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 알고 있었어?

by 유장래

나는 보기보다 건전한 사람이다. 어렸을 때 한 번쯤은 해본다는 도둑질을 맹세코, 정말로 한 번도 한 적 없다. 중학생 때까지 남자애들을 좀 때리긴 했으나 당시는 조폭마누라의 시대였고, 학교폭력의 영역이라기보다 사춘기 이성들간의 장난스러운 호르몬 교류로 치부되는 행동이었다.



중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담을 넘어 아이스크림을 사먹고 돌아오다 걸려서 교문부터 교실까지 오리 걸음형을 받고, 한자 숙제를 해오지 않아 손바닥을 몇 대 맞고… 법 없이도 살 정도의 도덕성까지는 아닌 거 안다. 그래도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존재한다면 그 사회는 적당히 살만한 공동체이지 않을까.




변명이 길었다.

내가 저지른, 나만 아는 죄를 고백하려니 면죄부를 얻고 싶었나 보다. 사실 아직도 용기가 안 난다. 그러니까 내 이야기를 하기 전에 동생이 저지른 일을 먼저 적어보겠다. 다소 치사하지만.









병아리 장수가 학교 앞에서 장사를 하던 시절이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종이 상자 가득 연노랑 병아리들이 담겨 있었다. 이 작은 생명체들은 초등학생들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나 역시도 다르지 않았다. 엄마를 졸라 병아리 6마리를 집에 들여왔다.



얇고 높은 삐약소리는 귀엽기 그지없었고, 머리를 로봇처럼 홱홱 돌리는 모습이 몹시도 깜찍했다. 복실복실한 솜털을 쓰다듬고 있자면 온몸에서 행복이 흘러넘치다 못해 터지는 기분이었다. 기쁜 마음으로 똑같이 생긴 병아리 여섯 마리에게 이름을 붙여줬다(물론 제대로 구별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코난도 아닌데 비극은 그 다음날 아침부터 시작됐다. 병아리 한 마리가 죽었다. 이유도 원인도 알 수 없었다. 공장에서 온 병아리들이 약한 구석이 있다던데 그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의문의 살조 사건이 시작됐다. 간식 시간 이후에, 낮잠을 마치고 나면 한두 마리가 죽어있는 식이었다. 방심만 하면 꼭 사건이 벌어졌다. 어느덧 마지막 병아리만이 생존해 있었고, 우리 가족은 이미 포기한 상태로 녀석의 장례를 치를 마음의 준비를 했다.



삶은 가끔 보면 예상치 못한 데로 흘러가는 경향이 있다. 기일만을 받아놨다고 생각했던 뽀찌(병아리 이름)에게도 기적이 벌어졌다. 엄마가 병아리 사건의 전말을 밝혀낸 것이다. 범인은 놀랍게도 만 3세의 남동생이었다. 악력 조절이 미숙하던 차 모군(3)이 아무도 없을 때 병아리에 손을 댔다가 그만 이들을 압사시키고 만 것이다.



지금에 와서야 동생을 이해한다. 착한 마음씨의 문제를 떠나 손 조작능력이 충분히 미숙할 나이다. 하지만 만 6살이던 내가 듣기에는 도무지 납득이 안 되 내용이었다. 어떻게 자기 즐겁자고 병아리들을 손에 쥐어서 죽이지? 사이코패스 아닌가?










앞서 말했듯, 한치 앞도 모르는게 인생이다. 동생에게 사이코패스 운운하던 내게도 사건이 찾아왔다. 이야기의 배경은 흐릿하게만 기억에 남아있어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 모든 모계 가족들이 모이는 커다란 가족행사였으며, 어린이들(나와 사촌동생들)에게 선물이 준비되어있었다는 점만 기억난다.



애초에 선물은 비밀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TV도 보지 않고 입만 헤 벌린 채 안방에 놓인 빨간 지붕 어항들을 쳐다보았다. 어른 손바닥을 2개 정도 합친 크기의 직육면체 어항에는 이름 모를 꼬리 빨간 물고기들이 어항마다 한 마리씩 헤엄치고 있었다. 유선형의 통통한 몸이 몹시도 깜찍한 그 물고기들은 곧 우리에게 한 마리씩 선물될 예정이었다.



엄마와 이모들은 물고기를 만지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어른들의 철벽방어에 흥미를 잃은 사촌동생들은 다른 놀거리를 찾아 떠났다. 가장 나이가 많았던 나는 나잇값을 한 바람에(?) 예외였다. 저 팔딱이는 물고기를 손가락으로 쓰다듬고 싶다는 열망이 나를 강하게 붙들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적합한 타이밍을 얻었다.



방에 나와 물고기들만이 함께하는 순간이 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어항에 손을 넣었다. 물이 주는 차가움이 손가락에 기분 좋게 전해졌다. 물고기는 당황한듯 잽싸게 방향을 바꿔대며 나를 피하려고 했다. 어림도 없었다. 그동안 내가 잡아온 곤충만 해도 수백 마리인걸. 여름방학마다 길러온 곤충 채집 능력을 십분 살려 녀석을 쓰다듬었다. 단단한 머리부터 꼬리까지 두 번 쓰윽, 쓰윽.


그게 다였다. 오랜 시간 틈을 노렸던 것 치고는 별 것 없었지만 목표를 달성한 뒤라 미련은 없었다. 여기 있는 일곱 마리의 물고기 중 한 마리가 내 반려동물이 되어 함께 하게 되겠지. 설레는 마음으로 그렇게 방에서 몰래 나왔다.




눈치 챘겠지만 결국 끝이 나빴다. 저녁을 먹고 어항을 가지러 갔던 이모들은 심각한 얼굴로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물고기 한 마리가 배를 뒤집고 죽었다는 것이다.


“이상하다, 분명히 손으로 만지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둘째 이모가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손으로 만지지만 않으면. 가슴이 쿵 내려앉는 순간이었다. 나 때문에 죽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생명력 넘치던 동물이 나 때문에 죽었다. 하지만 진짜 딱 두 번이었는데. 그렇게 세게 만지지도 않았는데. 머릿속이 하얘져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에게도 심문 타이밍이 돌아왔다.


“혹시 너, 어항에 손 넣고 물고기 만진 적 있니?”


얘는 아닐 거야. 망설이는 사이 대답은 엄마에게서 나왔다. 사촌 동생들과 달리 머리도 굵었고 애가 강직한 성품이라 안 된다고 한 건 확실하게 안 한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어떻게 진실을 말할 수 있었을까.



차마 소리 내어 대답은 못하고 고개를 저었다. 볼 근육부터가 잔뜩 굳어있어 누가 봐도 수상했을 터였다. 갑자기 심문을 당해 당황한 모습 정도로 비치길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물고기 급사 사건은 예상 밖의 불운 정도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아니었다. 성인이 된 나는 이 감정을 뭐라고 정의해야 하는지 정확히 안다. 자책감.




내 손으로 멀쩡한 생명을 끝장냈다. 그러고도 가증스럽게 아닌 척 했다. 내가 한 이 거짓말이 너무도 큰 일이었기에 지금까지 혼자 간직했다. 나만 아는 이야기를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던 찜찜한 과거의 기억. 이제는 이 죄책감을 끝내고 싶어 고해성사하는 기분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적다보니 아무래도 나만 아는 일은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딸내미를 철썩같이 믿었던 엄마는 넘어간다 치더라도 이모들은 표정에서부터 이미 눈치채지 않았을까.


이모,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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