬카드는 단순히 서비스라기보다 일종의 능력관리(skill management) 시스템 구축이 목표였다. 물론 우리는 이 시스템을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서 밥벌이우주정복를 할 계획이긴 했다. 


우리는 스킬카드를 통해 사람들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나 브랜드를 정립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다. 이 시스템에 접속한 개인은 이곳에 자신의 경제활동과 관련된 경험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능력을 구체화하고 이를 제삼자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스킬화’해서 등록할 수 있다. 이렇게 등록된 스킬은 운전면허증과 같은 ID카드 형식으로 제작되고, 온라인상에서 DB로 저장되어 언제 어디서든 타인과 공유할 수 있다. 또한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된 정보는 당신만의 살아 있는 ‘프로필’로써 상대방에게 원하는 정보만을 빠르게 취사선택해 상대에 따라 효율적으로 당신을 소개할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스킬카드라는 시스템을 통해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주체들은 노동자로서의 타인과 구별되는 아이덴티티가 생겨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자기만의 스토리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그 누구와도 구별되는 자신만의 브랜드를 갖게 된다. 



그리고 스킬카드는 사람들을 연결한다. 자연스럽게 다양한 사람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가는 동시에 시스템 안에서 새로운 기회와 연결되고 이를 통해 경험의 확장과 능력의 향상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또 타인의 능력 현황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현재 역량을 점검하는 계기가 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스킬의 단순 서열화나 경쟁을 위한 비교가 되지 않기 위한 장치들을 준비해 나갔다. 제일 잘난 사람이 아니라 가장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최고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는 길이라 믿었다.


또한 스킬카드는 사람들을 성장할 수 있게 돕는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기회가 편중되지 않는다면 상대적으로 경험이나 스킬이 부족한 이들도 기회와 만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능력의 향상, 이른바 ‘스킬업’을 하게 되고, 더 다양한 작업, 동료, 직장 등과 같이 새로운 기회를 접하게 된다. 이러한 순환구조를 통해 개개인의 몸값은 올라가게 된다.


독립 노동자 인디워커의 시대

어떤가? 너무 공상과학적인 상상이라고 여겨지는가? 우리는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요즘과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봤다. 그리고 이는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우리와 형태는 다르지만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이 회사를 만들고 시장에 나타나고 있다. 드디어 인디워커(indie worker)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인디워커는 인디펜던트 워커(independent workers)의 내 맘대로 줄임말이다. 인디뮤지션(indie musician)이나 인디영화(indie movie)를 떠올려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말 그대로 특정 조직에 속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를 뜻한다. 얼핏 프리랜서와 비슷해 보이는데, 엄밀히 따지면 프리랜서도 인디워커의 범주에 들어가는 노동형태 중 하나라고 보면 된다. 인디워커 ⊃ 프리랜서, OK?



요즘같이 실업률이 급증하고, 정부와 일부 대기업이 주도하는 정책만으로 현재의 고용 시장의 판도를 바꿀 수 없는, 저성장이 정상이 되어버린 뉴노멀(new normal) 시대가 장기화되면서 인디워커의 확장은 어쩔 수 없는지도 모른다.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인디워커의 규모는 미국과 유럽 15개국 노동인구의 20-30%(1억 6천 만명 수준)에 달한다고 하며, 인디워커전문 연구기관인 MBO 파트너스는 2021년까지 미국 전체 노동인구의 절반 수준인 46-48% 정도가 인디워커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서구사회에서는 인디워커의 성장과 관련한 고용시장의 변화를 단순히 위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로 이해하고 진화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안착하기 위해 인디워커들이 새로운 경제주체로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반해 현재 우리의 모습은 어떠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의 실업률이나 고용에 대한 지표를 굳이 가지고 오지 않더라도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상황이 이러한 데 비해 우리의 대처는 솔직히 조금 아쉽다. 일부 대기업에 의존하는 일자리 창출이나 공무원 수를 늘리는 방식의 일자리 확대 정책을 실행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을 피해 갈 수 있을까? 대통령님과 시장님 두 분 모두 제가 정말 좋아하는 분들입니다…만 그래도 아쉬울 수 있잖아요… 그죠? 앞에 언급한 것들의 방향이 틀렸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또 그것대로 지속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감히 나의 얕은 지식으로 현 정부의 정책 전부를 비판하는 것 또한 위험할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 그쳐서는 안 된단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이제는 일자리가 아닌 일거리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평생직장’이라고 하는 어쩌면 고대 유물이 될지도 모를 놈을 억지로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더 확률이 높은 승부가 아닐까?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진 인디워커가 되어보는 것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도전을 하는 이들이 보다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돈 벌 수 있는 욕망을 오늘도 꿈꾼다. 


당신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지고 있나요?




나는 이렇게 일한다
: 하고 싶은 일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치환한다


학생 때는 하고 싶은 일을 물어보면 PD나 광고회사 직원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요즘 누가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글을 쓰거나 이야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스스로를 특정 직업으로 제한할수록 운신의 폭이 줄어들고, 달성하지 못했을 때의 좌절감으로 자신의 가능성을 더욱 제한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후배들이 교사, 만화가, 공무원, 의사, 기자 등 단순 직업으로 자신의 내일을 한정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대신 이야기를 만드는 일, 그림으로 표현하는 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 등등 단순 직업이 아닌 실질적인 활동으로 내일을 꿈꾼다면 기회와 선택의 폭이 더 넓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의 내일을 답답한 명사 안에 가둬두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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