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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우레오 배 Jun 06. 2022

나는 작가다

창작욕은 성스러운 섹스다



나는 작가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다. 내 안의 비전을 꺼내 보여주는 사람이다. 그 비전은 이 우주에 나에게만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아티스트 artist라고 부른다. 나는 인간의 육신과 정신부터 인간 사회를 아우르는 여러 분야를 탐구해, 무얼 만들더라도 가능한 모든 인식과 관점에서 작품을 만드려 한다. 평범한 단어로 제네럴리스트 generalist, 특별한 단어로 르네상스 맨 Renaissance Man 또는 폴리매스 polymath라고 한다.


언어는 나의 미디엄이다. 사람들에 감동을 주는 걸 좋아한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겐 친절로, 얼굴도 모르는 다른 나라 사람에겐 이메일에 적는 글자로 감동을 주길 좋아한다. 언어는 신비로운 미디엄이다. 소리도 없고, 이미지도 없는데, 글자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사람으로 태어나, 영어도 모국어처럼 할 수 있게 되면서, 영어를 한국어로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나를 보여주는 사진도 없이, 내가 인터넷에 올린 글 하나 만으로 사람들은 나를 신뢰하고, 자신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자식을 나에게 맡긴다. 그 신비로움에 나 스스로도 감사하여 난 정성을 다하고, 기대하고 목표한 결과 그 이상을 만들어 낸다. 언어는 나의 미디엄이다.


우주에는 그러나 언어로 전할  없는 무엇이 있다. 그런 오묘한 존재나 느낌을 표현할 때엔 시각예술의 미디엄을 손에 쥔다. 이미지 그뿐이 아니라 물질과 텍스쳐,  물질들의 조합이 이루어내는 인식과 전시 방식을 동원한다. 시각예술의 미디엄은 페인트가 아닌  같다. 예술의 미디엄은 사람의 마음인  같다.  제자들에겐 비밀이지만 대학  읽은 수천 권의 책들  가장 많은 책은 심리학에 관한 책들이었다. 상경대에서는 마케팅을 전공한 이유도 이것이 인간의 인식을 다루는 응용 과학 applied science이기 때문이었다. 지식을 아는  그치지 않고 사용할 줄도 아는 , 그것이 진정 아는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난 비주얼 아티스트인 동시에 산업, 패션, 그래픽 디자이너이고, 마케터이면서도 글을 쓰는 작가다. 미디엄은 다양하지만 여러 미디엄으로 전하려는 작가의 의도는 하나다. 카타르시스. 대표적으로, 난 금으로 작업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고 감격으로 가슴이 벅차오른다. 종교적 승화의 경험이라고도 할 수 있고, 육체적 오르가슴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냥 사정하고 마는 단순한 절정이 아니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과 세 시간이 넘도록 열정적인 사랑을 나눌 때 내 마음에 찾아오는 그런 승화의 경험이다. 그런 섹스를 반복적으로 하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평안한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된다. 난 구스타브 클림트의 작품과 그의 사진을 보면 그도 그를 느꼈음을 알 수 있다. 말러의 교향곡도 그렇다. 1900년대 오스트리아의 산물들이 그렇다. 육체적 사랑이 문화예술은 물론 학계에서도 중대한 요소로 통용되었던 1900년대 오스트리아에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 창조되었음은 필연 인지도 모른다. 섹스를 천박하거나 부끄럽게 여긴다면, 천박하고 부끄러운 문화예술 사회적 산물이 나올 뿐이다.


섹스는, 세상의 다른 수많은 것들처럼, 인간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추상이다.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인간은 성스럽게 여기곤 한다. 섹스도 성스러이 여겨 마땅하다. 난 내 침대에 결코 더러운 몸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금빛 햇살이 우주의 기운처럼 한 줄기 한 줄기 내부를 비추는 로만 가톨릭 성당에 들어가듯, 나는 깨끗한 몸으로, 경건한 마음으로 침대에 입장한다. 카마수트라를 읽으며 우린 천박을 느끼지 않는다. 감동에 다다를 만큼 감탄스러운 정성과 사랑을 느낀다. 이렇게까지 인간의 창의력을 다해 섹스를 연구하다니. 위대한 성당 앞에 넋을 잃는 것과 같다. 내가 다양한 미디엄으로 작업하는 태도도 이들과 결을 함께 한다. 카마수트라, 성당, 예술은 모두 하나를 지향한다. 극적인 감동. 이를 표현하는 하나의 단어나 이미지가 없으니, 이를 나는 편리하게 '카타르시스'라고 써본다.


사랑에 있어 나는 별다른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내 신체를 최대한 사용할 뿐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신체는 내 손일 것이다. 손은 예술적 활동의 정수다. 손과 눈과 뇌, 이 셋의 조화가 위대한 예술을 창조해 낸다. 신기하게도 이는 섹스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손을 잘 쓰는 사람이 그의 연인에게 절정의 황홀을 선물할 수 있다. 절정의 황홀을 느끼는 연인은 살아있음에 완전히 만족하고, 그 만족을 제공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한다. 사랑. 그런 사랑은, 영원한 사랑이다. 그런 사랑으로 낳은 아이는, 그런 위대한 사랑을 이어 전한다. 위대한 사랑을 전하는 사람이 우리 세계 속에 우리와 함께 살아갈 때, 우리 세계는 아름답다. 살아갈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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