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밭과 꽃길 사이에서, 카메론 하이랜드 여행

by Aunty Bo

몽키아라의 다른 학교로 옮긴 첫째 아이와 가장 친했던 친구의 엄마에게서 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다. 방학 동안 아이들과 함께 카메론 하이랜드로 여행을 가자는 제안이었다. 아이도 반가워했고, 나도 설렘이 일었다. 곧장 일정을 맞추고, 그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은 그 친구의 차로 함께 떠나는 여정. 목적지는 Cameron Highlands Resort였다.


카메론 하이랜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차밭과 옥수수였다. 락다운 시절, 사이버자야까지 야채를 배달해 주시던 분이 있었다. 그때 처음 알게 된 카메론 산 옥수수. 말레이시아 야채 치고는 가격이 꽤 나가는 편이었지만, 한입 베어 물면 아삭한 식감과 은은한 단맛이 느껴져 자주 주문해 먹곤 했었다.


카메론 하이랜드로 향하는 길이 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고속도로로 대부분 연결되어 있었고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약간 구불구불하긴 했지만, 위험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숙소에 들어가기 전, 먼저 들른 곳은 Cameron Flora Park.

플로라 파크 입구에서 트럭으로 약 5분, 작은 시골 마을을 지나듯 안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트럭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정겹고 소박했다.


파크 앞에서 티켓을 사고 들어서자마자,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사방이 꽃이었다.
그야말로, 꽃으로 뒤덮인 언덕.

아이들은 포토 스폿을 찾아다니며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언덕을 오르려니 숨이 조금 찼지만, 꽃으로 가득한 풍경을 마주하니 마음이 활짝 피어났다. 걷는 걸음마다 꽃향기와 함께 마음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KakaoTalk_20250514_173930972_01.jpg
KakaoTalk_20250514_173930972.jpg

플로라 파크 바로 근처에 있는 양 보호소(Sheep Sanctuary)에도 들렀다. 양과 알파카에게 직접 먹이를 줄 수 있는 곳이라는 말에 기대하며 들어섰지만...

우리가 잔디밭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양들이 돌진해 왔다. 순간 너무 놀라 둘째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나는 손에 들고 있던 먹이를 멀리 던졌다. 그제야 양들이 먹이를 향해 방향을 바꿨고, 우리는 그 사이에 황급히 빠져나왔다. 양은 온순할 거라는 생각은 철저히 오판이었다. 그 먹이에 대한 집념과 돌진은 꽤나 저돌적이고 공격적이었다.


KakaoTalk_20250514_173713160_03.jpg


리조트에 도착해 짐을 풀고, 로비에서 애프터눈 티를 마셨다.
고요한 로비 한편에서는 한 할아버지께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계셨다.

하얀 머리에 굽은 어깨, 그 모습 그대로 피아노 앞에 앉아 계신 모습이 참 근사했다.
아까의 놀란 마음도 어느새 가라앉았다.
차 한 잔, 음악 한 곡.
그것만으로도 여행의 피로가 사르르 풀렸다.


말레이시아의 무더위에 익숙해져서일까. 카메론 하이랜드는 생각보다 훨씬 쌀쌀했다. 오랜만에 꺼내 입는 긴팔 옷에 몸을 바짝 말고 저녁을 먹으러 나섰다.

따끈한 핫팟, 신선한 야채와 고기, 국물이 하루의 고단함을 모두 씻어주는 기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이번엔 친구가 미리 알아봐 둔 Bharat Tea Plantation으로 향했다. 나는 BOH TEA만 알고 있었는데, 이곳도 많은 이들이 찾는 인기 있는 차밭이었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니 온통 초록이었다.
차밭이 만들어내는 곡선과 선들이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이곳에서는 ATV도 탈 수 있었지만, 둘째가 아직 어려 차밭 사이를 천천히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전원의 풍경 속에서 잠시 시간을 잊고 있었다.

KakaoTalk_20250514_173713160.jpg
KakaoTalk_20250514_173713160_01.jpg
KakaoTalk_20250514_173713160_02.jpg

여행의 끝자락. 리조트를 나서며 우리는 아쉬움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곧 카메론 하이랜드의 길이 왜 '험하다'고들 말했는지 몸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웨이즈(Waze)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길로 안내했다. 산을 가파르게 가로지르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도로. 알고 보니 구도로가 기본 경로로 설정되어 있었던 것.

우리는 그 사실을 미처 모른 채 그대로 따라가고 있었다. 되돌아가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이미 한참을 올라온 뒤였다. 차는 계속해서 산길을 따라 움직였고, 어느 순간부터는 휴대폰 신호가 뚝 끊겼다. 함께 듣고 있던 음악도 멈춰버렸다.

정적이 짙게 내려앉은 차 안. 창밖은 깊은 산, 길은 좁고, 차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친구가 조용히 말했다.
“여기선 무슨 일이 생겨도… 아무도 모르겠다.”
말끝이 흐려졌지만, 그 말이 괜히 웃음으로 흘러가지 못했다.
우리도 모르게 마음이 살짝 긴장했다.


친구는 속도를 조금 높이려 했지만, 계속되는 급커브에 곧 포기했다. 그 대신, 마음을 바꿨다.
“그냥 천천히 가자. 산 풍경이나 즐기자.”

그제야 창밖이 눈에 들어왔다. 굽이굽이 이어진 길 위로 짙은 초록의 나무들이 이어지고, 그 사이로 바람이 스치듯 지나갔다. 중간중간 과일 판매대의 흔적도 보였다. 신도로가 생기면서 이 도로가 쇠퇴한 것으로 보였다.


신호도 끊기고, 음악도 없는 그 고요한 산속의 시간.

오히려 그래서 그 순간이 더 깊이 기억에 남았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그렇게, 조심스럽게, 천천히 카메론 하이랜드를 내려왔다.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떠난 여행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차 한 잔의 여유,
꽃 속을 걷는 시간,
깜짝 놀랐던 양들과의 조우,
예상 못한 추위 속에서의 따끈한 핫팟,
그리고 초록빛 차밭과 깊은 산속의 고요했던 시간

카메론 하이랜드는 그 풍경과 함께 오래 기억될 것 같았다.

매거진의 이전글도움과 존중 사이, 내가 배운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