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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Oct 27. 2020

버릇없는 영정사진

형식과 본질 그 사이 어딘가에 있을-


이 그림을 영정사진으로 쓴다고 할 때 우려 섞인 소리가 많았다. 



“그래도 장례식인데..."

"장례식이 장난도 아니고-"


이제는 정확한 워딩은 사실 기억나지 않는다. 7년이 지난 지금도 비수로 꽂혀 있다. 


'내가 정말 잘못한 것일까?'


장례식에 사용되는 영정 사진에 지켜야 할 '도리'나 '예'는 과연 어떤 것일까? 그 형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유족이 고인을 애도하기 위한 본질(내용)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할 것인가?


사실 그 어느 것 하나도 빼놓을 수는 없다. 이런 선택은 영정 사진을 고를 때만 맞닿드리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그 정도(程度)를 찾아야 했다. 내 안에서 답을 찾아야했다.


내 아비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던 순간부터 서른이 넘을 때까지 각종 병들과 싸워야했다. 당뇨부터 시작해 교통사고로 인한 뇌병변, 그리고 말년에는 암까지 발병하느라 거의 20년 넘게 병원과 집안에서만 버텨야했다. 그러니 변변한 사진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렇다고 전혀 선택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증명사진처럼 쓸 수 있는 건 나보다 어린 아버지의 20대 청년 시절 사진을 쓰거나, 아니면 다치기 직전 지금의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사진을 크롭해서 쓰는 방법도 있었다. 아니면 '싸이월드'에는 있지만 파일로는 남지 않은 저화소의 사진들을 택하는 방식이었다. 화질이 좋은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은 차마 공개할 수 없을 정도로 마르고 야윈 모습이라 꺼낼 수조차 없었다.


우선 젊은 시절 사진은 쓰지 않기로 했다. 나보다 어린 아버지의 모습을 마지막 모습으로 담기엔 내가 견디기 어려웠다. 마지막으로 찍은 증명사진을 하려고도 했지만 그조차 아프기 시작한 때라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렇게 열심히 사진을 찾고 또 찾았더니 아버지의 마지막 생일 사진이 나왔다.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의 마지막 미소였다.


그러나 이 역시 화소가 확대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이 사진을 친구에게 내밀었다. 당시 그 친구는 주변 지인들의 초상화를 그려주고 있었는데 그림체가 따뜻하고 좋았다. 왠지 위로 받는 느낌이었다. 


그에게 이 사진을 그림으로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영정사진으로 쓸 수도 있을 거라고 미리 말해줬다.


부담스러워하는 친구에게, "영정 사진은 가족을 비롯해 조문객들이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니, 사람들에게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연히 클라우드를 정리하다 이 사진이 나왔다. (수평이 안 맞는 걸 보니)어머니가 찍어두셨던 사진 같다. 문득 7년이 지난 지금도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때의 나는 무엇을 지키려고 했고, 무엇을 지키지 못했을까? 지금의 나라면 또 어떤 선택을 했을까?


확실한 건 나이를 한해 한해 먹어갈수록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 최소한으로 지켜져야하는 것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런 내 자신을 보면서 놀랠 때도 있고. 


나는 '어느 정도'에 서 있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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