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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Jun 08. 2021

비 오는 날, 경리단길을 걸었다

쉽지 않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 대하여

코로나19가 가져온 변화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참으로 진부하게 느껴질 정도로 많이 회자되었다. 매일 쓰는 마스크, 작은 기침 소리에도 경계하는 눈초리,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사라진 학교까지. 초반에는 그 변화가 너무 크고 생경하게 느껴졌었는데 이제는 모든 것이 그러려니 하게 되는 익숙한 일들이 되어버렸다. 더이상은 변화라는 단어를 붙이기 어색할만큼 말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큰 변화는 번화가를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작년에 막 코로나가 시작될 때는 혹여나 내가 걸려서 등교한 애들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을까, 내가 학교를 못오게 되면 그 많은 내 수업을 누군가가 보강해야하는데 그 피해를 어떻게 감당하나 하는 마음에 여름방학 날까지 그 지져분한 머리도 한 번 못 자르고 버텼다가 방학식 땡 하고 미용실로 향하기도 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이제는 나름의 일상을 살아가기는 하지만 집앞의 식당이나 들를 뿐, 불특정 다수가 많이 모여드는 번화가는 여전히 피하게 된다. 그러다 불가피한 약속이 있어 아주 오랜만에 경리단길을 방문했던 어느 날이다.


비를 피하고 있는 고양이의 모습마저 쓸쓸했던 날

비가 내리는 목요일. 걸어다니기 조금 불편한 날씨이기는 했어도 내가 기억하는 경리단길은 늘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도착하자마자 맞닥드린 것은 한창인 저녁시간인데도 문을 닫은 가게들이었다.


“당분간은 영업하지 않습니다.”


당분간이라. 과연 당분간의 끝은 언제일까. 기약없는 안내 문구만 남긴 채 가게문을 닫은 분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아무리 코로나라고 해도 교외에 나가보면 사람들로 붐비는 곳도 많다고들 하는데. 그 번화하던 곳에 이정도로 사람이 없을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도 해서 그런지 유독 사람이 더 없는듯 해보였고 안타까운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걷다가 그나마 문을 연 작은 고깃집에 들어갔다. 그냥 마음이 동해서 들어간 곳이기에 특별히 기대하지 않았는데 사장님이 비 온다고 김치전을 특별히 내어주셨다. 우리는 사장님의 기분 좋은 배려에 감동하며 김치전으로 허기진 배부터 달래기 시작했다. 저녁 시간인데도 우리 외에 다른 손님은 없는 가게. 코로나를 피해다니는 입장에서야 한가한 가게를 마다할 이유가 없지만 먹으면서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렇게 주문한 음식이 나오고 몇 주를 숙성시켰다는 고기와 화로는 빗길을 돌아다녔던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사장님은 먹는 중간에도 오셔서 주문하지 않은 고기까지 덤으로 주시며 어떻게 숙성시켰고 어떤 맛을 내기 위해 노력하셨는지 등을 설명해주셨고 덕분에 입과 귀가 함께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그렇게 근사한 한 끼를 마무리하고 계산할 때 이것저것 맛있는 음식들을 더 소개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했을 때 사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 원래 첫손님은 더 특별히 잘해드려요.
맛있게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간 시간은 일곱시도 훌쩍 넘은 늦은 저녁이었는데 우리가 첫 손님이었다니. 왠지 모를 안타까움을 숨기지 못하고 사장님의 눈을 바라보았을 때 사장님 역시 씁쓸한 속내를 감추지 못하고 말씀하셨다.


나름 제가 유학도 다녀오고
준비 많이 했는데 참 쉽지가 않네요.


 그대로  쉽지가 않은 요즘. 여기저기 힘든 곳들이  많고  힘듦은 여전히 진행중이다. 우리 모두는 피하고 싶다고 피할  없는 상황 속에서 때로는 무력하지만  때로는 용기를 다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너무나 착한 눈을 가지고 계셨던 사장님을 만나며 이런 시기를 버티며 살아가는 것이 분명 쉽지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은 정성을 나누고 위로와 격려의 말을 나눌  있다면 언젠가는  시기도 끝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오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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