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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백수고모 Jul 25. 2016

순발력이 뛰어난 곽도원, 부산 관객이 놀란 미모 이민정

연극연출가 이윤택 인터뷰-⓷

▲최근 영화 <곡성>으로 많은 사랑을 받은 배우 곽도원은 연희달거리패에서 7년여 연기 생활을 했다.(이투데이)

10여 년 전만 해도 연희단거리패 출신의 배우들을 영화 속에서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천만 관객 요정 오달수와 <곡성>의 곽도원, 배우 이민정이 대표적인 연희단거리패 출신이다.

“이번에 이민정을 만났는데 민정이가 밀양연극촌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밀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밀양에서 모기한테 한 백방쯤 모기한테 물려서 다시가 새까매진 거. 그리고 우리집 내가 사는 흙집을 짓는데 지붕 위에 올라가서 지붕을 이었다는 거야. 민정이가. 그런데 민정이가 부산 가마골소극장에서 <서툰사람들>이라는 공연을 했었는데 관객들이 장난이 아니었어. 너무 예쁘고. 너무 잘한다는 거지. 어떻게 이런 배우가 부산에서 하느냐고 그랬어. 오달수는 부산 출신이라 말이 안돼서 마임을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배우가 말을 해야지 그러면 안된다고 하면서 일본공연에 함께 한 적이 있었습니다. 곽도원은 7년 반을 여기에 있었는데 굉장히 게을렀어요. 여기는 아침에 일어나서 단체 생활을 해야하는데 말입니다. 대신에 이 친구는 개인적으로 순발력이 굉장히 뛰어난 배우였어요. 연극보다는 영화가 훨씬 어울리는 배우였던 거죠.”

이 외에도 최근 대세인 배우 황석정도 연희단거리패에서 오랜 시간 공연을 했던 배우다.  

▲어린 시절 이민정도 연희단거리패 밀양연극촌에서 연극 생활을 했다.(이투데이)

나이가 들며 독한 눈빛을 거둬내다

젊은 시절 이윤택은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단어로 표현된다. 1980년대 언론사태를 이야기한 <시민K>, 잔혹극 <산씻김> 등으로 연극 초반 강하게 어필하던 그였다. 이후 인기 공연으로 자리를 잡은 <오구>와 <바보각시-사랑의 형식> 또한 삶과 죽음을 다룬다는 점에서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특수성과 보편성의 문제죠. 가는 길이 그렇습니다. 처음에 예술을 시작할 때는 독자성,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하게 됩니다. 실험적인 시대를 거쳐 어느 정도 지나, 나 같은 경우 ‘전통’과 ‘대중’을 만나게 됐어요. 내가 한국인으로서 전통을 이해하지 못하면 되겠느냐. 그래서 탄생한 것이 <오구>이고, 연극이 꼭 식자층의 놀음이 아니지 않느냐 해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로 대중을 만났습니다. 밀레니엄 전후로 총체적 규모의 극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 <도솔가>와 <일식>을 공연했습니다. 지금은 어떤 상태가 됐냐면 내가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이윤택 스타일’이라는 게 특수성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그래서 올해 연희단 거리패 30주년 공연으로 안톤 체홉의 <벚꽃동산>을 선택한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관객들이 알고 있는 작품을 사용하되 이윤택, 연희단거리패 스타일을 보편적인 의미 속에서 고수할 것. 그것을 나이가 드니 할 수 있게 되더군요.”

치열했던 이윤택의 초기작도 좋지만 조금 마음 놓고 볼 수 있는 최근작 또한 편하게 볼 수 있다. 이는 이윤택의 연극 세계가 조금 더 보편화 됐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천만관객요정 오달수도 역시 연희단거리패 출신 대표 배우. 올해 제16회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밀양시)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작품과 안 좋은 작품에 대해 물었다. 그런데 우“단연 최고의 작품은 <오구>입니다. <오구>는 사실 내가 만들었다기보다는 우리 조상의 집단의식을 발견한 것입니다. 워스트 작품은 또 다른 나의 베스트라고 생각하는데 <도솔가>입니다. 내가 가지고 전통과, 현실과 예언적인 것과 이런 것들 모두 포함된 것인데 평단에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어요. <도솔가>는 내가 너무 앞질러 갔어요. 그런데 김숙현이라는 분이 도솔가를 가지고 엄청 긴 논문을 썼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그분의 석사학위 논문이더라고. <도솔가>라는 작품이 연극 학자들에게 공부할 수 있는 텍스트가 됐다는 점에서 워스트라고 할 수 없으니 내 인생에는 워스트인 작품을 없지 않을까요? 제 작품에 워스트는 없습니다.(웃음)!”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형이상학적 가족사랑? 가족을 패거리 품 안에…

이윤택은 연극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단원들과 줄곧 생활해 왔다. 국내는 물론 외국 각지를 돌며 공연하고 강의하는 삶, 쉬지 않는 일상을 반복했다. 연극 장인에게 가족은 삶에서 어떤 의미일까? 어떤 아버지, 가장으로 살아왔을까?

“사람들은 내가 가장으로서 행동을 안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가 않아요. 결과론적으로 얘기하면 안사람이 밀양연극촌 자료관장으로 있고, 큰딸이 연극·뮤지컬 작가이자 연출가고, 내 작은딸은 도요출판사 일을 하고 있어요. 그러면 내 가족이 완전 100% 가업을 물려받고 있는 거잖아요? 가정을 팽개친 아버지라고 할 수 없죠.”

이 특별한(?) 예술인 가족은 지금도 같이 살지 않는다. 이윤택은 도요에, 부인 이연순씨와 두 딸 채경, 상경 자매는 밀양연극촌 안에 있는 집에 살고 있다.

“나는 일상적인 것과 가정적인 것을 경계하는 사람입니다. 왜냐면 예술적 거리라는 것이 필요해요. 너무 일상적인 것과 가정적인 것은 예술적이지 않다고 보거든요. 예술은 좀 낯선 것이다, 가정적이지 않아 보이죠. 하지만 대단히 창조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측면에서 나는 결코 가정적이지 않다고 볼 수 없어요.”

“딸들이 서운해 한 적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목소리를 죽이며 “많이 하지, 많이 하지”라고 말하는 이윤택. 그러면서도 본인은 무조건 아버지로서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사진 오병돈 프리랜서(Studio Pic) obdlife@gmail.com)

카페 ‘오아시스’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편안한 질문을 던졌다. 평생을 내달린 그에게도 나름 색다른 인생에 대한 갈구가 있지 않았을까? 흥미롭게도 커피숍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다.

“부산 국제시장 근처에 ‘오아시스’라는 커피숍이 있었어요. 당시 돈으로 80원만 내면 하루 종일 있어도 뭐라 하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 커피숍이 문을 닫던 날 마지막 손님이 나였죠. 그날 다짐했죠. 그런 다방을 만들겠다고요.”

20대 젊었던 시절 도서관이며 음악실이었던 공간의 따뜻함을 잊을 수가 없다고. 현재 부산 기장군에 신축 중인 6층짜리 가마골 소극장의 건물 1층은 포장마차로, 2층은 카페 오아시스로 꾸밀 생각이라고 한다. 위층은 극장과 극단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커피는 바리스타 자격증 있는 단원이 하면 될 것 같고, 나는 음악을 틀어주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웃음).”

시간은 그에게 남다른 여유와 또 다른 시도를 주고있다. 휘몰아치던 폭풍을 맞은 뒤 푸르고 따뜻한 숨으로 정화해 버렸다고나 할까? 기 세던 그에게서 잔잔한 흐름이 느껴졌다. 현재 그는 올해 하반기 부산 기장 가마골소극장과 서울에 삼공스튜디오 개관을 앞두고 있다. 그의 또 다른 도전과 방랑은 계속될 것이다. 살아 있는 동안은 날마다 축제라 그가 말했듯.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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