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그와 허그, 그리고 허그

by 오로라

6살이나 7살쯤이었을 것이다.

나는 8절지 스케치북에 달력에서 오려낸 명화를 붙이며 스크랩하는 데 몰두하곤 했다.

그 첫 페이지는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로댕의 「포옹」.

부드러운 대리석 표면과 남녀의 유려한 자세는 어린 나에게도 감동적이었나 보다.


나는 엄마가 안아주는 걸 무척 좋아했다.

그 포근하고 안정적인 기분을 평생 잊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허그를 좋아한다.


40대 초반 무렵, 인사동을 걷던 어느 날이었다.

한 청년이 ‘Free Hug’라고 적힌 푯말을 들고 서 있었다.

당시 프리 허그 운동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때다.

나도 그 흐름에 공감했고, 이후로는 조카나 자매들과 만날 때면 꼭 허그로 반기고 작별했다.

둘째 언니의 막내아들은 “이모는 왜 자꾸 안으려 해요?”라며 어색해했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더 꼭 안아주곤 했다. 하하.


그 청년은 간판을 높이 들고, 지나가는 이들과 눈을 맞추려 애쓰고 있었다.

멀리서도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나는 허그를 좋아하니까, “Why not?” 하고는 곧장 그를 향해 걸어갔다.

내가 다가가는 것을 본 그는 간판을 내려놓고 양팔을 벌렸다.

나는 웃으며 그의 품에 안겼다.

참 좋은 기분이었다.

놀라울 만큼 따뜻하고 안정적인 포옹. 몸집은 작은 청년인데, 마치 큰 품을 가진 어른 같았다.

그의 ‘허그법’을 배우고 싶을 정도였다.

우리는 짧게 “감사합니다.” 인사를 나누고, 그는 다시 푯말을 들었다.


그날 저녁, 나는 이상한 기운에 휩싸인 듯한 느낌을 받았다.

분명 그 청년에게서 전해진, 말로 설명하기 힘든 에너지였다.

포근하고 아늑한 공기 무리가 내 주위를 감싸고 있는 듯했다. 살아 있는 어떤 존재 같은 느낌.

그것은 가족과의 허그와는 전혀 다른, 낯선 감정이었다.

엄마와의 허그에서도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기분.

만 하루쯤 그 기운이 계속됐다.

매우 인상적인 허그였다.


지천명을 넘긴 어느 날, 나는 문득 엄마와의 스킨십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심스레 다가가 엄마를 껴안았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놀랐다.

엄마의 에너지가 공기보다 가볍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텅 비었지만, 그 비어 있음의 부피가 있었다. 마치 투명한 지푸라기로 엮인 빈 둥지처럼.

자식들을 키워내느라 엄마의 삶 전부가 티끌도 없이 소진됐음을 보여주는 ‘없음’의 공간이었다.

그 ‘없음’의 에너지는 너무도 고결하고 맑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선명하게 느껴졌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아, 엄마~~'


그날 이후, 나는 더 자주 엄마를 안았다.

그 청년의 허그법으로, 엄마에게 나의 에너지를 전해드리고 싶었다.

오늘도 엄마를 한참 안았다.

그 ‘없음’의 에너지를, 나는 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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