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왔는데도 머뭇거리고 있는 건
나에게 필요한 것만 하고 살아갈 수도 있는 시간이 온 것 같아서, 때가 왔는데도 머뭇거리고 있는 건 답답한 꼴 보여주는 게 되니까, 그리고 시간이 천천히 흐르며 발이 젖지 않을 만큼 위험이 얕게 깔리는 듯해서, 앞으로는 조금 다르게 살아보자고 맘먹게 되었다. 그리고 평생 없던 규칙을 만들었는데 어떤 거냐면 복잡한 건 좀 간단히 해보고, 어려운 건 좀 쉬운 방법으로 대체하고, 못할 거 같으면 하지 말고, 가기 싫으면 가지 말고, 안될 거 같으면 거절해 보자는 나란 사람의 동작 매뉴얼을 만든 것이다. 이런 발상은 주제파악을 잘 못하는 나에게서 나오기 힘든 것이었고 실행하긴 더 어색한 방식이어서 어려울 듯했지만 어느 날 내가 충분히 늙어가고 있다는 몇 가지 신호를 받게 되면서 용기가 생겼다. 타고난 자질이 늘 부족해서 뒤 따라가느라 바빴던 젊은 시절을 통과한 나에게 해주고 싶은 게 생겼다. 나의 어깨를 살짝 두드리며 너 이리 잠시 와보라고 이리 와서 한번 보라고 말해주는 베테랑가이드가 되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철이 들려나 보다. 당장에 실속을 차릴 순 없겠지만 마음은 벌써 백순을 넘은 철학자의 지혜와 명철을 담아낼 듯 평안해지고 있다. 쉽게 살아보기 하기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