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영웅 Oct 19. 2020

어머니의 메일에서 7년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

화장실, 유일하게 자유로워지는 공간

나이가 들면, 연차가 올라가면, 직급이 올라가면, 역량이 쌓이면 화장실을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화장실을 찾는다.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그런가?


며칠 전 멘탈이 탈탈 털린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그냥 사라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철저하게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공간은 예나 지금이나 기껏 화장실 정도다.

군대에서 초코파이를 몰래 먹을 때에도, 신입 때 옥상에 불려가 혼난 뒤 혼자 울 때에도, 밤샘으로 너무 졸려서 몰래 잠깐 눈을 붙일 때에도, 오늘 같이 멘탈이 나간 걸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때에도 내가 찾는 곳은 화장실 맨구석 칸이다.


그 날도 화장실 구석 칸에 앉아서 '멘탈 회복 의식'을 했다. 버릇처럼 스마트폰을 만지작 거렸다. 인스타그램을 열어서 친구들 애기들이 얼마나 컸는지도 보고, 다들 어디서 뭘 먹고 다니는지도 보고, 유머 콘텐츠도 좀 보다가 시들해져서 바로 페이스북으로 갈아탔다.


Facebook에서 함께한 순간


늘 페북을 켜면 제일 먼저 보게 되는 영역이다. 그 날은 '7년 전 오늘'을 보여줬다. 어머니가 보낸 메일을 캡쳐하며 화이팅을 다짐하는 포스팅이었다. 열혈청년일세... 그런데 그때는 보지 못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보이더라. 그때는 내가 힘들어서, 세상에서 나만 힘든 줄 알았기에 미처 헤어리지 못했던 어머니의 마음이 보였다.



생각해보니 당시 나는 원래 하고 싶었던 일 대신 취직을 택했던 지극히 평범한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처럼) 2년차 직장인이었다. 원래는 공부를 더 하고 싶었고, 직업을 정한다면 광고나 디자인 관련한 업무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학교를 마치자마자 바로 취직했다. 광고 회사 대신 홍보실로. 어머니가 원해서였다.


아무리 어머니의 권유가 있었다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이미 나의 선택이었고 회사가 좋은 곳이라 어머니의 권유는 이미 기억 속에서 지워진지 오래였다. 그냥 내 몸이 힘들었을 뿐이다. 일이 많고 어려워서 매일 야근에 야근, 주말도 없이 일하느라 지쳐있었다. 그래서 짜증도 많이 냈을 게다.



"빨래 내가 할 거니까 내 빨래 건들지 말라고!"

"안 먹는 다니까! 배가 안 고프다고. 그 시간에 잠이나 더 잘 거라고."


문제는 그런 날 보는 그녀의 마음이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연스레 자신을 탓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마음이 보이니까 너무 죄송하고 무거운 마음이 들었다. 남들 눈치 보느라 화장실에 박혀 있었으면서 정작 어머니 앞에서는 그걸 하지 못했던 것이다.


서른이 넘은 아들의 지친 짜증이 얼마나 바늘처럼 쿡쿡 찔렀을까? 갑자기 며칠 전 통화 끝에 어머니가 평소 안 하시던 사랑한다는 말에 당황해서 "건강 챙기세요"라고만 했던 게 또 걸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버릇없는 영정사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