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쾅이라는 단어가 있기 전부터

너희가 몸무게에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기를

by 유장래

신체 검사를 한다는 말에 아이들이 비명을 지른다. 한 명이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갖고 묻는다.

“몸무게도 재요?”

그렇다고 하자 2차 아우성이 들린다. 저녁을 안 먹을 거라는 다짐부터 측정한 몸무게는 선생님만 보는 게 확실한지 재차 묻는 질문까지 다양한 말들이 쏟아진다.


요즘 애들은 왜 이렇게 빠를까? 무엇이 지극히 평범한 체형을 가진 우리 반 아이들을 체중계 앞에서 쪼그라들게 만들었을까. 안타까운 마음에 자존감 교육을 시작한다.

“몸무게 재는 게 걱정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이 꼭 날씬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만 기억하세요. 물론 마른 몸을 가지고 싶을 수는 있지요. 그렇다고 모두가 연예인 같은 몸이 되려고 할 필요는 없답니다.”



씨름 선수 사진을 보여주며 아름다움 대신 강함이라는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음을 알린다. 아름다움, 똑똑함, 강함, 끈기 등 세상에는 여러 중요한 가치들이 있으니 꼭 몸무게를 중요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고 마무리한다. 아이들은 솔깃한지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들었다(그냥 수학 수업이 미뤄져서 그럴지도). 흐뭇하게 이야기를 끝내려는 찰나, 한 명이 손을 든다.


“선생님, 그러면 어른들은 몸무게 신경 별로 안 써요?”

말문이 막힌다. 백날 떠들어 봐야 뭐 하나, 행동이 보여주는데. 무슨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우리 엄마의 다이어트’에 관한 증언이 줄을 잇는다.

어른들의 말과 행동은 다른 것을 가르치곤 한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시험을 잘 본 아이들에게만 칭찬을 건넨다. 여자도 충분히 강할 수 있다면서 물건을 드는 심부름은 꼭 남학생들을 시킨다. 우리의 행동은 곧 우리의 가치관이다. 아이들이라고 모르지 않는다.


애써 대답해본다. 어른들에게도 어려운 일은 맞다, 그러니 세상에는 중요한 가치들이 여러 가지가 있고 내가 원하는 것을 좇는 훈련을 미리미리 하면 좋겠다고 수업을 마무리했다. 나는 언제부터 몸무게에 신경을 썼더라. 귓가에 쿵, 쿵 소리가 들려온다. 의식은 어느새 중학교에 다니던 그 시절로 돌아가 있다.






중학생 때 같은 반이었던 예은이는 타고난 진행자요 지도자였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렇다. 시 주관 연설대회에서 최우수상을 탄 게 그 증거다. 그뿐인가. 나의 초중고 시절 내내 그는 압도적 표차로 전교 회장을 했다. 학교 축제에서 위트있게 MC를 보다가 싸이 분장을 하고 춤을 춰서 모두를 환호하게 만들던 예은이의 모습이 지금까지도 제법 또렷하게 떠오른다.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리더십에 유머 감각까지 겸비한 인재가 예은이었다. 그의 재능에 감탄하며 내 친구가 커서 무엇이 될지 괜히 상상해 보곤 했다. 유재석의 뒤를 이어 국민 MC가 될 수도 있겠고, 아나운서나 인강 강사가 되어도 잘할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예은이는 내게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비웃음을 당하는 것을 목격했을 때 나는 얼마나 참담했던가.


예은이는 덩치가 컸다. 우리가 ‘살찐 미국인’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떠올리는 빈곤한 상상력 속 체형과 흡사했다. 평소에는 잘 모르고 살았다. 우리가 모델 대회에 나온 것도 아니고 예은이는 그저 재미있는 친구였을 뿐이니까. 졸업식에 왔다가 예은이의 연설을 듣고 감탄하던 할아버지께서 가끔씩 ‘그 퉁퉁한 애는 잘 지내냐’고 물으셨는데 그것만 아니었다면 예은이가 뚱뚱하다는 것을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년배 남학생들의 생각은 달랐다.


체육 시간 단체 줄넘기를 할 때였다. 돌아가면서 한 명씩 줄을 넘고 나오는 8자 줄넘기를 했다. 예은이가 줄을 넘을 때마다 남자애들이 입으로 쿵, 쿵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조롱이 담긴 그 쿵쿵 소리와 시선들로 인해 당사자가 아닌 나까지 당황스러웠다. 그때 예은이의 표정이 어땠더라. 기억나지 않는다. 차마 보지 못했다. 내가 존경하던 친구가 농락당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리고 우리는 어쨌더라. 이건 기억난다. 들었어? 미쳤나 봐. 우리끼리 눈치를 보며 수군거리고는 끝이었다.


세상이 여자에게만 요구하는 외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달은 지금, 그때 남자애들에게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한 것이 한이다. 십대의 나에게는 그럴 용기도 의식도 없었다. 굳이 나서서 나대는 애, 예민한 애에 분류되기 싫었다. 따졌을 때 돌아올 이죽거리는 눈길들, 결국 바뀌는 건 없어서 느낄 무기력함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찌질하지만 솔직히 그랬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속닥거리기만 했다.



고등학생이 된 예은이는 다이어트 한약을 달고 살았다. 공부에 집중하기도 바쁜 고등학생에게 다이어트는 또 하나의 스트레스였다. 그는 살을 빼야 한다는 강박에 계속 시달렸고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를 통해 짐작하건데 의무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듯했다. 예은이는 살면서 얼마나 많은 쿵쿵 소리를 듣고 살아야 했을까? 그 소리가 얼마나 자주 시도 때도 없이 튀어나와 재능 넘치던 내 친구의 날개를 붙들었을까. 이 질문은 예은이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대놓고였느냐 아니냐의 차이일뿐이지 우리 모두 평가의 대상이 되곤 하니까.


쿵쾅이라는 단어가 생겼다. 뚱뚱하거나, 자기주장이 강하거나, 아무튼 남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쿵쾅이다. 여자에게 하는 최고의 욕의 내용이 고작 ‘넌 외적으로 별로야’라니. 쿵쿵이든 쿵쾅이든 개인적으로는 크게 상관없다. 다만 뚱뚱한 것을 범죄 취급하듯 구는 현실이 씁쓸하다. 아이들이 뚱뚱함, 못생김을 잘못된 것이라고 인식하게 될까 두렵다. 인터넷 댓글을 보다보면 예은이가 듣던 쿵쿵 소리가 마음속에서 재생될 때가 있다. 그러면 그런 소리를 듣고만 있었던 울분, 미안함, 참혹함 같은 것들이 속에서 올라왔다가 내려간다.



언젠가는 아이들에게 자신 있게 어른들은 몸무게 같은 거 신경쓰지 않는다고 대답할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사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애초에 그런 질문도 안 할 테지만.

말보다는 행동이렸다. 급식을 먹고 나면 가끔 아랫배를 붙잡고는 볼록해진 배를 아이들에게 보여주곤 한다. 내일 신체검사 날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아이들 앞에서 키와 몸무게를 재리라. 벌써부터 선생님, 그렇게 몸무게가 많이 나가요? 저는 30kg도 안 나가는데! 하는 흥분한 목소리가 상상이 간다. 얘들아, 몸무게가 많이 나가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란다. 몸무게는 신체적 특징 중 하나일 뿐이야. 최대한 개인정보를 학생들에게 공개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편이지만 이번만은 예외다. 한 명이라도 아름다움이 꼭 우리가 좇아야 할 가치가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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