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젊은 사람들과 교류해야 한다고 들 한다.
그래야 늙지 않게 산다고. 늙는 것은 질병이라는 말도 돌아다닌다.
그러면서 우리는 늙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
문득 나는 묻게 된다. 늙는다는 건, 대체 무엇일까?
나에게는 친구 같은 82세의 선배님이 한 분 계시다.
영화 코드가 잘 맞아 적어도 한 달에 한번은 만나서 함께 영화를 보는 12년 연상의 대학 선배님도 계시다.
그런데 이 선배님마저도 내가 이 분, 82세의 선배님을 자주 만난다고 하면 나를 걱정하는 말을 하신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는데 말이다.
지난 주, 나는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겸재 정선 전시를 이 분과 함께 다녀왔다.
한국화를 전공하신 현역 작가이자, 미술대학교 선배님이시다.
나와 선배님의 나이 차이는 어머니와 딸 사이만큼 되지만, 우리는 언제나 친구처럼 대화해왔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모시고’ 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는 얼마 전 북한산 백운대도 함께 오른 등산 친구이기도 하다.
전시는 기대 이상이었다. 평일임에도 전시장엔 관람객이 가득했다.
유명 전시의 풍경은 늘 그렇다.
고등학생 무리가 빠르게 작품 앞을 지나며 웅성거렸고, 인솔 교사는 마치 양 떼를 모는 듯 학생들을 이끌었다. "왜 이렇게 어두워, 무서워!" 하는 소리에 피식 웃음이 났지만,
작품을 보호하느라 조도를 낮춘 조명 아래에서 눈이 조금 불편했던 건 사실이다.
선배님은 산수화, 문인화, 서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미 화단의 인정을 받은 분이다.
그런 분과 함께 겸재 정선을 감상하는 건 큰 영광이었다.
“선배님, 저 무지개 좀 보세요. 오— 이 시절에도 무지개가 있었군요!”
내 농담에 선배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애들은 자기 엄마 시절엔 연애도 안 한 줄 안다니까.”
이런 대화 속에서 나는 한국화의 깊이에 자연스레 젖어들었다.
“이건 왜 이렇게 배접을 했을까요?”
“시전지라는 거야. 꽃 편지지 같은 거지. 이렇게 무늬가 같은 건 판으로 찍어낸 거고.”
나는 묻고, 선배님은 답했다.
그렇게 그림과 그림 사이를 걷다 보니, 어느새 전시장을 다 돌았다.
선배님은 나보다 더 오래 작품 앞에 머물렀고, 두 시간 동안 어두운 실내에 계셨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흥분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겸재 선생이 돌아다닌 곳을 나도 다 돌아다녔더라고. 함께 그림 그리러 다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너무 반가워서 발길이 안 떨어졌어.”
전시가 끝난 뒤, 우리는 미술관 정원을 거닐었다. 나는 여러 번 “너무 좋아!”를 외치며 깡총거렸고,
선배님은 그런 나를 웃으며 바라보셨다.
분홍빛 꽃나무가 담장 너머로 반짝였고, 석상과 동그란 나무문, 아담한 조경들이 정원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멀리 보이는 석상을 두고 “물개다”, “아니야 곰이야”, “해태일지도 몰라!” 하며 티격태격했는데,
다가가 보니 뜻밖에도 귀여운 호랑이였다.
“아! 호랑이네, 하하하.” 두 사람은 박장대소했고, 우리는 그 호랑이와 함께 사진도 찍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했다.
선배님과 함께한 하루는 정말 멋졌다. 선배님의 ‘깊은 안목과 수평적인 눈높이’는 깊은 울림을 주신다. 젊은 감각이 더해진 묵직한 내공, 그것을 나는 또래의 친구나 어린 후배와 나눌 수 있었을까.
생각할수록 참으로 귀한 하루였다. 우리는 또 등산 약속을 잡았다.
지금, 나는 거꾸로 걷고 있는 걸까?
[5월 초에 써 놓은 글입니다]