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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레오 배 Jun 19. 2022

누구를 위해 내 몸을 태우나

직장인 정군 이야기



그의 이름을 정군이라고 하자. 정군은 꽤 훈훈하다. 평균을 훌쩍 넘는 훤칠한 키에 쭉 뻗은 다리는 한눈에 봐도 그에게 호감을 가게 한다. 그의 언어와 표정도 함께 있는 사람을 기분 좋게 한다. 정군은 결코 듣는 사람이 기분 나쁠 단어를 내뱉지 않는다.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말하지만 말실수란 없는 사람이다.


사람 좋은 정군은 회사에서 영업을 맡고 있다. 영세 자영업자들을 찾아가 회사의 제품을 잘 팔아달라 하는 일이다. 그가 영업하는 제품은 이 업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고급의 브랜드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브랜드라, 그의 업무는 설득보다는 관리에 가깝다. 


그런 그도, 매번 영세 자영업자들을 찾아가면 진한 맞담배를 태운다. 한 번씩 찾아가는 지방의 작은 매장 점주들과는 날이 새도록 지독하게 소주를 마신다. 마신다기보다는, 생활이 힘든 영세 자영업자들이 작정을 하고 사람 좋은 정군에게 술을 먹인다. 이런 날이 한두 번이 아닌 정군은 미리 술에 취하지 않는 약을 먹고 가거나, 자주 화장실을 가 술을 토해낸다. 아무리 술을 먹여도 사람 좋은 이성을 잃지 않는 정군을 보고야, 점주들은 그를 신뢰한다. 그의 회사 제품을 몇 없는 손님들에게 권한다—고 정군은 믿는다. 


그는 하루에 세 개의 각기 다른 지방 매장을 직접 운전하여 방문하고는, 밤새 술을 마시고 점주의 넋두리를 들어주고는 그들이 잡아주는 싸구려 모텔에서 딱딱한 침대와 불편한 베개에 몸을 뉘이고 잠시나마 눈을 붙인다. 출장을 간 김에 여행도 하는 사치란 정군에게 없다. 다음 날 곧바로 여서일곱 시간을 운전하여 회사로 돌아와야 한다.


회사에 돌아오면, 장군 같은 옷을 입는 대표가 그를 불러 맞담배를 태운다. 정군은 상관에게 보고하는 군인의 자세로 보고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장군님의 훈계를 다 듣고서 사무실로 돌아가면, 그는 가장 먼저 이사의 눈치를 살핀다. 이사는 자신의 기분대로 행동하고, 어제와 오늘이 너무나 다르게 사람을 대한다. 나이가 꽤 많이 들도록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다. 그런 이사는 야망이 있다. 대표를 회사 업무에서 손을 떼게 하고, 자신이 이 회사를 접수하는 것. 정군이 맡은 브랜드와 전혀 다른 브랜드를 이사가 맡고 있음에도, 정군의 업무에 대한 모든 보고와 허락을 이사에게 받아야 한다. 


정군은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다 이 회사의 대표와 이사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 지금 회사로 이직했다. 이전 회사와는 달리 수평적 회사 분위기와 더불어 대표의 달콤한 제안에 그는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입사 확정 이메일을 받고 그는 이전 회사에 기쁜 마음으로 사직서를 냈다. 이전 회사에서 나아가 같은 업계에서 두각을 내고 싶은 정군은, 유명한 브랜드를 유통하는 수평적 기업문화의 회사에 입사에 즐겁게 출근했다. 


그 즐거움은 2주를 채 넘기지 못했다. 유명한 브랜드를 유통하지만, 정군이 입사한 회사는 제조사가 아닌 수입사였고, 열 명도 되지 않는 회사 규모에 대표의 말이 곧 법인 독재정권이었다. 정군의 입사와 동시에 한 사람이 퇴사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그 사람에게 왜 퇴사를 하느냐고 정군이 묻자 그가 대답했다.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들이켰다가 길게 내뿜으며, "이사 때문에요." 독재자 위에 실세자가 있었다.


정군이 회사를 다니는 1년 동안 세 명이 퇴사를 했다. 세 명 모두 두 달을 채 견디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대표는 새로운 사람을 사무실에 데려와 전 직원에게 소개했다. 손님인 것 같았던 그 사람은 몇 주 뒤 회사의 정직원으로 입사한다고 통보받았다. 새로운 사람은 정군이 처음 입사했을 때처럼 밝고 패기가 넘쳐 보였다. 그랬던 그 사람도 입사 후 삼 주가 지나자, 표정이 더이상 밝지 않았다. 말끔했던 용모도 초췌해져갔다. 걱정이 된 정군은 이번엔 그에게 술한잔 하자고 청했다. 


다음 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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