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노래하기를
⸱⸱⸱ (생략) ⸱⸱⸱ 참 재미있었다. 다음에 또 읽고 싶다.」
가르치던 초등 저학년 아이들의 독서감상문은 대게 이런 식으로 끝났다. 줄거리를 죄 나열해 놓고는 즐거웠다고, 다음에 또 읽고 싶다고들 적었다. 교사 입장에서 정형화된 이런 식의 감상문은 그닥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어쩌겠는가. 과제를 내지 않은 학생들을 지도하기만 해도 바빴다. 그러던 어느 날 문제의 그 문장을 우연히 곱씹어 보는 기회가 있었다. 성의 없는 글이라 못마땅하게만 여겼었는데 뜻을 생각해 보니 근사했다. 너무 재미있어서 다시 보고 싶을 정도의 책이라니! 그런 운명 같은 책을 만나다니 참 부러웠다.
나는 읽었던 책을 다시 집어 들지 않는다. 주인공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 알고 있는데 위기 상황이 적힌 페이지를 다시 펼친다고 해서 당시의 호기심과 긴장이 재현되지는 않는다.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과 옆의 장발 남자만이 끝내 살아남는다는 사실을, 범인이 튀어나와 관객을 놀라게 하는 시점을 훤히 꿰고 있는데 화면을 반복해 들여다봐야 무엇하랴. 아무리 감동적이었던 영화라도 이를 반복한다고 해서 그때의 여운을 느낄 수는 없었다. ‘참 재미있었다, 다음에 또 읽어야겠다’가 없었기에 나는 새로운 자극을 찾아 도서관과 넷플릭스를 떠돌곤 했다.
물론 반복이 좋아하는 영역도 있다. 음악이 그렇다. 장기하가 ‘그때 그 노래’에서 쓴 가사를 빌려본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심했지
이게 그 때 그 노래라도 그렇지
달랑 한 곡 들었을 뿐인데도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
한꺼번에 생각나다니
음악은 소환주문과도 같다. 멜로디 한 소절에 추억의 그 시절로 불쑥 끌려가는 경험은 나 혼자만 겪은 게 아닐 것이다. 예를 들어, 2PM의 Heartbeat 초입에 나오는 심장 박동 효과음을 들으면 열여덟의 날들이 떠오른다. 단순히 학교 축제날 하루를 의미하는 게 아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중앙현관에 모여서 춤 연습을 하다가 그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수다로 보내던 날들이라던가, 축제가 끝나고 촬영 영상을 돌려보며 뒷얘기를 한참 하던 모든 나날들이 한꺼번에 다가온다. 과연 ‘그 많고 많았던 밤들’이다. 이제 하트비트는 노래방 시간이 끝나갈 때쯤 친구들과 부르는 노래가 되었다. 기억이 이끄는 대로 춤을 추며 그 위에 새로운 추억을 한 겹추가한다. 이제 노인이 된 어느 날이면 직장인이 되고서도 철 모르고 노래하던 지난날이 떠오르겠지.
음식 역시 몇십 번을 반복하더라도 질리지 않는 것 중 하나다. 내 인생 첫 컵라면은 농심 육개장이었다. 스케이트장에서 한참 놀고 나서 엄마가 사준 사실상 첫 인스턴트 음식이었다. 맛있어서 눈이 휘둥그레 떠졌던 다섯 살의 충격이 지금까지 꽤나 생생하다. 그 때문인지 아직도 사발면 중에서는 육개장이 제일 좋다.
수도 없이 먹었던 음식 하면 꽈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 집은 매주 화요일마다 열리는 남의 아파트 장에서 꽈배기를 사 먹었다. 심봉사도 눈뜨게 하는 꽈배기(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가게 이름이 그렇다)는 찹쌀이 쫀득하고 겉은 바삭한 게 일품이었다. 살면서 그보다 맛있는 꽈배기는 먹어본 적이 없다. 아마 평생 그럴 것이다. 의사소통 부족으로 하굣길에 내가 한 세트, 장 보던 엄마가 한 세트 사는 식으로 꽈배기가 식탁에 열몇 개씩 쌓이는 일은 오로지 심봉사 꽈배기에서만 있었으니까.
음, 쓰다 보니 난 반복 그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냥 줄거리가 있는 예술을 거듭 감상하기 싫어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이래서 글쓰기는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된다)
최근 나의 여행지는 오만이었다. 인공지능 영상이 아닌지 의심될 정도로 빛나던 바다, 청량하던 오아시스, 놀이공원 테마파크 같던 아기자기한 흙건물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신선한 경험은 너무도 즐거웠다. 하지만 끝내 한없이 갈망하던 건 따로 있었다.
도착해 짐을 풀자마자 국밥집으로 향했다. 순대국밥, 아름다운 그 이름. 임용고시를 공부할 때, 혼자 밥 먹을 일이 있을 때 나는 국밥과 함께했었다. 기름기 있는 고깃국물이 입을 가득 채웠다. 돼지고기가 다대기, 들깨와 함께 입안에서 흡족한 오케스트라 공연을 펼쳤다. 국밥과 함께 살아온 하루들이 무의식의 영역에서 펼쳐지는 중인지 국물이 배인 쌀을 으깨며 만족스러웠다. 국밥 맛이야 뻔하기 그지없는 전개다. 내가 익히 아는 그 맛 그대로다. 그런데도 왜 질리지가 않을까.
참 맛있었다. 다음에 또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