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서와 센스

by 오로라

우리 집은 지은 지 이제 십 년이 막 지난 아파트다.

그동안 언니나 동생의 집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는데, 이상하게 우리 집 현관은 유난히 어둡다.

집 안 전체로 자연광이 흐르는 구조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듯하다.

아니, 애초에 그런 신경 자체를 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부터인지 그 어둠이 점점 불만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실내로 이어지는 복도와 현관문 사이는 2미터 정도 되는데, 그 절반쯤 가야 천장의 센서 등이 켜진다.

이제야 알겠다. 언니와 동생의 집은 현관이 짧았다. 그래서 불이 훨씬 빠르게 켜졌던 것이다.


우리 집은 현관을 길게 뽑아 놓고도 조명은 의례히 천장 가운데에 하나 달아놓은 게 문제였다.

조명을 다시 달까 고민도 했다.

그런데 신발을 찾아 신으려면 불빛이 복도 쪽 가까이에 있어야 하고,

그러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2~3초간 어둠 속에 서 있어야 한다.

‘센서 등을 포기하고, 문 쪽과 복도 쪽에 각각 스위치를 달까? 그럼 스위치는 어디에? 요즘은 리모컨 같은 건 없나? 그럼 리모컨은 또 어디에 두지? 수납공간을 잘라야 하나?’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었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책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방의 작은 문제를 고치러 온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조명을 바꾸는 게 가능은 하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거라는 이야기와 함께 직원은 나를 살짝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헐, 다른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나?”


사실 그건 상관없었다.

문제는 돈도 시간도 들여 고쳤는데 효과가 별로 없거나, 인테리어가 더 어색해지는 상황이었다.

사실 [집 한 군데를 고치다 보면 집 전체를 다 고치게 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가 아닌가.

인테리어 업자의 유혹도 있었겠지만, 그 말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신중하게 결정해야 했다.

결국 나의 모험심은 고개를 숙였고, 무사안일 보험심이 승리했다.


문득 부자타령을 하는 후배가 떠올랐다.

그리고 ‘나도 부자라면 이런 거 그냥 아무 고민도 없이 싹 바꿨겠지?’ 라고 생각하니, 집 안의 모든 작은 흠집들이 다 손보고 싶은 부분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돌싱인 후배는 어느 날 샵에서 사무실에 들고 다닐 예쁜 텀블러를 발견했는데, 결국 사지 못했다고 했다.

십만 원쯤 했던가. 텀블러 치고는 꽤 비싼편이었다.

“그래도 그 정도는 내 일상을 기분 좋게 해주는 포인트잖아. 하나쯤 자신에게 선물해 줘도 괜찮지 않아?”라고 나는 말했지만, 후배는 부자타령을 하며 끝내 사지 않았다.

그릇가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색감의 그릇 앞에 한참 서 있더니, 그릇에 예쁘게 담긴 요리와 그걸 뽐내는 파티를 상상하고 즐거워했다. 그러다 결국 빈손으로 가게를 나서며 “아, 나 부자랑 결혼하고 싶어…”한다. 아기처럼 칭얼거렸다.


그때는 뭘 그만한 거 가지고 부자까지 들먹이나 웃음이 났다.

남들 보기에는 괜찮게 살고 있는 후배다.

그런데 지금은 후배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된다.

자식 둘과 친정어머니를 혼자 힘겹게 키우고, 모시며 얼마나 많은 욕망을, 욕심을, 욕구를 눌러왔을까.

그동안 후배가 참아온 것들의 무게였다.

하지만 과연 부자들도 마음대로 척척 돈을 쓸까?

내가 아는 부잣집 판사 출신의 할머니는 늘 플라스틱 용기를 하나 가지고 다니신다.

식당에서 남는 밥이며 음식을 챙기시기 때문이다.

얼마 전 일 때문에 지인의 소개로 만난 남자 분이 생각난다. 어느 동네 유지라고 했다.

그의 씀씀이는 1원도 샐 틈이 없어 보였다.


‘부자 남편’의 돈? 내 돈처럼 펑펑 쓸 수 있을까.


아침에 요양사님이 엄마를 모시러 오셨다.

엄마는 천천히 부축을 받아 현관으로 나가셨다. 여전히 현관은 어둡다.

“얘는 도대체 왜 불이 안 켜지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민망한 마음에, 엄마 신발을 신겨드리는 요양사님 들으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게요, 센서가 센스가 없네.” 요양사님은 유쾌하게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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