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여행은

모험, 여행, 일상, 사이의 어딘가

by 유장래

내 첫 여행은 어느 일요일 오후, 교회 앞마당에서 시작된다. 대여섯 살 즈음의 미취학 아동이던 나는 교회 일로 바쁜 부모님을 기다리며 몹시도 지루해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비슷한 처지의 교회 친구들이나 남동생과 함께 놀았을 텐데 웬일인지 그날은 나 혼자였다.



주차장에 그려진 흰 선만 밟으며 뛰어다니는 것도, 교회 돌벽을 기어오르는 것도 혼자 하려니 아무 재미가 없었다. 지루함에 진절머리가 난 나머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하게 된다. 교회 쪽문으로 나간 것이다.



교회 쪽문은 정문이나 후문과는 달리 어른들의 출입구였다. 그곳을 감히 홀로 들락거리는 어린이는 단언컨대 한 명도 없었다. 중등부 정도는 되어야 다닐 법한 그런 공간을 내가 간다니! 설렘과 두려움으로 범벅되어 마구 뛰는 가슴을 끌어안고는 검은색 쇠막대가 꽈배기처럼 꼬여 있는 장식의 쪽문을 끼이익, 열었다. 그렇게 첫 여행이 시작되었다.








이 미지의 공간은 부모님과 갔던 스케이트장이며 동물원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실 볼 것도 즐길 거리도 딱히 없었지만 생소한 글씨체의 간판이 즐비한 이 골목이야말로 내 오감을 한없이 열어주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나는 나를 지켜줄 어른이 없다는 사실에 전율하며 열심히 걸었다.



그리고 곧 길을 잃었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길치였고, 어른들이 혼자 다니지 말라고 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왔던 길이 떠오르지 않아 감에 의존하며 똑같이 생긴 전봇대와 회색 콘크리트 벽만 가득한 길을 걸었다. 앞서 말했듯 나는 뿌리 깊은 길치 경력을 가졌다. 길치는 방향감각이 없어서 길치다. 조상 중에 바이킹이나 유목민 출신이 한 분도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웬 대로에 나와 있었다.



아까까지는 아기자기한 사람 사는 골목이었는데 이제는 차가 쌩쌩 달리는 무정한 서울 거리가 펼쳐졌다. 급작스럽게 바뀐 풍경에 당황스러웠고, 부모님이 날 찾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슬슬 초조해졌다. 지나가는 어른들을 붙잡고 길을 물었다. 왕십리교회가 어디 있나요? 어른들은 공손한 어린이에게 친절했다. 그들은 성심성의껏 세탁소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꺾어라, 책방 사이에 있는 샛길로 들어가면 지름길이다,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들의 말을 성실히 따랐으나 다정한 조언이 쌓이면 쌓일수록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다 함께 짜고 나를 골리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느낌이었다. 여섯 번째 아주머니를 만났을 때,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얘, 어디 왕십리교회 말하는 거니?”


알고 보니 근방에는 총 세 개의 왕십리교회가 있었다. 여기에 왕십리 성당과 왕십리 중앙교회까지 합치면 5개의 왕십리교회가 존재했고, 어른들은 저마다 본인들이 아는 왕십리교회를 가르쳐주었던 것이다. (신기한 것은, 이 동네의 이름은 왕십리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무사히 교회에 도착했다. 극적인 일이 있지는 않았고 열심히 걷다 보니 문득 눈에 익은 풍경이 나와서 돌아갈 수 있었다. 돌아왔을 때 예배가 끝나지 않았었던 것을 감안하면 1시간도 안 되는 짧은 여행이었다. 엄마 아빠는 내가 나갔다 왔는지도 몰랐으며 그건 지금도 그렇다. 그날 이후로 큰 깨달음을 얻은 나는 다시는 쪽문 너머로 나가지 않았으며 그곳을 동경하지도 않았다. 다만 재개발지구 특유의 폐허 분위기와 갈색 벽돌집들, 콩닥이던 심장 박동은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았다.







이후로 많은 여행들이 있었다. 자식 얘기, 여행 얘기, 좋아하는 연예인 얘기는 말하는 당사자만 재미있으므로 어디 가서 하는 게 아니라는 말이 있다. 이 격언에 통감하는 바이므로 굳이 주저리주저리 적지 않겠다.


이제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다(우주여행처럼 4억 이상 들지만 않는다면 그렇다). 돈과 위트, 그리고 깡만 있다면 웬만한 것을 다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여행력이 쌓인 지금의 나는 안다.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멋진 자연경관이나 색다른 경험들, 호기심을 자아내는 먹거리들에 휩싸일 때마다 정신을 못 차리곤 한다. 하지만 좋은 경치를 보며 내가 이거 즐기려고 돈을 벌었구나,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올 때쯤 애써 정신을 차린다. 찰나의 환희에 중독된 사람은 온난한 하루가 주는 잔잔한 따스함에 무뎌지기 쉬워서다. 특정 순간만 행복하고 일상이 따분하게 여겨진다면 그건 너무도 슬픈 삶이 아닌가.




되풀이되는 듯한 비슷한 하루들을 보내며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 물음표가 뜰 때, 나는 교회 쪽문과 좁은 골목길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이발소 같은 것들을 떠올린다. 평범한 하루도 약간의 도전과 변주를 통해 충분히 색다른 여행으로 재탄생할 수 있음을 그날의 나는 분명 배웠다.



나는 이따금씩 마트에서 연어나 특이한 향신료를 사 와 이색요리를 시도한다. 기억이 가물가물한 낯선 길을 선택해 괜히 더듬더듬 운전해 본다. 내 요리는 보통 맛이 없고 10분이면 갔을 길을 두 배로 걸려 도착하지만(길치 유전자는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도 재미있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일상이겠으나 내 삶은 자잘하게 싱그럽다.



여행이 뭐 별 건가. 내 의지로 떠나 두려움이나 관성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느낀 모든 순간이 여행이지 않을까. 네이버에 ‘여행’을 검색하면 다른 풀이가 나오겠으나 나는 스스로의 사전에 여행을 그렇게 정의 내렸다. 그러니까 삶을 여행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는 내 말은 단순히 세계 일주를 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내 인생이 여행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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