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May 24. 2020

일요일 점심, 동생의 취미를 발견하다

코로나가 가져온 의외의 순간

코로나로 인해 집 밖에 나가지를 못하면서 가족들이 함께 머무르는 시간이 많아졌다. 성인이 된 이후로 보통 집에 있기보다는 출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학교 다니고 하는 등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았는데. 어린 시절 이후로 이렇게 집순이가 되어서 사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같이 있는 시간이 늘다 보니 당연하게도 함께 식사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생각해보면 언젠가부터 가족 모두가 한 자리에 앉아 밥을 먹는 일은 생일이나 특별한 행사들, 혹은 어쩌다 주말에 한 끼 정도 있을 뿐이었는데. 밖에서 사 먹는 것이 부담이 되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엄마의 집밥 앞으로 모여들었고, 엄마의 부엌은 쉴 틈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싱크대를 정리하던 엄마가 10년 전쯤 사다 놓고 남아있던 스파게티 면을 발견하고는 “이거 버려? 너네 해 먹을 거야?”라고 물었다. 그것은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내가 요리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던 때 사놓았던, 유물 같은 재료였다. 한두 번 해보고서 ‘아... 나는 요리에 소질이 없구나.’를 금방 깨달아 잊고 지냈는데. 아직도 집에 있었다니.


그때 동생이 “어차피 심심하니까... 그럼 내가 해볼까?” 하면서 집에 있던 바지락과 몇 가지 재료들을 추리기 시작했다. 뭔가 매일 상을 차리는 엄마의 수고를 덜어주기도 하고, 버리기 아까운 재료를 사용하기도 할 겸 마음을 먹은 듯했다. (원래 내 동생은 전혀 요리를 하던 사람이 아님을 밝혀둔다.) 그러더니 열심히 레시피를 뒤져서 뚝딱뚝딱 무언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첫 번째로 등장한 음식은 주꾸미 & 바지락 파스타!


첫 시도인데 심지어 온 파스타, 냉 파스타를 따로 만들었다!


마침 집에는 식구들 먹이려고 아빠가 현지에 주문해서 받은, 알이 꽉 찬 주꾸미가 있었고 바지락과 주꾸미는 환상의 조합이었다. 처음으로 하는 요리이면서도 호기롭게 온 파스타와 냉 파스타를 구분해서 준비한 동생. 정확히 딱 2인분씩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온 식구가 놀랐고 엄마아빠는 갑자기 외식하는 사람들처럼 좋아하셨다. 나 또한 즐겁게 먹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네 식구가 앉아서 평범한 집밥이 아닌, 특별한 한 끼를 먹고 나니 별 일 아닌 것 같으면서도 괜히 즐겁고 좋았더랬다.


그러자 탄력을 받은 동생은 “주꾸미 남았으니까... 내가 다음 주에 또 해볼까?”라며 호기롭게 다음을 기약했고 엄마, 아빠는 일주일 내내 동생의 요리를 기다리셨다. 동생이 집에 들어오면 ‘정말 이번 주에도 해줄거냐, 뭐 사다놓으면 되냐’ 등 질문이 이어졌고 동생의 주문대로 재료들이 냉장고에 채워지기 시작했다.


보자마자 먹느라 완성본 사진이 없다는 슬픔...


그렇게 다음에 탄생한 요리는 주꾸미 볶음 & 소면! 이 또한 진짜 오래간만에 먹는 별미로, 골뱅이무침에 소면을 먹는 것처럼- 잔치국수 해먹다가 남아 있던 소면을 삶아서 주꾸미 볶음 한 가운데 먹음직스럽게 놓았다. 우리는 주꾸미와 소면은 물론, 남은 양념을 밥에 싹싹 비벼 먹으면서 다들 스트레스 해소의 시간을 가졌다. 역시 매운 음식은 힐링이다!


가족들이 잘 먹는 모습에, 또 집에서의 시간을 나름 재밌게 보내는데 기쁨을 느낀 동생은 다음 요리로 만두전골을 기획했다. 그렇게 가족들은 일요일 점심을 기다리며 만두전골은 어떻게 만들면 될지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오늘! 세 번째 요리를 만났다.


얼큰하게 끓여진, 몸보신 음식 같은 만두전골!

얼큰한 국물에 야채도 듬뿍, 만두도 듬뿍 들어간 만두전골. 식구들이 머리를 맞대고 땀 흘리며 먹은 만두전골은 무슨 몸보신 음식 같았다. 먹으면서도 오늘도 훌륭했다, 다음 주는 그럼 뭐 만들거냐,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렇게 우리는 후식으로 참외까지 뚝딱! 하고 점심식사를 마쳤다. 오늘로 세 번을 채운, 동생이 차려주는 일요일 점심! 이렇게 동생은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취미를 갖게 되었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묘하다. 코로나로 인해 고생하는 의료진이나 환자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먹먹한 마음이지만, 이 어려운 시기에도 이런 의외의 순간을 만나게 되다니. 갑자기 찾아온 동생의 취미는 엄마의 휴식 시간을 마련하고, 아빠가 일주일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하는, 귀한 선물이 되었다. 온 가족이 모여드는 일요일 점심 식사. 요리하는 동생도 모처럼 새롭고 즐거워 보인다. 이렇게 또 우리 가족의 소소한 행복이 채워져 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른에게 묻는 평화의 반대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