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맡았던 업무와 관련한 보도자료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홍보팀도 아닌데 내가 왜 이런 형식적인 글을 써야 한단 말인가. 몹시도 못마땅했으나 참을 수 있었다. 어차피 내가 아니라 챗GPT가 쓸 거니까. 다른 팀이 썼던 지난달 보도자료를 예시문으로 첨부한 뒤 몇 가지 정보를 주고 이런 식으로 글을 작성해 달라고 하자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다. 기분이 묘했다. 모든 문장을 내 손으로 정직하게 쓰겠다던 직업 정신은 어디로 갔는가. 하지만 AI가 만들어준 결과물은 훌륭했다. 내가 열심히 고민하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면 30분은 걸렸을 일을 1분도 안 되어 끝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내 능력치가 하락한다는 느낌을 종종 받는다. ‘네이버 지도’가 생기자 나의 길 찾기 능력은 현저하게 퇴화했다. 어린 시절에는 가족구성원들의 전화번호를 줄줄줄 외웠는데 이제는 그때 어떻게 그랬나 싶다. 더더욱 똑소리 나는 AI의 등장으로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챗GPT가 해주는 오류 없는 영작에 길들여지니 외국인과 소통을 함에도 영어 실력은 자연히 줄어들고, 모르는 것이 생기면 스스로 고민하기보다 바로 AI에게 묻게 된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가.
문득 박완서의 『그 남자네 집』에 나오는 한 구절이 떠올랐다.
“졸업식에서 펑펑 우는 학생이 있다고 해서 그 학생이 영원히 교실에 남고 싶은 것은 아니다.” 서글프지만 시대의 흐름을 외면한 채 예전 방식만을 고수하는 건 어쩌면 교복을 억지로 껴입은 30대처럼 기괴하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구글맵이 있는데도 길을 헤매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글쓰기에도 똑같은 이론을 적용해 볼까 한다. 나는 나 스스로가 일정한 루틴과 장비가 갖춰져야만 글을 쓸 수 있는 인간이라고 믿어왔다. 글쓰기가 취미라고 말하면서도 정해진 시각, 나의 노트북, 내 책상, 이 삼박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않으면 글을 쓰지 못했다. 그동안은 예술가 특유의 괴팍한 장인정신으로 치부해 왔으나 요즘 들어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2025년에 펜으로 원고지에 한 글자 한 글자를 적는 작가를 볼 때 내가 느끼는 의아함이 사실 나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건 아닐까.
음성 인식 기능 덕분에 스마트폰에 말을 내뱉기만 해도 문장이 생긴다. 구글 스프레드시트를 통해 기기 간 연동도 자연스럽다. 그렇다면 나 역시 그 흐름에 맞춰 변화해야 할 때인지도 모른다.
처음엔 불편하고 불만사항도 많이 생기겠으나,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이 글이 바로 그 결과물이다. 흐르듯 말을 뱉어 음성인식 프로그램이 받아 적게 한 후에, 챗GPT에게 오타 수정을 시키고, Claude의 손길로 다듬었다. 기분이 묘하다. 오롯이 독서와 자신의 사유만으로 혼자와의 싸움을 거쳐 정제된 글을 탄생시키는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라 믿었건만… 아직은 변화를 받아들이려 노력 중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내 글쓰기도 함께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