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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레오 배 Apr 21. 2022

영어 인터뷰 준비와 인류 최대의 위기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 책 리뷰




"What's your favourite food, Ray? 레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내가 영어로 물었다.


"My favourite food is meats! 전 고기를 가장 좋아해요!" 제자와의 첫 달 수업에서, 소년은 해맑게 대답한다. 


만으로 열 살인 소년은 평생 살아오며 영어를 딱히 제대로 배우지 않았다. 갑자기 올해 하반기 유럽으로 이민을 가게 되어, 아버님께서 내게 수업을 부탁하셨다. 가장 급한 영어는 입학할 학교와의 영어 인터뷰. 


백지 그 자체였던 소년은 네 달 차인 지금, 함께 보는 학교 영상을 아무 자막 없이 모두 알아듣는다. 영국 원어민이 그들만의 표현방식으로 빠르게 말해도 모두 정확히 알아듣고, 나에게 한국어로 순차통역까지 바로 해낸다. '학생용' 영어 발음으로, 또박또박 천천히 말하지 않아도, '영국 현지인 친구에게' 말하듯 편하게 영어로 말해도 모두 알아듣는 영어실력이 되었다. 세 달 만에. 그중에 한 달 반은 내가 회사에 다니느라 주말 수업만 했음은 더 놀랍다. 




Livraria Lello, Porto, Portugal - 레이가 올해 이민 갈 포르투갈 모습




그 예로, 이젠 'food'라는 단어 대신 'cuisine'이라는 고급 단어를 말하고 알아듣는다.


"What's your favourite cuisine, Ray? 한식/일식/양식/중식 중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뭔가요, 레이?"


"I prefer Italian. 전 양식을 가장 좋아해요."


《영어책 : The Book of English》으로 기본기를 닦고, Ray가 하고 싶은 말들을 영어로 알려주었다. 《영어책》에는 영어를 이루는 다양한 언어들과 문화적 설명을 담아, 한국에서만 살아 본 레이가 유럽에 가서 문화충격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내 진정한 바람이다. (물론 유럽에선 다름을 포용 tolerance 하는 자세로 레이를 잘 받아들여 주겠지만, 혹여나 레이가 문화적 실수를 하여 왕따가 되면 큰일 나니, 중요한 건 반복해 알려주고 있다.) 




《영어책 : The Book of English》아우레오 배




이젠 《영어책》도 꽤 진도가 나가서, 깊은 내용의 어려운 문장들도 읽고 있다. 그런 문장들은 주로 지금 시대에 가장 급박한 문제 the most pressing issue of our time,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다. 


영국, 호주, 캐나다, 남아공, 미국을 비롯한 영문화에선 이미 기후위기와 그와 관련된 제로 웨이스트, 베지테리안, 비건이 일반적으로 알려지고 생활의 양식이 되었다. 서울과 부산의 문화 차이가 10년이라는 말이 있듯, 세계와 한국의 문화 차이도 꽤 긴 시간이 있음을 슬프게도 느낀다. 우리나라엔 세계적 문화 트렌드가 늦게 들어오는 편이다. 그중 하나가 비건과 제로 웨이스트. (어떤 문화는 미성숙하게 받아들여져 변질되기도 한다—페미니즘이 그 예.)


삼 일 전 유튜브에서 일론 머스크의 TED 인터뷰를 봤다. 무려 1시간에 달하여, 수업 틈틈이 책상을 닦고 커피를 내리며 나누어 들었다. TED의 디렉터와 나누는 대화에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기정사실로서 오간다. 그가 지금 하는 일은 세계 1위 부자 따위가 되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다. 인류를 멸종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미션이다. 


석유 기업들의 로비로 자동차 회사들은 전기차 생산을 완전히 무시해 오기를 수십 년, 그 지구온난화의 주요 원인이었던 세계의 대세(internal combustion engine cars - 내연기관 자동차)를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에 투자자로 참여하며 바꾸어 놓았다. 전기차에 대한 모델이 백지였던 세상에 '섹시한' 전기차 모델을 내놓았고, 광고비 지출 전혀 없이 팬덤 경제로 세상에 변화를 주는 영향을 끼치고 있다. 거기서 나아가 인류를 지구 한 곳에만 서식하는 종이 아닌, 다른 행성에도 살 수 있는 종으로 나아가도록 영향을 주고 있다. '부자'라는 단순 무식하고 천박한 목표를 좇은 게 아닌, '인류의 궁극적 생존'이라는 위대한 대의를 위해 인생을 시간을 쓰고 있기에, 30대까지 사무실에서 쪽잠을 자며 일만 했던 그가 지금은 세계 1위 부자가 된 것은 그리 중요치 않은 부차적 현상이다.



<The Economist> 지는 매년 가장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한다. 선정 기준에는 트램의 존재 여부가 있다. 그만큼 트램은 존재 자체로 아름답다. 트램은 전기로 운행한다.




수업을 하며 레이에게 기후위기와 육식에 대한 이야기를 요약해 들려주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레이가 말한다.


"지구의 시간이 1분 30초 남았죠. 앞으로 150년 뒤에 지구가 멸망할 거예요."


그렇지만 레이는 이게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내가 아이를 낳지 않는 이유도, 그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아주 불편할 것이라서라고 말해 주었다. 그래서 레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도 불편할 것이라고 설명하며, 그를 위해 나는 고기를 아예 먹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고기를 사 먹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만 고기를 먹는데,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히 행복하고, 그것만으로도 난 인류 생존에 충분히 지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레이가 소고기보다 돼지고기를 좋아하는 게 참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레이가 소고기를 먹기 위해 소를 공장식으로 키우는 축산업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소가 뀌는 방귀에 있는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말하니 레이가 웃는다. 사람도 방귀를 뀌고, 사람의 방귀에도 메탄가스가 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먹기 위해 기르는 소가 내뿜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62배 더 강한 온실가스여서, 기후위기를 일으키는 1위 문제라고 말해주었다. 이는 근거 있는 연구결과로, 《영어책》에도 권위 있는 자료출처를 함께 실었다. 


그리하여 나는 고기 대신 나무 열매, 특히 견과류를 주식으로 먹는다고 말해 주었다. You are what you eat.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을 이룬다.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죽고, 새로운 세포로 대체된다. 세 달 전의 내 몸은 지금 내 몸과 완전히 다른 몸이다. 고로 나는 가엾이 강제 임신으로 태어나 공장에서만 살다 강제로 죽임을 당한 동물이 아닌, 나무다. 동물이 숨 쉬는 공기를 맑게 하고, 탄소를 흡수해 자기 몸으로 만드는, 세상에 이로운 존재 나무다.


레이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 말이 없어졌다. 금세 나를 바라보는 눈을 보니, 이해한 눈빛이다. 


그러다 오늘, 이 책을 발견한다.



"죽지 못해 살아서 오랜 시간 병원에 내원하던 중, 문득 모든 병원의 선생님들이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사항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그건 바로 고기와 유제품을 자제하라는 것이었다. 동물성 식품은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성질이 있으니 예민한 피부병이 있을 땐 멀리하기를 권고했다. 조금이라도 통증이 가라앉길 바라는 절박한 심정에 바로 육식을 중단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기적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발가락의 가려움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2년 동안 아주 많은 약을 발라보고 병원에 들락거려도 나빠지기만 하던 병이 처음으로 호전 증세를 보였다. 여전히 아프고 간지러웠지만 감내할 만한 정도의 괴로움이었다."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 p.38



레이가 서너 달 나와 영어수업을 하며, 전혀 할 줄 몰랐던 영어라는 언어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듯, 우리가 사는 한국의 문화도 육식의 '당연함'에서 점차 변화되는 게 이 책의 등장으로 느껴졌다. (그렇지만 난 비혼은 아니다. 지금 할 일이 너무 많아 solitude를 즐기고 있을 뿐.)


한국 어느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9 to 6 직장인이자 4대 보험을 내는 정직원으로 일을 하며 내가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있다. 바로 고기를 먹는 일. 다 같이 먹는 점심과 회식에서 나만 고기를 안 먹을 수가 없었다. '고기를 먹으면 내 건강에 해로우니까 절대 먹지 않는' 이유가 아닌, '고기를 소비하면 내가 소비한 만큼 고기를 생산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가 배출되므로 고기 소비를 자제하는' 나는 체념했다. 결국 나와 맞지 않는 회사에서 퇴사를 하고, 나는 비로소 육식-free의 라이프스타일을 내가 만든 회사에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오늘 저녁은 부산에서 올라온 제자를 환영하며, 서울 제자들과 함께 다 같이 시금치 피자를 먹으러 갈 것이다.)


오늘 아침도, 지난 한 달도, 내 주식은 나무 열매다. 난 나무를 심고, 나무를 키운다. 심지어 커피나무도 새싹부터 키워 꽃을 피웠다. 이미 세계 최대 커피 생산지에서는 기후변화로 커피나무가 해를 입고 수확량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커피를 수입할 수 없을 때, 내가 키운 나무가 주는 열매로 커피를 마실 수 있지 않을까?


어렸을 때 학원이든 지하철이든 학교든 공공 화장실에 가면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은 머물고 간 자리도 아름답습니다.




『비혼이고요 비건입니다』의 저자가 서문에 썼듯, 나 또한 '깨끗한 삶'을 살고 떠나고 싶다. 내가 살고 간 이 세상이, 내가 살기 전보다 더 깨끗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죽었을 때엔.




아우레오 배

《영어책 : The Book of English》, 《죽어도 살자》 저자

오렉스 영어회화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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