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를 건너뛰어 박사과정으로 돌진한 사연
주변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다가 뭔가 내가 어떤 것을 잘 못하겠다고 이야기하거나 어렵다고 이야기하면 언젠가부터 이렇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에이~ 이제 박사님인데 그럼.
다르지, 우리랑은.
다녀보면... 전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우리는 '박사'라는 명칭에 대한 엄청난 오해를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내가 사람들에게 대학원을 다닌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아, 석사과정 하는거야?
아니, 나 어쩌다보니 박사과정하고 있어.
그러면 바로 이어지는 소리. 박사과정이라니 대단하다, 어쩌다가 박사과정까지 공부를 했어 등등. 마치 박사과정을 들어간 것만으로도 이미 박사가 된 것처럼 많은 이들이 생각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나는 아직 '박사'가 아니고, '박사과정'을 들어가게 되는 것은 나같은 사람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사과정이라는 것은 명칭만 들었을 때는 진입장벽이 굉장히 높게 느껴지지만 실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렇게 갑자기 박사과정을 하게 된 이유
앞서 이야기했던 부분이지만 직장인들이 시간을 쪼개 대학원까지 다닌다는 것은 투자 대비 산출에 대한 열망때문일 것이다. 평생교육 시대라고 이야기하지만, 지혜의 발견을 위해 대학원을 다니며 몇 백 만원씩 하는 등록금과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 면에서 내가 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며 고민하던 것 중 하나는 석사과정부터 시작할 것인지, 석사를 생략하고 박사로 들어갈 것인지의 문제였다.
본래는 동일한 전공이 아니고는 바로 박사과정에 입학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는데, 교수님이 나의 경우는 석사과정을 생략해도 된다는 희소식(?)을 알려 주셨다. 아무래도 큰 틀에서는 유사한 분야에서 공부한 석사 학위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고 교수님과의 면담에서 겉만 보면 굉장히 화려한 나의 학업 계획을 말씀드렸을 때(굉장히 호기롭게 펼치고 온... 사기 수준의 학업 계획이었음을 고백한다), 이 정도 이해를 갖고 있다면 박사부터 입학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지만 석사부터 하는 것 역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넌지시 말씀해주시기도 하였다. 바로 박사과정으로 입학하여 수료까지 한 지금 상황에서 그때로 다시 돌아가보면... 그때와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지만, 당시에는 좋은 조건임이 분명했다.
석사 or 박사,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이었을까
학문적 체계에 대한 깊은 이해를 위해서는 '석사-박사' 순으로 공부하는 것이 제일 좋을 것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다. 나 같은 경우는 학부와 다른 전공을 선택하는 상황이었기에 사실상 이 전공 분야에 대해서는 교양 수준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었다. (어디선가 주워 들은 몇 개의 전문용어로 아는 척은 해보았으나 솔직히 잘 모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점들을 고려했을 때, 처음 생각에는 석사과정부터 공부하면서 차근차근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석사과정 중에 논문을 바로 쓴다고 해도 학위취득까지 2년이 걸리고, 그걸 졸업하고 또 박사과정을 들어간다면 장장 10년(?)까진 아니어도.... 내 역량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꽤 긴 시간 학교를 다녀야 한다는 점이었다. 석사까지 하고 공부를 마칠 생각이면 상관없겠지만, 나는 한다면 박사까지 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학위를 들고 사회에 나왔을 때 석사급과 박사급은 연봉부터 갖가지 대우가 다르고, 분야를 바꾼 후 이직할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한다면 박사까지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금전적인 문제부터 시간적인 문제까지, 현실적인 것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보니 과연 무엇이 더 옳은가 고민이 많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결국은 현실적인 문제들을 무시할 수 없었기에 나는 박사과정부터 바로 입학하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연구자로서의 태도나 학위과정을 공부하는 것의 가치 등에 대해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셨던 것들을 떠올리면 석사과정부터 공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기도 했지만, 내가 다니면서 두 배로 열심히 공부하고! 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히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포부를 다지는 것으로 고민을 끝낸 것이다. (굉장히 무모한 도전이었음을 고백해본다...)
현재 시점(박사 수료 상태)에서 이 고민을 다시 돌이켜보면, 솔직히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학원을 가는 나의 목적이 이력서에 넣을 한 줄의 스펙을 얻는 것이었다면 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지만, 앞서 말했듯 나는 새로운 직업 분야에서 일할 수 있는 전문성을 갖추길 원했기에 석사부터 했어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엄밀히 따지면 박사과정으로 입학하는 것이 중요한게 아니다. 내가 학위논문를 쓰고 심사를 통과해야 박사학위도 주어지는 것이지 않은가. 그런데 당시에는 이런 부분들은 헤아리지 못하고 바로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 한 달 만에, 나는 내가 밑바닥부터 공부하는 것이 필요했음을 깨달았다.
그 이유는 수업을 듣는 과정에 대한 글에서 더 이야기하겠지만, 대학원 수업에서 '박사과정'이기 때문에 교수님들이 갖는 기대가 있다. '당연히 이 정도는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시면서 나를 대하시는데. 문제는... 난 이런 학문 분야에 이제 막 뛰어든 초보적인 사람이며 동시에 진득하니 앉아서 공부하는 것도 10년 만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교수님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요구하실 때도 있고, 당연히 내가 알거라고 생각하고 설명해주시지 않는 부분도 많다. 하지만 나의 이런 개인적인 상황까지 교수님이 다 헤아려 주실 수는 없지 않은가? ‘교수님의 기대따위야!’ 라며 마이웨이를 갈 수도 있겠지만...(사실 그러려면 애초에 안다니는 것이 이로울 것이다만..) 대학원 생활에서 교수님의 기대를 충족한다는 것이 사실은 교수님만을 위한 길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길임을 알아야 한다. 그 기대에 맞게 무언가를 수행했을 때 나에게도 유의미한 결실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수님이 갖는 시선보다 사실 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시선, 즉 내가 나 자신을 신뢰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겉으로야 대학원 다닌다며 공부하는 척, 책 들고 돌아다니지만, 다른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나는 속일 수 없다. 공부하는 매순간마다 내가 부딪히는 한 가지 사실.
내가 진짜 아는 것이 별로 없고,
할 줄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것.
나의 경우는 그랬다. 이름만 '박사과정'이지 대학원생이라면 갖추어야 하는 아주 기초적인 연구방법론부터 잘 이해하지 못했다. 특히 양적 연구에서 통계를 돌리기 위한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것부터 난관이었다. 생전 듣도보도 못한 생소한 용어들로 인해 심리적 압박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해할 틈도 없이 과제는 주어졌다. 그런데 나는 내일 출근도 해야하지 않는가.
그뿐만이 아니다. 말이 전공이지, 아직 잘 모르는 분야이다 보니까 전공에서 사용하는 모든 전문 용어들이 생소했다. 나의 경우는 한글로 된 것도 이해하기 힘든데, 영어로 된 용어들까지 익히려니 그 부분에서 오는 부담감이 생각 외로 컸다. 그리고 아직 학위논문을 쓰지 못한 수료생으로서 지금 이순간에도 내가 이정도 실력으로 과연 논문을 쓸 수 있을까, 이대로 학위 못따고 끝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되는 때도 있는데 이 역시 기초부터 다지지 못했다는 두려움에서 오는 것 같다.
물론 이런 어려움들도 어느 정도는 시간이 결국 해결해주기는 한다. 그렇지만 내가 아직 좀 더 어려서 시간 여유도 있고, 기타 여러 가지 면에서 천천히 가도 괜찮다면 석사과정부터 시작했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에게 필요한 것이 졸업장이 아니라 이 분야에 대한 전문성이라면 더더욱! 어차피 직업세계에서는 학위보다 중요한 것이 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들 ‘차근차근 기초부터 잘 다져서 실력을 갖춘 사람이 될 것이냐, 조금 무리하더라도 한 번에 내 목표로 돌진할 것인가?’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면 좋겠다. 그렇지만 고민 끝에도 나와 같은 이유로 박사과정을 시작해야하는 사람들은 함께 용기내면 좋겠다. 이렇게 고민도 많고, 두려움도 많고, 부족했던 나도 박사과정을 무사히 견디고 수료까지는 왔으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당연히 할 수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대학원생 라이프를 내가 어떻게 꾸려가느냐에 달려 있다는, 스스로를 향한 믿음으로! 함께 하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