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May 13. 2020

일하며 공부하는, 대학원생 생활의 시작

프롤로그


어느 날 찾아온, 직장인의 '사춘기'


엄청 거창한 이유로 공부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그냥 어느 날 문득 찾아온, 직장인의 사춘기를 그저 쉽게 지나치지 못했을 뿐. 참고로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부터 선생님이 꿈이었고, 선생님이 되기 위한 길만을 걸어왔으며, 된 후에는 어떻게 하면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을 기쁨으로 삼으며 살아오던 어느 날이었다.


아.... 진심 그만두고 싶다.


정말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의외의 순간이었다. 나에게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으니까. 물론 살다 보면 일을 하기 싫거나, 귀찮고 회의감이 드는 날은 올 수 있지만 그만두고 싶다니. 나는 자타공인하는! 목표가 분명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던가. 오죽하면 다들 취업 준비를 하던 시기, 너무나 분명한 목표를 갖고 취업전선에 뛰어든 나를 보며 친구들은 부러워했었다.


넌 좋겠다, 뚜렷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서.


그냥 ‘회사’라는 목표 하나만을 두고 어디라도 붙길 소망하며 고군분투하는 친구들에게는 오직 ‘선생님’이라는 꿈 하나만을 갖고 유년시절부터 그 긴 학창 시절까지 보내온 내가 신기했던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이런 소리를 들을 만큼 내 꿈에 대한 분명한 소신을 갖고 있었고, 그래서 선생님이 되었다. 물론 선생님이 되고 막상 사회생활을 시작하다 보니, 첫 번째 느꼈던 것은 학교는 내가 생각했던 곳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나는 거의 네버랜드를 꿈꾸고 있었는데 막상 내가 마주한 학교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뭐 전 국민이 다 아는 사실이었을 텐데.... 늘 그렇듯 세상 물정 파악에 약한 나만 몰랐던 것 같다..) 그러나! 사실 그런 것은 내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리고 충만한 자신감현실감각의 부재로 무장한 나는 아주 의욕적으로,


그래, 내가 머무는 곳만이라도
내가 꿈꾸던 모습으로 만들어 나가면 되지!


라는 당찬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랬던 내가 간절하게 그만두고 싶다니. (참고로 이 글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왜 그만두고 싶은지와 관련된 것은 아니다. 이유야 늘어놓음 한도 끝도 없겠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대학원에 대한 것임을 미리 말씀드린다.) 물론 그만둔다는 것은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이 눈앞에 놓여 있기 때문에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막상 또 물 흐르듯, 흘러가는 세월을 살다 보면 이래 놓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가는 나를 발견하겠지...라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


이번에 내게 찾아온 충동은 조금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래, 지금은 어떻게 이 위기를 넘어간다 치자. 모든 일에는 권태기라는 것이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5년 뒤, 아니 10년 뒤에 갑자기 또 그만두고 싶어진다면? 그땐 그 마음을 쉽게 다독일 수 없을 정도라면? 나는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이렇듯 이번에 내게 찾아온 사춘기는 이렇듯 내게 굉장히 심각한 질문을 던졌다. 즉, 복잡한 이유들은 제쳐두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할 줄 아는 것은 선생질밖에 없는 내가 이걸 그만둔다면. 과연 뭘 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사실 그동안 나의 속마음은....


일반적인 회사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고충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밖에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커리어를 높여가며 의욕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는 친구들과 나의 사회생활은 좀 달랐다. 흔히들 하는 이야기이지만, 선생이 가장 세상 물정 모른다고 하지 않는가? 내가 그렇다. 세상 물정은커녕 계산적이지도 못하고, 애들과 비슷한 정신연령으로(나는 그래야 온전한 정신으로 학교생활하는 것이 가능하였기에...) 그저 애들하고 부대끼며 함께 하는 순간들을 살아왔을 뿐이다. 그 사이 세상은 열심히 변해가는데 나는 늘 똑같은 교실에, 똑같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어쩌면 그런 의미에서 그만둔다는 것은 굉장히 순진하고도 가망 없는 욕구였으며, 그제야 돌아본 나는 참 초라해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이렇게 나이 먹어가는 사이에 친구들은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집도 사고, 승진도 하고, 뭔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 나는 매년 다른 애들로 바뀌긴 하지만, 같은 나이의 학생들을 만나 똑같은 학사일정에 따라 일년살이를 하고 다음 해에 또 학생을 맞이하는. 쳇바퀴 돌듯 하는 삶을 살고 있는데..... 내게 남아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싶었다. 물론 교사로서의 직업에 대한 가치를 폄하하는 것은 절대 아님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그냥 직업인이자 생활인으로서, 나이 먹어가는 한 인간으로서 드는 고민이니 말이다.


지금은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간다만 몇 년 뒤에 또 이 일을 그만두고 싶어진다면? 그때 나는 또 같은 고민만 하다가 현실적인 조건 아래 주저앉아야 할까?  출퇴근길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지내던 어느 가을날, 핑크 뮬리 구경이나 가자고 나를 밖으로 끌어낸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배부른 소리하고 있다.
근데 니 말도 그렇게 틀리진 않아,
요즘 세상에.

정말로 니가 나오고 싶으면
다른 능력을 갖춰야지.
너, 사람들이 그러니까
자기 계발에 목숨 거는 거야.
너도 그럼 대학원이라도 다녀봐.



대학원...? 이 나이에 뭐 다른 영어나 이런 공부를 좀 더 하는 것도 아니고. 맨날 학교 가는데 무슨 학교를 또 다녀....라고 생각하는 찰나, 친구는 주변에 대학원을 다니며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종류도 참 다양했다. 흔한 MBA(경영대학원)만이 아니라 자신이 일하던 분야를 바꾸기 위해 대학원을 가는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다고. 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도 한다던데 우리 나이에는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냐고. 뭔가 리프레쉬가 될 수도 있으니 현실적인 여건만 괜찮다면 생각해보라고.


굉장히 이상적인 듯하면서도 현실적이었던 친구의 조언은 귀가 얇은 나를 춤추게 했고 어느덧 대학원 입시 요강을 찾아보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