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서평원 리브랜딩 스토리
위에 놓인 30개의 단어 중 틀린 글자는 몇 개일까?
30개? 28개? 27개?
처음 지인들에게 이 이미지를 보여줬을 때 그들의 반응은 비슷했다.
'틀린 글자? 네놈이 또 글장난을 치려는구나'라는 추임새로 시작해 삶긺앎이라는 글자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말도 안되는 단어를 가져온 게 아니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조금 유심히 본 이들(=나의 작업을 그래도 좋아해주는 고마운 분들) 중에는 삶과 앎이란 단어는 워낙 눈에 익은 것에 반해 긺이 눈에 밟혀서 헷갈려하는 이도 있었다. "함정 발견!"이라며 손가락을 치켜든 이도 있었다.
당신도 한번 맞춰보라.
틀린 글자는 총 몇 개나 있을까?
사실 여기에 놓인 30개의 단어 중에 '틀린' 글자는, 없다. '익숙하지 않은' 글자만 있을 뿐이다.
믿지 못하겠다고? 그럼 다시 저 단어들을 살펴보자. 갈다, 열다, 달다, 돌다, 말다... 등등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서술어들이다. 이를 갈고, 문을 열고, 단추를 달고, 운동장을 돌고, 쏘맥을 말고... 응?
그러니까 저 단어들의 정체는 용언의 어간에 명사형 전성 어미인 'ㅁ'이 붙어서 명사화된 어휘들인 것이다. 이럴 때는 영락없는 국문과지만 실제로 학교 다닐 때 어휘론이랑 음운론 모두 F였다.
일단 틀린 글자가 없는 건 알았는데,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 단어들을 틀렸다고 생각했을까?
낯설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이니까. 이처럼 우리는 종종 낯선 것을 접하게 되면 지레 선입견을 갖곤 한다. 잘 알지 못해서, 또는 아직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뇌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것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는 관습적으로 낯선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을, 또는 소수에 해당하는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하는 오류에 종종 빠진다. 일종의 편견이다.
이 대목에서 서평원이 처한 현재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연상됐다. 그리고 이 포인트가 바로 서평원 리브랜딩의 시작점이 된다. 사람들이 흔히 갖게 되는 편견을 가지고 브랜드를 재정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왜 하필 편견과 서평원을 연결시키려고 했을까?
바로 서평원이 처한 현재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으로 임명 받고 제일 먼저 했던 것이 '평생교육(Lifelong education)'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특히 코어 타깃으로 선정된 2545 직장인(물론 공공이므로 서브 타깃은 모든 시민이다...)의 머릿속을 탐험했다. 최대한 많이 인터뷰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봤다. 옆에서 계속 지켜보던 아내는 짜증을 냈다... 그들의 공통된 이야기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평생교육이 뭐예요?"
"아~ 문화센터에서 하는 거죠?"
"저랑은 크게 상관없는 거 아닌가...?"
"저희가 평생교육 서비스 기업이라고요?"
그들에게 평생교육이란 어디선가 들어는 봤지만 대충 느낌적인 느낌만 아는, 무엇보다 내 삶과 크게 접점이 없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단한 설문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자기계발은 했지만
평생교육은 받지 않았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상에서 평생교육을 경험하지만 그것이 평생교육이란 걸 모르고 지나치고 있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란 말과 크게 차이가 없었다. 평생교육에 대해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그 결과 이 단어가 그들에게 매력적이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에서 행해지는 평생교육의 실제와 달리 그 언어는 오염되어 있었다. 나와 상관 없는, 그저 자신들의 부모 세대를 위한 것 또는 주부들의 취미 활동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서평원의 정책이나 프로그램에도 편견이 존재할 수 밖에 없었다.
평생교육에 대한 다양한 정의가 존재하지만 현재를 가장 잘 담고 있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차가 엄청 많으실 것 같은차갑부 교수의 <평생교육론>에 보면 '평생교욕은 한 개인이 태어나서 죽기 전까지의 수직적 통합과 가정과 학교를 포함한 모든 생활공간의 수평적 통합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때 자신의 학습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형식적/비형식적/무형식적 교육활동'이라고 정의내린다.
이것만 봐도 우리가 이 중요한 단어를 얼마나 매력적이지 못하게 다뤘는지 알 수 있다. 이는 단순히 받아들이는 사람의 탓이 아닐 것이다. 우리가 잘 전달하지 못한 것이다. 공급자(!)들 중에서도 자신의 일을 제한적으로 이해하고 진행해 온 이들도 많았을 것이고. 아오...
그래서 서평원의 리브랜딩 목표를 선정할 때 단순히 우리를 잘 포장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평생교육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오해와 편견을 터치하고 싶었다. 감히 다 해결할 수 없을지라도.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대상에는 수요자인 시민을 넘어 공급자인 우리까지도 포함되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서비스 공급자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자긍심을 느꼈으면 했다.
그래서 서평원의 새로운 브랜드를 대표하는 철학이나 핵심 키워드를 삶긺앎으로 정해서 브랜딩 통합 회의 때 가져갔다. 진짜 저대로 가져갔다. 가져갔다. 가져갔다...
이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계속)
<쉬어가는 코너지만 일하는 방법을 말하는, 아이러니한 팁>
영역을 가리지 않고 브랜드 기획자라면 어떤 브랜드를 맡게 되더라도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해당 브랜드를 관찰하고 브랜드의 철학을 관통하는 핵심 메시지 또는 키워드를 발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사결정과정에서 늘 챙겨야 하는 것이 코어 타깃이다. 타깃을 바탕으로 브랜드의 관찰과 발굴은 매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 과정에 대한 고민이 얕다면 브랜드의 힘도 비리비리...
서평원 리브랜딩 스토리
(1) 브랜드 메시지를 쓸 때마다 하는 고민 go!
(2) '편견'으로 브랜드 메시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