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날카롭게 물었다. 내가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 있는 모습을 그 찰나에 봤나 보다. 도파민거리를 발견해 눈을 빛내는 모습이 맹수가 따로 없었다.
“좋아하냐고? 아니. 사랑하는 거 같애.”
내가 사랑 운운하며 발동을 걸자 친구는 흥분해서 스마트폰을 보겠다며 몸을 기울였다. 제대로 걸려들었다. 친구는 화면 가득히 담긴 고양이 얼굴을 마주하고는 내게 야유를 보냈다. 바보, 주어를 확인했어야지.
까망이 설명을 얼마만큼 적어야 주책이지 않을까. 내가 화요일마다 가는 풋살장의 아기 길고양이다, 총 두 마리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까망이가 마음에 쏙 들어왔다, 정도는 괜찮겠지.
갈색이와 까망이는 사람을 반기며 겁 없이 달려와서는 머리를 부비는 녀석들이었다. 사람 손바닥에 네 발을 모두 올려두고도 위험한 줄을 몰랐다. 세상의 가혹함을 맛보지 않은 순수함의 결정체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둘 중 더 약한 쪽은 까망이었다. 먹이나 장난감이 나타나면 까망이는 갈색이에게 목덜미가 물린 채 바닥에 뒹굴기 일쑤였다. 그래도 까망이는 이빨을 보이며 괴로워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 소시지를 먹겠다는 일념으로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 천진한 열정이 좋았다.
까망이의 귀여운 점을 말하자면 끝이 없으니 하나만 하겠다. 우리는 축구화 끈으로 함께 놀곤 했다. 까망이는 끈을 볼 때마다 몸을 잔뜩 낮추고는 사냥을 준비했다. 등가죽까지 솟아오른 다리 근육으로 조심스레 끈을 향해 접근하는 모습이 제법 그럴듯했다. 그러다가도 축구화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면 박수치듯 손을 모으며 폴짝폴짝 뛰어댔는데 그럴 때면 백치미가 낭랑했다... 이쯤 하도록 하자.
그래, 이건 사랑이었다. 어느 순간 풋살보다는 까망이랑 놀기를 더 기대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내 사랑 풋살이 정실에서 첩으로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나는 종종 까망이와 노느라 쉬는 시간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해 주장언니에게 혼이 났다.
풋살장 주인아저씨는 그렇게 예뻐하니 까망이를 집에 데려가도 좋다고 하셨다. 빈말이기도 하고(정말 그러겠다고 할까 봐 내심 불안해하셨다) 한 생명을 온전히 책임질 자신이 없어 거절했다. 그랬으면서 가끔 집에 있다 보면 거실 소파에 올라가 있는 까망이를 절로 그려졌다.
11월 19일
하루는 까망이와 더 오래 놀고 싶은 마음에 평소보다 일찍 풋살장에 갔다. 까망이는 앞 팀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기 바쁜 모습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이니 누구든 반기겠지. 하지만 막상 남의 품에서 재롱을 부리며 내가 오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는 까망이를 보니 배신감이 들었다.
앞 타임 사람들이 가자 까망이가 그제야 내게 다가왔다. 까망이를 꼭 끌어안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빼앗겼던 시간만큼 보상받고 싶었다. 풋살장에 내려놓자마자 까망이는 밖으로 나갔다! 언제 공에 맞을지 모르는 곳이라 까망이는 풋살장을 좋아하지 않았다. 알고는 있었지만... 좀처럼 나를 따라주지 않는 까망이가 그날따라 못마땅했다.
내 안의 욕심을 적나라하게 마주했다. 까망이가 모두에게 방어적으로 굴고 나만 따르길 바랐다. 쓰다듬어 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보채면 곤란하지만 내가 보고 싶어서 불렀을 땐 한걸음에 달려오는 고양이였으면 했다. 그렇게 되면 까망이는 까망이가 아니라 그냥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고양이1 정도가 되는데도 말이다.
문득 사랑하고 곁에 두고 싶다며 새를 새장에 가두고, 더러는 윙컷까지 해버리는 사람과 나는 무엇이 다른가 생각해 봤다. 본인의 입맛대로 강아지의 꼬리나 귀를 자르는 견주와 어떤 차이가 있는가. 나의 방식대로 상대를 다듬다 못해 굽고 튀겨서 원래 모습을 찾기 힘들게 만드는 행위는 평소 내가 비웃는 일이었으나 사실 내 욕망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착이 사랑이 아니라면, 나는 한 번도 너를 사랑한 적이 없다.
대도시의 사랑법에 나오는 대사다. 집착은 사랑일까. 우리는 어떤 온도와 모양까지를 사랑이라 정의해야 할까.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 헤어진 수많은 연인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사랑하면 욕망이 생긴다. 그리고 욕망에서는 이기적인 냄새가 난다.
까망이는 앞으로도 사람이라면 누구든 반길 것이다. 아무리 불러도 풋살장 안까지는 들어오지 않을 것이고 딱히 재롱을 부리지도 않을 것이다. 그런 너를 온전히 받아들이고 싶다.
너를 너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싶다.
11월 28일
결국 진정한 사랑을 실천하지 못했다. 까망이가 죽었다. 갈색이도 함께 생을 마감했다. 길에서 쥐약을 먹고 죽었다고 한다. 태어난 지 세 달도 되지 않은 아기들이었는데. 너무도 가혹하고 갑작스러운 이별이었다.
아저씨가 데려가라고 할 때 데려갈걸. 차라리 집에서 혼자 외로운 게 나았을 텐데. 이번주 화요일 훈련에 빠지지 말걸. 한 번이라도 더 얼굴을 보고 머리를 맞댈 수 있었을 텐데. 후회만큼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도 나이를 헛먹지는 않았나 보다. 이미 벌어진 비극은 해결할 도리가 없음을 알았다. 내가 슬픔을 이겨낼 정도로 강한 사람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에 슬픔을 푹 담가 놓는 것만이 유일한 미봉책임을 알았다. 감당이 되지 않아 힘겨워하면서도, 모든 감정이 희석될 때까지 버틸 수밖에 없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