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앞서 이야기한 개그 동아리 '입큰개그리'외에 하나의 서클에 더 가입했다. 이 역시 아무 생각이 없던 내 의지로 찾아간 것이 아니고 사촌 형의 권유에 의해서다. 사촌 형 왈 "대학에 가면 다들 놀기 바빠서 졸업 즈음에는 후회하는 이들이 많으니 타임지를 공부하는 서클에 들어가서 영어 공부 열심히 하도록 해." 다행인 것은 귀가 얇아서인지 주위에서 해보라고 하면 거부감 없이 노크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타임지라는 영어 잡지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영어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근데 그냥 무작정 '타임지 연구반' 서클룸을 찾아가서 덜컥 가입을 해버렸다. '입큰개그리'와는 달리 '타임지 연구반' 서클룸은 2개의 서클만 사용하는데 창이 있는 안쪽에 위치해 있어서인지 좀 더 아늑하고 뭔가 있어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서클룸에는 항상 사람이 많았다. 여학생들도 많았다. 나는 공대생이라서 여학생 만나기가 어려운데 이 서클 덕분에 여학생 없는 대학생활을 모면할 수 있었다. 나를 비롯하여 신입회원이 대략 20명 정도 가입했다. 84학번이 4학년을 다니고 있었으니 학년당 10명만 잡아도 70명은 족히 넘는 대규모 서클인 것이다.
'타임지 연구반'의 학습방법에 대해서 잠시 설명을 하겠다. 타임지는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있다. 미국 정치 이야기부터 역사, 문화, 취미, 스포츠, 핫이슈 등등.. 그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것은 제일 마지막에 위치한 Essay다. 에세이 칼럼니스트는 은어법을 자주 사용하기에 사전상 단어의 의미만으로는 해석이 어려운 문장들이 많다. 베테랑 선배들은 본인이 좋아하는 에세이스트의 관심분야 및 문장 성격을 파악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주 5일 오후 5시가 되면 지정된 강의실에서 전 주에 발행된 타임지 내용 중 일부를 선택하여 한 명이 앞에 나가서 발표를 한다. 물론 1주일 전에 미리 정해지고 누가 어떤 내용으로 강독을 하는지 서클룸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기재된다. 칼럼 발표자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름이나 겨울 방학 동안 6주간의 Hard Training 과정을 거쳐야 하고 마지막에 선배들 앞에서 칼럼 발표 테스트를 통과해야 한다. 모든 관문을 통과하면 정회원이 되고 배지를 부여받는다. 이렇게 정회원이 되어야 학기 중 강독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나 같은 준회원 입장에서는 꽤나 우러러 보이는 그런 존재였다. 여러 번 강독실에 들어가 봤다. 수십 명이 앉아 미리 준비된 유인물을 보고 있고 앞에 한 명이 서서 발표를 한다. 2학년이 발표를 할 때는 아직 긴장된 모습으로 간혹 말을 떨어가며 천천히 진행을 한다. 1주일 전부터 도서관을 찾아 공부를 했음에도 틀린 해석이 나올 때면 뒤에 앉은 선배들로부터 질책을 듣는다. 마음이 여린 여학생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살벌한 분위기.. 반면 4학년 베테랑 선배가 발표할 때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 심지어 발표자가 의자에 앉아서 한다. 단순히 단어만 해석해서는 알 수 없는, 그 문장의 배경 해설과 함께 일반 상식을 알려줄 때면 감탄의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와 멋있다.. 이렇게 강독이 끝나고 나면 저녁 7시. 다 함께 헌동네에 위치한 막걸리 집으로 향한다. 허름한 막걸릿집 안으로 들어가면 기다란 방이 있고 탁자가 쭉 나열되어 있다. 라면을 시킨다. 막걸리를 시킨다. 라면을 먹은 후 라면 국물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신다. 입이 심심하면 깍두기를 국물에 넣어서 먹는다. 돈 없는 대학생들이 이렇게 회식을 즐기지만 다들 밝은 얼굴로 맛있게 마시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여름 방학이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맞이하는 방학. 무전여행, 농촌활동, 아르바이트 등등 각자 자기만의 계획을 세운다. 나? '타임지 연구반' Hard Training에 참여하기로 했다. 무려 6주간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강의실을 하나 빌려서 영어 공부를 한다. 참여한 준회원은 대략 20명 정도다. 2학년 선배들이 수업을 리드한다. 오전에는 토플을 바탕으로 문법과 독해 공부를 한다. 오후가 되면 듣기 공부도 하고 타임지 칼럼 독해 연습도 한다.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도 없는 무더운 강의실에 앉아서 하루 종일 영어공부를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너무나 더운 날은 모두 땡땡이를 치고 동학사 계곡으로 향한다. 계곡에서 먹는 막걸리에 파전 맛은 정말이지 꿀맛이다. 고참 선배들은 가끔 격려차 방문을 한다. 아이스크림과 함께. 그날 공부가 끝나면 동기들끼리 막걸리를 마시러 간다. 너무 많이 마신 날은 그냥 강의실로 다시 돌아와 책상 몇 개 모아놓고 그 위에서 잔다. 이렇게 한 달을 보내니 동기들 간에 정도 많이 들고 다 같이 이 고난을 이겨내자고 서로가 서로를 독려한다. 드디어 마지막 관문에 왔다. 칼럼 발표 테스트. 이걸 통과해야 비로소 정회원이 되는 것이다. 그리 길지 않은 칼럼을 미리 정해서 공지를 한 후 1주일간 열심히 준비한다. 동기들은 밤늦게까지 남아서 각자의 발표에 대해 코멘트를 해주며 떨어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준다. 날이 밝았다. 강의실에는 선배들이 가득 앉아 있었다. 미리 프린트하여 배포된 칼럼을 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짱돌을 날릴 기세다. 동기들이 차례대로 하나씩 앞으로 나가 발표를 시작했다. 우리가 모두 서로 체크하고 코멘트하면서 철저한 준비를 했는데도 여기저기서 뼈아픈 지적들이 나왔다. 몇몇 여학생 동기는 아니나 다를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여선배들은 그런 후배를 따라가 다독이느라 바쁘다. 내 차례가 왔다. 다행히 내 칼럼은 평범한 사실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꽤나 짧았다. 동기들이 도와준 덕분에 무난히 마쳤다. 난 영어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잘하지도 않았다. 반면에 동기들은 나름 고등학생 시절 꽤나 우수한 학생들이었고 영어를 좋아하거나 잘하는 그런 부류였다. 그런 내가 이런 영어 엘리트들 사이에서 뭘 하고 있지?라는 생각을 가끔 했다. 몇몇 선배들도 술자리 도중에 나에게 말하곤 했다. "너는 아마도 얼마 못 가서 그만둘 거야." 사실 실력 차이가 너무도 켰다. 다들 아는 단어를 나는 사전에서 찾아야 했고, 다들 고개를 끄덕일 때 알지도 못하지만 궁금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Hard Training에 참여한 이유는 있다. 영어를 잘해보고 싶었다.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해보고 싶었다. 그게 너무 멋있어 보였다. 6주간의 Hard Training을 마치고 모두들 들뜬 마음으로 MT를 간다. 목적지는 지리산. 서대전역에 모여 기차를 타고 간다. 역전 광장에서부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이미 MT는 시작이 되었다. 모든 학년이 함께 떠나는데 대략 인원이 50명이 넘는다. 짐도 어마어마하다. 지리산 노고단 코스 제3 야영장까지 그 무거운 단체 텐트와 내 짐을 들고 올라간다. 조를 나누어 텐트를 치고 음식을 해 먹으며 3박 4일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밤이면 모닥불을 피우고 술을 마치고 게임을 한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버린다. 더욱 밤이 깊어지면 슬며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결혼까지 이어진 서클 커플이 꽤나 많다. MT의 마지막 하루 전날. 정회원이 되려면 하나 더 거쳐야 하는 관문이 있단다. 죽음의 지옥훈련. 산 여기저기에 죽음의 코스 6개가 준비되었다. 그리고 각 코스마다 무서운 눈빛의 조교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동기 20명은 6개 조로 나누어 각 코스로 이동했다. 버려도 되는 아주 허름한 옷을 입고. 나는 1조였다. 여학생 두 명과 남학생 두 명이 한 조가 되었다. 지옥훈련이라 함은 보통 군대에 입대하면 하는 훈련인데, 조교들이 대부분 예비역이다 보니 그 분야는 빠삭했다. 오르막길을 오리걸음으로 올라야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백 개씩 해야 했다. 그것도 어깨동무를 하고 하는데 여학생이 힘들어하면 같이 보조를 맞추어 주어야 했다. 계곡 물속에 뒤로 누웠다 앞으로 누웠다를 반복하고, 김말이를 하여 데굴데굴 굴러야 했다. 오후 3시 정도부터 시작된 지옥훈련은 저녁 6시쯤 되어 끝났다.
다들 녹초가 되어 돌아왔고 2학년 선배들은 그런 우리를 수건과 물을 나누어주며 고생했다고 반겨주었다. 그날 밤 모닥불이 밝게 피어오른 가운데 동기들이 한 줄로 나열해 섰다. 그리고 선배들이 우리 한 명 한 명에게 정회원 배지를 가슴에 달아주었다. 엉덩이에 땀띠가 나는 6주간의 영어공부, 짱돌 날아오는 칼럼 발표 테스트 그리고 죽음의 지옥훈련까지.. 배지를 받을 때 눈물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나는 정회원이 되었다.
제대를 하고 복학을 했다. 휴가 때면 항상 찾던 '타임지 연구반' 서클룸으로 향했다. 예전에 서슬 파랐던 고참 선배들은 졸업을 했다. 93학번이 2학년 주축이 되어 있었다. 나를 선배라고 부르는 후배들이 꽤나 많아졌다. 서클 활동은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오후 5시가 되면 강독실에 모여 칼럼 발표를 했다. 이제 나도 예비역이고 졸업을 하면 취직을 해야 하기에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칼럼을 들으러 가끔 가기도 했지만 정회원이기 때문에 반강제적으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칼럼 발표는 너무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단어 찾기도 바쁜데 도서관에 가서 관련 기사나 인물들까지 조사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영어 실력 향상을 위해서 긍정적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인생에 있어서 아주 큰 사건(?)이 있었다. 나와 내 동기는 그날도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었다. 후배 여학생이 우리에게 와서 인사를 하며 아는 척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선배님, 제가 곧 칼럼을 발표하는데 아무리 노력을 해도 모르는 게 있어서요. 좀 도와 주실 수 있으세요?" 내심 기뼜다. 선배로써 후배에게 가르침을 준다는 건 뭔가 멋있고 뿌듯한 일이고, 후배로부터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런데.. 그 후배 여학생이 칼럼 유인물을 보여준 사람이 내가 아니고 내 옆에 앉은 동기였다. 그 선배가 나보다 더 영어 실력이 좋아 보이고 신뢰가 가기 때문에 그리 선택한 것이 아닌가. 창피하고 고통스러웠지만 그건 사실이었다. 그 동기는 나보다 영어 실력이 뛰어났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모범생이었다.
난 그날 너무도 자존심이 상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후배에게 선택을 받지 못한 선배라는 그 자체가 너무너무 싫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내 온 힘을 쏟아서 그 동기를 뛰어넘는 영어 실력자가 되겠노라고. 아니 영어 마스터가 되겠노라고. 얼마 후 차가 있는 친구와 함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도서관의 제일 좋은 자리를 맡으려면 새벽 5시 문이 열리자마자 들어가야 하는데 보통 4시 30분부터 와서 기다려야 했다. 그 수고를 친구가 해주었다. 나는 6시쯤 도서관에 도착하여 공부를 시작했고, 7시부터는 원어민이 진행하는 영어회화 수업에 참여했다. 그리고 '미시건 액션 잉글리쉬'와 같은 유명한 영어 듣기 교재를 구입하여 마이마이가 고장 날 정도로 듣고 또 들었다. 서클 강독 시간은 웬만하면 다 참석하였다. 물론 참석하기 전, 그날 칼럼 유인물을 받아 미리 공부를 하고 들어갔다. 강독이 끝나면 술자리 대신에 도서관으로 돌아와 10시까지 공부를 했다. 처음엔 오기로 시작했는데 그게 습관이 되고 흥미가 되어 1년 이상을 영어공부에 파묻혀 살았다. 이제 영어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길 무렵, 우연히 신문을 통해 '전국 대학생 영어 스피치 대회'라는 행사 광고를 보았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원어민 영어수업도 모자라 사설 영어학원에도 다녔던 나는 스피치라면 자신 있다는 생각에 신청을 하기로 결심했다. 스피치 주제는 'Moral Hazard'. 당시 사회를 경악에 빠트렸던 사건이 있었는데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규탄의 목소리가 큰 가운데 이 행사에서도 주제를 그렇게 잡은 것이다. 이 주제를 바탕으로 영어로 대본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완성된 대본을 친한 원어민 선생님에게 보여주었고, 선생님은 친절히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셨다. 그렇게 완성된 대본과 함께 대회 신청서를 접수했고 얼마 후 연락이 왔다. 서류 합격하였으니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으로 오라고. 아침 일찍부터 하는 행사였기에 전날 서울로 올라와 여관을 잡고 늦은 시간까지 대본을 외우고 외웠다. 행사 당일날이 되었다. 평화복지대학원은 너무 이쁜 학교다. 건물도 이국적이고 캠퍼스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스피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전국에서 올라온 대학생은 총 16명. 모두 영어에 자신이 있는 고수들임이 틀림없었다. 오전은 기존에 제출한 대본을 바탕으로 무대에 올라 대학원생 관중 앞에서 영어로 발표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16명 중에 내가 1번이다. 왜지? 내가 제일 먼저 신청서를 제출했기 때문인가? 다들 어떻게 하는지 보고 하면 한결 마음이 편할 텐데 1번이라 제일 먼저 단상에 올라야 한단다. 이런 된장! 어쩔 수 없었다. 떨렸다. 성호경을 그었다. 무대에 올랐다. 며칠 동안 외웠고, 어젯밤에도 여관에서 달달 외웠고, 오늘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서 외웠다. 떨리는 가슴을 가라 앉히고 외운 대본을 소리 높여 말했다. 마치 초등학생 때 학원에서 배운 웅변처럼.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죽일 수 있냐라며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대본의 내용을 관중을 쳐다보며 스피치 했다. 무사히 마쳤다. 이제 자리에 앉아 다른 경쟁자들의 발표를 봤다.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나처럼 웅변하듯이 하는 참가자는 없었다. 목소리도 너무 부드러웠다. 마치 관중과 대화를 하면서, 때로는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모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쇼크였다. 그리고 왜 그리 영어 발음이 좋은지, 눈 감고 들으면 원어민이라 생각할 정도다. 오전 행사가 끝났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오전 발표대회 순위는 16명 중 15등. 나보다 못한 넘이 하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자. 오후 행사는 더 심각했다. 오전 행사야 미리 준비한 대본을 발표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후에는 뭘 하는지 알지 못했다. 행사장으로 들어서니 원 형태로 자리가 마련되었다. 16명은 이름이 쓰여 있는 자리에 앉았고 책상 위에는 마이크가 있었다. 오후 행사명은 'Panel Discussion'. 16명의 패널은 이번 행사의 주제인 'Moral Hazard'에 관해서 각자 2분간 자유 스피치를 해야 한다. 왓? 대본도 없이 그냥 말하라고? 영어로? 뭐 이젠 물릴 수도 없고 하긴 해야 하니 긍정적으로 생각을 했다. 2분.. 겨우 2분인데 몇 마디 하다가 금방 끝나겠지.. 해보지 뭐. 내가 첫 번째 순서는 아니었다. 돌아 돌아 내 차례가 왔다. 마이크를 앞으로 당겼다. 대본을 만들면서 다루었던 비슷한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나름 열심히 이야기했다. 다 했다. 그런데.. 30초밖에 안 지났다. 아직도 1분 30초가 남은 것이다. 난 그날 2분이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 시간이라는 걸 몸소 뼈저리게 느끼고 알게 되었다. 다른 패널들은 2분의 시간이 모자라기도 했고, 그 후 이어진 토론 시간에서는 패널들끼리 서로 말하려고 마이크 주도권으로 다투기도 했다. 쇼크였다. 발표 종료 후 동상, 은상, 금상, 그리고 대상 수상식이 있었고, 그때 참가자의 배경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대부분 유학파 출신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권에서 학교를 다녔거나 유학을 다녀온 것이다. 기차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오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름 1년 이상 하루 종일 영어에만 파묻혀 지내왔건만,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서클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인정도 받는 그런 선배가 되었는데, 난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늘 내가 본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실력..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일상으로 돌아와 다시 평소와 같이 영어 공부를 하였다. 그런데 공부가 손에 안 잡힌다. '우물 안의 개구리'. 계속 그 생각만 난다. 너무나 큰 산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민에 고민을 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나도 유학을 가기로. 마침 서클 동기가 짧은 유학을 다녀왔다. 그리고 나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뉴질랜드. 제주도도 가본 적 없는 내가, 비행기도 타 본 적이 없는 내가, 들어보지도 못한 뉴질랜드라는 나라를 가기로 결심했다. 뉴질랜드 유학 이야기는 다음 주제로 다루도록 하겠다.
뉴질랜드 유학을 다녀와서 4학년이 되었다. 이젠 나름 영어에 대한 나만의 철학이 생겼다. 겸손.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이상 한계는 있다.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영어의 다른 모습이 보인다. 서클에서 행사가 있다고 연락이 왔다. '전국 타임지 연구반 칼럼 발표대회' 한영대학교에서 주최를 하고 전국 '타임지 연구반' 서클 회원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다. 후배들의 권유로 내가 학교 대표로 나가기로 했다. 대회 당일 후배 여러 명과 함께 서울로 올라갔다. 발표장에 들어가니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각 학교 대표가 한 명씩 나와서 발표를 했다. 나는 Essay를 준비하였고 무난하게 코멘트 없이 마쳤다. 그리고 결과 발표. 최우수상을 받았다. 상품으로는 타임지 1년 구독권. 서클에 기증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준, 정말로 정말로 고마운 서클. '타임지 연구반'. 단지 학술이라는 측면만이 아닌 수많은 선배와 동기 그리고 후배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50이 넘은 지금도 서클 사람들을 만난다. 만나면 자연스럽게 예전의 우리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