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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가 없는 마법의 단어

by 신영웅

최근 들어 의식적으로 쓰지 않으려는 단어가 생겼다. 바로,


어쨌든


부사다. 우리가 쓰는 말이나 글에서 삭제하더라도 크게 상관이 없는. 그렇지만 입에 달고 있다.


비슷한 말로는 아무튼, 여하튼, 하여튼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언제 이 단어를 가장 많이 쓸까? 주로 상대의 뜻을 거스를 때 많이 쓴다. 가령 "어쨌든 난 안 갈 거야"라고 한다면 상황이나 형편이 어찌 되어 있든 간에 가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담고 있다. 주어진 상황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내가 가지 않음으로 인해 누군가는 곤란해질 수도 있다. I dont care-


물론 자신을 돌보는 것이 가장 우선이고, 나처럼 거절하지 못해 이리저리 불려 다니는 애들에게 필요한 단어이긴 하다. 그러다 보니 입에 붙은 것도 사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단호함을 담은 단어를 줄이려는 이유는 뭘까?


상황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건 상대를, 그리고 발화와 관련된 이들을 고려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단호한 언어를 누구에게 가장 많이 쓰게 될까? 당신은 정말 대하기 어려운 사람 앞에서 이 단어를 쓰고 있는가?


어릴 때는 '엄마'에게 가장 남발했을 것이다. 각자의 사춘기를 떠올려 보자.


"어쨌든 난 싫다니까? 싫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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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한 번쯤(수 백 번 이상) 했을 것이다. 이 단어의 대상은 대부분 자신이 이 단어를 써도 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가깝거나 편하거나, 또는 만만하거나...


그렇다. '어쨌든'은 죄가 없지만 우리는 죄책감을 가져야 한다. 이 단어를 쓰는 동안 우리는 상대를 배려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부사 하나로 상대를 지그시 누른 채 이야기를 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이렇게는 진행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어쨌든 이번에는 그냥 이대로 하시죠?

어쨌든 안 돼요.

어쨌든, 어쨌든!


나이가 많아질수록, 책임질 것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더 조심스러운 언어를 골라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대신 조금 돌아가게 되더라도, 조금 더 많이 고민해야 되더라도, 조금 더 수고스럽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 (상대가 납득할 이유)때문에'를 함께 써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이를 먹으니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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