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내리실 거죠?

참 간절했구나

by 오로라

어렸을 땐 남들보다 에너지가 넘쳤지만, 또 쉽게 방전되곤 했다.

일을 몰두할 때와 모든 일을 마쳤을 때의 나는 너무 달랐다.


지하철만 타면 앉을 자리를 먼저 찾느라 바빴다. 서 있는 게 힘들었다.

출퇴근 시간에 빈자리가 있을 리 만무인데, 나는 거의 종착역까지 가야 한다.

이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지하철을 탄다. 절박했다.


하지만 이 젊은 나이에 “몸이 너무 힘드니 자리를 좀 양보해 주실래요?” 라는 말도 할 수가 없다.

어릴 적 읽었던 책에는 버스를 탈 때 ‘oo중학교 앞에서 내려 주세요’라는 팻말을 목에 걸고 잠드는 남학생주인공 이야기가 있었다.

나도 모든 앉아 있는 승객들에게 이마에 ‘어디까지 간다’고 써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열심히 궁리를 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얼마 안가서 내릴 사람을 알 수 있지?’

그리고 드디어 묘안을 냈다. 관상을 보기로 한 것이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과연 누가 조만간 내릴 것인가? 금방 내릴 사람과 오래도록 타고 갈 사람은 분명히 얼굴에 도는 기운도 다를 것이라 생각했다.


내 판단은 제법 적중했다. 금방 내릴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 그 앞에 서기 시작했고 서너 정거장 안에 그 사람들은 일어났다. 나도 내 관상법(?)에 몹시 놀랐다. 그렇게 하고 있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물론 백퍼센트 모두 맞은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한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마다 어떤 다른 느낌의 기운이 있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었다. 『강의: 나의 동양고전 독법』의 저자 신영복선생님이시다. 그 분의 책에는 오랫동안의 옥살이로 쇠약해진 몸 때문에 지하철에서 서 있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처럼 관상을 보신 것이다. 그 분은 나중에는 ‘어느 동네 살겠네, 어디에서 내리겠네’까지도 정확히 맞추셨다고 한다.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나는 그저 어렴풋한 감이었다.


세상에는 ‘나이가 드니 몸이 오히려 더 건강해진 것 같다‘라는 말이 있다.

그것은 그제야 자신의 몸 상태를 제대로 알게 돼서, 그에 맞춰 살게 되었다는 말일 게다.

나도 나이가 들어 내 몸을 더 잘 다루게 된 걸까? 예전엔 넘치는 에너지를 제대로 안배하지 못했다면, 이제 내 에너지는 그 시절과 비교하면 반토막이지만, 내 몸이 알아서 안배하고 잘 소진하는 것 같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집에 갈 때, 서 있어도 별로 피곤하지 않다.

그래서 관상(?)을 보던 일도 어느새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런데 최근 어느 날 지하철에서, 문득 사람들을 유심히 보게 됐고 그때의 내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때의 내가 어떻게 그들의 표정을 읽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때는,

참 간절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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