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이 돋보이는 명품 저작권을 꿈꾼다.

by 오로라

얼마 전, 내가 사용하는 SNS에서 AI로 지브리 스타일의 프로필 사진을 만들어 올리는 일이

마른 들판에 불이 번지듯 번져 나갔다.

나 역시 여러 장의 사진을 AI에게 지브리풍으로 변환해 달라고 요청했고

나의 SNS에도 올렸다. 새로운 놀이였고 나름 한참 재미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며칠 후, 지인이 공유한 뉴스 기사 하나는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원피스’ 감독 “지브리를 더럽히다니, 챗GPT 용서하지 않겠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

지브리의 설립자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AI 애니메이션에 대해 “삶에 대한 모독”이라고 단언하며 “이 기술을 내 작업에 쓰고 싶지 않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원피스' 시리즈 연출에 참여한 헨리 써로우 감독 역시 “예술의 민주화라는 말은 자기기만”이라며 “올림픽 선수가 되는 것을 민주화할 수 없듯, 훌륭한 감독이 되는 것도 민주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내 SNS에 올린 지브리풍 이미지를 즉시 삭제했다.

그리고 기사를 공유하며 “작가의 관점을 존중합니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엔 이런 생각도 있었다.

어떤 작가는 "내 스타일이 지브리풍처럼 전 세계에 퍼진다면 영광이지"라고 말하지 않을까?


비슷한 고민은 음악계에서도 일어난다.

최근 ‘나는 반딧불’이라는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켰다.


가사 몇 마디는 이렇다 :

“나는 내가 빛나는 별인 줄 알았어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죠

몰랐어요, 난 내가 벌레라는 것을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


이 네 줄에는 자존감, 환상, 좌절,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고자 하는 의지가 모두 담겨 있다.

자신이 ‘벌레’임을 깨닫는 순간은 어떤 충격을 주었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난 눈부시니까"라는 자기 위로는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멋진 말이다.

힘들지만 꿋꿋하게 자기의 꿈을 향해 걸어가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빛을 안겨주었다.


이 노래를 부른 가수 황가람은, 방송에서 그의 무명 삶이 조명 되는 등 일약 스타가 됐다.

하지만 정작 이 곡의 저작권은 ‘중식이 밴드’의 정중식에게 있다.

황가람은 정중식의 노래를 ‘커버’한 것이다.

그래서 황가람은 음원 수익을 한 푼도 챙길 수 없었다.

공연도 하게 되었고 방송도 하지만 여전히 궂은 알바를 놓지 못하고 있다.


한편, 역시 무명이었던 중식이 밴드도 재조명되었고,

정중식은 미뤄두었던 결혼도 남들처럼 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노래 한 곡이 두 사람을 살린 셈이 되었다.

황가람은 대중들에게 인지도가 생겼고 정중식은 드디어 저작권료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시너지'다.


나는 저작권 제도만큼은 그래도 음악계가 디지털 시대에 비교적 잘 적응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커버’라는 방식은 기존 창작물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도와준다.

시각 예술 분야도 이런 방식을 벤치마킹하면 좋겠다.


무명의 많은 창작자들은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약간의 도움닫기만 있어도 그들은 숨을 쉴 수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척박하다.

오히려 창작자들끼리 서로를 견제하거나, 독보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한다.

그런 생존의 전장에서 ‘비슷한 스타일’조차 불쾌하거나 난감한 위협이 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과연 사람의 능력이 얼마나 큰 차이가 날까?


저작권은 왜 존재하는가.

단순히 ‘내 것’이라는 표시가 아니다.

창작자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다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생존의 장치다.

그러니 보호하려거든 더 따뜻하게, 더 정교하게 보호하면 좋겠다.

황가람처럼 ‘빛나게 만든 사람’에게도 일정 부분 제도적 보상이 따르면 좋겠다.


창작자들은 일단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각인되려고 한다.

그래야만 다음이 있기 때문이다.

음악계에서 아이돌 그룹의 탄생과 해체는 주목해볼 만하다.

BTS도 소녀시대도 함께 힘을 모아 뜨고 난 다음 각자 자신만의 창작의 길로 가기도 하지 않은가.


명품이 빛나는 이유는 디테일에 있다고 한다.

좀 더 세부적으로 꼼꼼히 창작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좋겠다.

그들의 아쉬움을 귀 기울이자.

더 많은 것을 AI가 대신하는 세상이 온다면 사람들은 어디로 갈까?

더욱 자기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창작자의 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부디 수많은 개똥벌레들이 수많은 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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