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지망생들의 첫걸음은 소위 아나운서 아카데미라는 스피치학원을 찾아가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대학교 3학년. 꿈은 있지만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해야 할지 몰랐었다. 주변에 나와 같은 꿈을 꾸는 친구나 선후배도 없었다.
무턱대고 신촌의 모 학원에 갔다. 시험기간이었던 것 같다. 정말 학생스러운 모습이었을 것이다. 스스로 보기에 평소보다 조금 별로다 싶은 그런 날이었다.
실장님이라는 분이 상담실로 안내하는데 대뜸 “뭐 준비하게요? 피..디? 기…자?
그 물음 뒤에는 ‘아나운서 준비할 외모는 아닌데..’라는 의미처럼 다가왔다.
상담 시작하고서는 커리큘럼 설명과 함께 학원비 등등을 알려준다. 커리큘럼이나 일정은 홈페이지에서 봤던 것과 비슷했다.
학원을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내가 달라졌던 게 있다면 바로 희망을 안고 가서 자신감을 두고 나왔다는 것이다.
방송인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하며 기대에 부풀어 학원을 방문했지만 선입견 가득한 실장님의 말 한마디에 위축됐었다.
며칠이 지나 다른 학원에 방문했다. 물론 조금 신경 쓰고 갔다. 이전 학원과 다를 것은 없었지만 두 번째 학원을 택했다.
보통 아카데미들은 10명 이하의 소수 정예로 3개월 과정으로 진행된다. 다시 생각해봐도 내 경우는 조금 유별났다. 함께 수업을 듣는 수강생들을 보면 간간히 방송에 나온 연예인 같은 일반인, 대학내일 표지를 한 번쯤은 장식한 당시 말로 '퀸카', 수업 내용을 일본어로 받아 적는 어학 능력자 등등.
어떤 수업이든 뒤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당시 막내였던 내게 함께 수업 듣던 언니들은 "너도 2~3년쯤 지나면 우리보다 훨씬 나을 거야"라고 말해줬지만 자신감은 점차 바닥을 쳤다. 당시 어리고 약했던 내게도 문제가 있었겠지만 학원의 폐해도 함께 깨달았다. 학원의 실적은 합격자 배출이다. 따라서 될 것 같은 소수 정예에게 방송사 추천을 몰아주거나 실기 연습을 더 봐준다거나 하는 차별이 따른다. 여기서 핵심은 그런 학원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수강료를 낸 만큼 얻어가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자꾸 질문하고, 추천 기회도 적극적으로 따내야 한다. 학원은 능동적으로 활용하지 않으면 돈을 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학원들은 대체로 비슷하다.
뉴스 리딩과 이미지 메이킹 수업이 큰 줄기다. 추가로 MC(시사교양, 예능, 라디오), 메이크업 수업 등이 추가된다. 뉴스 수업에서는 발성, 발음, 억양 등을 알려준다. 이 수업은 실질적으로 도움이 된다. 특유의 뉴스 리딩이 있다. 마냥 책 읽듯 하는 것은 아니다. 실무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라디오 듣고, TV 뉴스 보며 따라 하더라도 초반에는 길잡이가 필요하다. 마냥 따라 하다 보면 잘못된 습관이 생기기 쉽다.
시장은 거의 포화 상태다. 10년 전만 해도 서너 개의 업체들이 주를 이뤘지만 기존 학원들이 강사를 착취하는 듯한 영업 행태와 낮은 진입 장면으로 인해 학원들은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문제는 한 달 혹은 일 년 정도 일을 한 분들이 강사로 나선다. 리포터의 경우에는 두어 번 나오고도 '케이사 리포터. 엠사 리포터라는 한 줄을 경력 사항에 달아놓는다. 거짓은 아니니까. 가끔 면접장에서 강사와 학생이 마주하는 진풍경도 벌어진다. '아카데미만 다니면 되겠지.. 저 강사님께 배우면 합격할 거야..'이런 막연한 기대만 버린다면 아카데미를 십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