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는 모두 고집이 세다. 고집이 약한 왼손잡이는 모두 교정당했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떠돌던 이 글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던 이유는 내가 왼손잡이여서다. 여기서 말하는 교정이 꼭 질타나 체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왼손으로 밥을 먹어서는 시집을 어떻게 가겠냐는 걱정을 들으며, 지하철 개찰구에서 왼손에 쥔 교통카드를 오른쪽으로 옮겨 찍으며 세상이 전하는 메시지를 선명하게 느낀다. 왼손잡이는 특이해.
그 어떤 교과서나 수업에서도 ‘왼손잡이는 모두 오른손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하지만 태권도에서 사범님이 오른손잡이들을 기준으로 자세를 설명하고, 극장에서 오른쪽 팔걸이를 사용하는 것이 암묵적인 규칙임을 알게 될 때마다 느끼는 바가 있다. 자연스럽게 식당에 가면 왼쪽 끝자리에 사수하려 애쓰는 사람이 된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들을 전문용어로 ‘영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영 교육과정은 힘이 세다. 우리가 아무리 도덕 시간에 외모는 중요하지 않다고 배워도 TV 속 등장하는 연예인들을 보며 예쁜 게 중요하다고 받아들이는 것처럼.
한국인의 약 절반 정도가 아파트에 산다고 한다. 그래, 아파트가 주류인 것은 알겠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집으로 아파트만을 소개하는 건 너무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썩 잘 사는 곳은 아니다. 작년 우리 반에는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아이들은 교과서에 실린 아파트의 인터폰 따위의 설명을 부러운 눈초리로 읽었다. 빌라나 주택에 대한 설명은 일절 없었다. 최신 과학 기술이 이뤄낸 주거 형태는 바로 아파트인 뿐인가 보다.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나도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아이들은 그날 배운 것은 오늘날의 주거형태가 아니라 대세는 아파트라는 현실이었다.
“선생님, 그럼 혜민이는 다문화 가정인 거예요?”
진웅이의 질문에 혜민이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린다. 평범한 우리 반 학생이었던 혜민이는 다양한 가족 형태라는 수업에서 별안간 ‘다문화 가정 학생’으로 분류됐다. 옆옆 자리의 재은이도 말이 없다. 재은이는 방금 ‘조손 가정’이라는 이름표를 얻었다. 사회 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은 세상에는 다양한 가족형태가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겠지만 글쎄, 단어로 누군가를 규정하는 일은 결국 다른 메시지를 더 크게 전하고 만다. 넌 좀 달라. 다문화 가정, 조손 가정, 한부모 가정, 입양 가정... 교과서에 나온 단어들을 하나씩 설명할 때마다 죄를 짓는 기분이 들었다.
담임이 심각하고 다정하게 말했다
- 다문화 친구랑 짝을 지어서 동네 지도를 그려 올 것
그 순간 나는 섬이 되었다
아주 작아서 지도에서도 보이지 않는
우리는 모두 육지였다
아무도 떨어져 있지 않았다
왜 그걸 담임이 떨어뜨리는 거지?
말이 떨어진 순간
나는 반에서 다문화라는 섬이 되었다
마음이 퍼렇게 출렁거리며 멀리 떠밀려 갔다
- 섬, 신지영(일부 발췌)-
곧 주거형태와 가족형태를 다루는 사회 시간이 돌아온다. 차라리 작년에는 모두가 빌라나 주택에 살아서 아파트를 부러워하고 끝이었는데 이번에는 2명 정도 아파트에 사는 아이가 있다. 이재용에 대한 동경과 비트코인으로 부자가 된 회사 동료가 주는 자극은 부러움의 농도부터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기에 걱정이 된다.
우리 반에는 다문화 가정과 한 부모 가정 아이도 많다. 어떻게 하면 그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교사의 의무 -성취기준에 맞게 가르쳐야 하는-를 다할 수 있을지 아직까지 고민 중이다.
노력한다고 해도 어차피 아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깨닫기야 할 것이다.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아니구나. 한부모 가정이 요즘 시대에 흠이냐면서 조금이라도 못난 모습을 보이면 그 이유를 엄마가 없기 때문으로 만드는구나. 앞서 말했듯 영 교육과정은 힘이 세다. 그래도 그 시기를 조금이나마 더 늦추고 싶다. 너희가 조금이라도 더 단단해진 다음 현실을 마주했으면 좋겠다고 감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